|
세계 각국의 맛있는 음식과 근사한 잡화를 매개로, 외국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친구가 된다. 그 사람과 그 사람이 태어난 나라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마지막에는 모두 모여 신나는 줄다리기를 한다.
2023년 11월 4일, 4회를 맞은 ‘난민‧이주민 축제’(難民‧移民フェス)의 풍경이다. 일본에 살고 있는 난민과 이주민들의 존재에 대해 알고, 만나서 관계를 맺고, 이들의 삶을 응원하는 이 자선행사를 제안한 사람 중 한 명이 바로 일러스트레이터 가나이 마키(金井真紀) 씨다.
“이야기 들었으니 이제 안녕”, 할 수가 없잖아요
“워낙 이주 배경을 가진 친구들이 주변에 많았어요. 저는 운동을 하나도 못 하는데, 뒤늦게 배우기 시작한 풋살 덕에 알게 된 외국인들과 같이 공을 찼거든요. 하지만 당시에는 출입국관리의 문제라든지, 난민이 처한 어려움은 남의 일이었죠.”
그러나 2021년 4월, 일본의 ‘출입국관리 및 난민 인정법’ 개악(관련 기사: “외국인은 범죄자인가요?” 日 출입국관리법 개정 논란 https://ildaro.com/9677) 소식에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이에 항의하기 위해 국회 앞에서 열리는 연좌집회에 혼자 쭈뼛쭈뼛 찾아갔다. 거기서 콩고 출신의 난민 잭 씨를 만났다.
그의 조국에서는 강력한 권력을 휘두르는 정권에 의한 학살이 횡행했고, 콩코 민주화 운동에 가담했던 잭 씨는 목숨의 위험을 느끼고 나라 밖으로 탈출했다.
“『일본에 사는 세계 사람들』 책을 쓰기 위해 그분의 이야기를 취재했어요. 그런데, 이야기 들었으니 안녕, 할 수가 없었어요. 잭은 일본에 의지할 사람이 없잖아요.”
그러나 가나이 마키 씨는 두 사람만의 좁은 관계를 맺기보다는 조금 더 열린, 확장된 관계를 만들어가는 방법을 궁리했다.
“도와줘도 고맙다는 인사조차 안 하는 태도를 보며 흥분하는 스스로가 참 찌질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일반적인 친구라면 싸우면서라도 하고 싶은 말을 할 텐데, 잭과는 그렇게 싸워서 절교하는 것도 할 수 없고…. 그래서 일대일 관계가 되지 않도록, 잭에게서 콩고의 링갈라어를 배우는 모임을 만들어 같이 어울리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이렇게 알음알음 작은 모임을 꾸렸다.
“어느 날, 칠레 출신의 난민 페냐 씨가 만든 파이를 친구들과 나눠 먹다가 ‘이렇게 맛있는 걸 우리끼리만 먹지 말고 다 같이 먹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잭이 이전에 고립되어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난민들의 상황이) 계속 마음에 걸렸거든요. 그래서 각자가 잘하는 것을 갖고 모여서 난민들과 교류하면 좋겠다고, 파이를 우물우물 씹으며 이야기 나눈 것이 2022년 1월이었어요.”
링갈라어를 배우는 모임 동료도 가세했고, ‘이주민과 연대하는 전국네트워크’와 난민을 지원하는 분도 끌어들여, 같은 해 6월에 난민과 이주민들을 중심으로 한 축제를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사람의 무게를 느끼는 것
“많은 분들이 와줬어요. 시위에 가는 건 좀 심리적 장벽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축제라면 참가하기 쉽잖아요. 다들 너무 즐거워하면서 바로 ‘다음 축제를 언제 할까’ 이야기 나눴죠.”
11월 4일 열린 네 번째 축제에는 연인원 1만 명이 참가했다.
세계는 아하!로 가득하다
가나이 마키 씨가 『세계는 아하!로 가득하다』 같은 재미있는 발상으로 가득한 책과 일러스트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마흔이 넘어서부터였다.
“일이 끊겨서 시간은 있으니, 재미있는 것만 해서도 먹고 살 수 있는지를 실험해보자 싶었어요. 그때 떠오른 것이 제가 ‘다양성’을 흥미로워한다는 사실이었어요.”
만사를 항상 부정적으로 보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10대 때는 특히나 갑갑했다. “넓은 세계를 가르쳐주는 창구였던 책을 좋아했어요. 갑갑한 생활을 하면서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를 잊고 있는 건 아닌가요, 라고 옛날의 저와 같은 기분을 느끼는 분들이 내 책을 읽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한다.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일을 하는 사람을 모은 스터즈 터클(Studs Terkel)의 『일!』(Work!)이라는 책을 좋아해서인지, 저도 ‘사람을 모으고 싶은 욕망’이 있어요. 세계가 다양한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전하고 싶어요.”
가나이 씨의 허를 찌르는 테마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퀴즈를 만들던 일과, 이러한 욕망에서 시작된 것일까. 호기심이 많아서 모르는 사람과 만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모르는 자의 뻔뻔함’을 강점으로 내세운다고.
작년 11월에 이란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씨름에 대한 애정에서 취재해서 펴낸 책 『세계의 씨름선수』를 만드는 과정에서, 이란에 씨름을 하는 여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2023년 새해 첫날, 여자 씨름 대회에 나갔는데 운이 좋게도 부전승으로 3등을 했어요. 첫날부터 운이 이렇게 좋다면야 이란에서 샅바를 잡을 수밖에요.(웃음)”
처음에는 씨름이 주 목적이었지만, 2022년 9월에 이란에서 히잡을 제대로 두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 20대 여성이 도덕 경찰에 체포되었다가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항의의 스카프 시위가 널리 퍼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씨름하고 있을 계제가 아니더라고요. 다양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어야겠다고 생각해, 이란 정부에 저항해서 싸우는 여성 변호사도 만났어요. 그 분의 ‘오랫동안 자유를 찾아 싸워온 선배들의 뜻을 잇고 싶다’는 말에 눈물이 흐르더라고요.
잇는다는 말을 들으니, 『일본국헌법』의 기획편집자로 알려진 고(故) 시마모토 슈지 씨가 『세계의 친구들』 시리즈를 만들 때 ‘국경을 낮추자’라는 말을 하신 게 떠올랐어요. 너무 멋지잖아요? 나는 그걸로 밀고 나가야겠다 했죠.”
가나이 씨의 책 『전쟁과 목욕수건』(한국에선 “전쟁과 목욕탕”이란 제목으로 이유출판사에서 번역 출간함)은 욕조에 몸을 담그고 태국-미얀마 철도와 일본의 군수공장이 있던 땅 등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는 내용이다. ‘문턱을 낮추고, 전쟁에 대한 생각을 전하고 싶다’는 아이디어가 발현된 것이다.
“왜 독일 시민들이 나치에 가담했는지를 계속 생각하던 독일 여성이 난민에게 자기 집을 잠자리로 제공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만약 내가 백 년 전에 태어났다면,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중국인 학살에 가담했을지도 몰라, 그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런 생각을 했던 일이 지금 난민 친구들을 모른 척 두지 않는 일을 하는 것으로 이어졌는지도 모르겠어요.” [인터뷰: 가시와라 토키코, 정리: 시미즈 사츠키, 번역: 고주영]
-〈일다〉와 제휴 관계인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 제공 기사입니다.
이 기사 좋아요 8
<저작권자 ⓒ 일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관련기사목록
|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