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희수 하사를 보내고 남겨진 숙제, 이제 해야죠?변희수재단 준비위원회 박에디 운영위원, 하루 활동가를 만나다트랜지션(transition, 성별재지정 과정)을 하고 여군으로서 군에 계속 복무하려 했지만, 육군의 강제 전역 결정 이후 사망한 변희수 하사의 기일이 지난 2월 27일이었다. 이날 저녁, 故 변희수 하사 3주기 추모의 밤과 변희수재단 비전 발표회가 함께 열렸다. “故 변희수 하사의 부당한 강제 전역과 안타까운 죽음은 한국 사회에서 트랜스젠더가 평범한 일상을 누리기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건”이라 설명한 변희수재단 준비위원회는 “추모 활동을 지속하고, 트랜스젠더를 위한 사회적 지원 체계를 구축하고자 변희수재단 설립에 뜻을 모았다”고 밝혔다.
변희수재단이 지향하는 사회는 결코 몇 명의 사람의 힘이나 노력으로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함께 할 사람들을 늘려가려 하는 변희수재단 준비위원회의 박에디 운영위원과 하루 상임활동가를 만났다. 트랜스젠더 당사자이기도 한 두 사람은 자신이 겪은 경험을 통해 변희수재단 같은 기관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재단이 하고자 하는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변희수재단 준비위원회는 어떻게 시작됐나요?
에디: 2023년 6월, 변희수재단 설립을 위한 사업계획을 세웠어요. 트랜스젠더 인권을 위해 뭔가 해보자는 마음을 갖고 있던 활동가가 몇몇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사업계획서를 쓰게 됐고, 해외에서 지원금을 받아보자 해서 기금 신청을 했는데 다행히 선정된 거죠. 덕분에 상근활동가인 하루 님도 채용하게 됐고요.
-두 분에게 故 변희수 하사는 어떤 의미인가요? 변희수재단 준비위원회에 합류하게 된 계기도 궁금합니다.
에디: 희수는 내가 예전에 일했던 단체(청소년성소수자