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보내고 어른이 됐다, 세월호 참사 이후 10년영만엄마, 배우 이미경. 두 이름을 품고 사는 이야기 (하)2회 〈이영만 연극상〉 시상식은 옥자연 배우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던 2014년에 태어난 이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 〈2014년생〉(관련 기사: 2014년생이 묻는다, 우리 사회 안전한가요? https://ildaro.com/9748)의 낭독과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내 합창단인 ‘지보이스’의 노래가 축하 공연으로 함께 했다. 비건 다과가 준비됐으며, 문자 통역 및 수어 통역도 진행됐다.
세월호 참사 이후 10년, 이후 한국 사회 시민들이 어떤 변화를 만들어 내고자 노력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위치의 이들을 초대하는 시상식 구성이었다. 영만엄마이자 배우 이미경의 삶이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느껴지기도 했다.
우리의 인터뷰는 자연스럽게 연극, 이영만 연극상에서 세월호 참사 이야기로 연결되어 갔다.
-시상식이 하나의 연대의 장 같아서 무척 감동적이었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었다고 생각하세요?
많이 바뀐 것 같아요. 연대가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나도 본의 아니게 소수자가 된 거잖아요. 겪지 않아도 되는 ‘특별한’ 일을 겪은 특별한 사람이 된 거죠. 그 후 사람들이 보내준 에너지와 위로를 정말 많이 받았어요. 그 덕분에 내가 이렇게 있는 거기도 하고요. 그래서 다른 소수자에게 나도 힘이 되고 싶은 것 같아요. 성소수자의 권리에 대해서도 찬성/반대 하는 말들이 있지만, 그런 찬반 의견을 떠나서 인간으로서 존중 받아야 하잖아요. 그게 기본이니까요. 학력, 인종, 사회적 지위 등을 다 떠나서 존중 받아야 하는 존재라고요.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사실 변화죠. 예전엔 나 또한 장애에 대해서도 편견이 있었어요. 괜히 불편하게 생각하고 그랬죠. 그런데 영만이를 보내고 나서 정말 어른이 된 것 같아요. 어른으로서 인생을 다시 살게 됐다고 생각해요. 많은 걸 배웠고, 배우는 것만으로만 끝내지 말고 나 또한 누군가의 옆에 있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내가 이렇게 슬픔을 딛고 일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 사람들이 있잖아요? 나도 그런 사람이 돼야겠구나 싶죠. 정말 마음 같아서는 너무 많은 걸 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아쉬워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것처럼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는 게 행복한 게 아니라, 작은 마음이더라도 내가 사랑을 줬을 때 훨씬 더 행복하다는 걸 체험하고 나니까, 하고 싶은 게 많아요.
영만이한테도 정말 멋진 엄마이고 싶거든요. 그게 꿈인데, (연극상을 만들고 나서) 그렇게 살 수 있게 된 것 같아서… 영만이도 얼마나 기뻐하고 있을까 싶어요. 자식한테 엄마 너무 멋지다, 당당한 모습이 좋다는 말을 듣는다면, 정말 잘 산 삶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앞으로도 그러고 싶어요.
-올해가 세월호 참사 10주기죠. 벌써 10년인가 싶은데, 유가족 분들에겐 또 엄청 긴 시간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지난 10년, 사회가 좀 변화했다고 보시나요?
안 변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나도 변했잖아요? 물론 난 당사자라 그런 거 일수도 있지만 변한 사람들, 변한 부분이 있다고 봐요. 일단 ‘안전’에 대해 이야기할 때 세월호 참사 이야기가 나오게 됐죠. 경각심도 갖게 된 부분도 있고요. 하지만 너무 슬프게도 2022년 이태원 참사가 또 일어났잖아요? 분명 시민들은 변했는데 국가/정부, 정책 등이 변하지 않은 것 같아요. 세월호 유가족들이 7~8년을 그렇게 안전한 사회를 외치고 투쟁했는데도 안전에 대한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았다는 거에요.
책임자 처벌은 일단 차치하더라도, ‘생명안전기본법’ 제정(관련 자료: 안전해야 할 권리, 생명안전기본법 4.16연대 https://416act.net)이 여전히 아직이잖아요. 무엇이 필요하고,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분명 되고 있는데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는 것, 이게 정말 분하고 화가 나요. 이태원 참사 이후의 모습을 보면서도 너무 안타깝고 화가 나죠. 우리랑 똑같은 과정을 밟고 있으니까요.
세월호 참사 이후 많은 이들이 외쳤던 건, 물론 나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나와 함께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어요. 그렇게 10년이 됐는데, 정말 중요한 변화는 아직이죠. 그리고 사실 10년 정도 되다 보니까 피로감을 느끼는 시민들도 있는 걸 알아요. 함께 투쟁한 사람들 중에서도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위기를 맞이한 사람들도 보여요. 이런 모습을 보면 너무 마음이 아프죠. 많은 사람들이 트라우마를 겪었는데, 그걸 그냥 각자 혼자 몸으로 받아내고 있으니까요.
재난피해자권리센터(4.16재단 부설 기관으로 올해 1월31일 발족식이 열렸다) 이제 건립됐잖아요. 이런 센터가 생겨서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참 기가 막힌거죠. 오래 전부터 많은 참사가 있었는데, 이런 게 진작에 생겼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리고 왜 이걸 시민들이 나서서 만들어야 하냐고요. 국가가 해야 할 일이잖아요? 센터가 정말 잘 됐으면 좋겠는데, 국가는 대체 뭐하는 건가 싶어서 참 어이가 없어요.
-이제 다음 달, 4월 16일이면 세월호 참사 10주기입니다. 뭘하면 좋을지, 지난 10년을 어떻게 기억하면 좋을지 고민하는 시민들도 있을 것 같아요. 동료 시민들에게 어떤 말을 건네고 싶나요?
4.16 생명안전공원(4.16 세월호 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가기 위한 공간)이 10주기 때 선보일 계획이었지만, 아직도 착공 전이에요. 올해 가을 즈음엔 시작된다고 하는데… 그것도 그 때 되어봐야 알지, 계속 늦춰진 거라 또 미뤄질까봐 걱정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이 공원이 왜 만들어져야 하는지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어요. 내가 당사자 입장이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사실 이게 해가 되는 공간은 아니잖아요? 반대하는 사람들은 ‘혐오시설’이라고 하는데… 왜 그렇게 말하는지 모르겠어요. 공원에선 다양한 문화 활동도 할 계획이에요.
미국의 9.11 메모리얼 파크 같은 곳이 될 수 있다고 봐요.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싶을 때 갈 수 있는 공간, 추모할 수 있는 공간이요. 사고가 났던 곳 등은 아무래도 조금 힘들 수 있지만, 공원이 생기면 조금 더 편한 마음으로 갈 수 있다고 봐요. 솔직히 언제까지 ‘아프고 슬프니까 피할래’ 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이 또한 마주할 수 있어야죠. 4월이 가까워져서 아이들에게 안전을 이야기하고 싶을 때, 손 잡고 둘러보며 ‘이런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이후 안전한 사회를 위한 투쟁의 목소리가 나왔고, 어떤 변화들이 생겼다’고 전할 수 있도록이요. 그걸 4.16 생명안전공원을 통해서 하고 싶어요. 정말 빨리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램이에요.
더불어 4월이 되면, 세월호 참사가 있었다는 것.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할 수 있도록 추모나 기억 행사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특히 학생들이 알 수 있도록 교육청 차원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하죠.
-10주기 관련해서 할 일이 많을 것 같아요.
엄청 많죠. 10주기라서 합창단에서 뭐 한다 그러는데 참여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5월에 노란리본 작품 5개 공연을 한달 동안 계속할 예정이거든요. 또 6월에 대학로에서 〈연속,극〉 공연도 하고요. 이제 곧 연습 시작이라 엄청 바쁠 거에요.
-앞으로 〈이영만 연극상〉을 노리는(웃음) 연극인도 많아질 것 같은데요. 동료 연극인들에게도 한 마디 해 주시죠.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연극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이 연극상이 탐나신다면(웃음) 의도적으로 하시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요. 세월호 참사를 잊지 말고, 계속 이야기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사실 10주기가 됐든 20주기 됐든 나한테는 늘 똑같이 아프고 힘든 날이지만, 10년이라는 건 조금 남다르긴 하잖아요? 지난 10년을 돌아보게 되기도 하고요. 물론 올해 작품 구상이나 계획이 이미 거의 정해졌겠지만, 세월호 참사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다뤄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런 작품이 좀 더 나오길 기대합니다. 그리고 모든 이영만연극상집행위원회 멤버들과, 시상식을 위해 손길을 보태준 연극인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해요. 난 앞으로도 계속 연극인들을 응원할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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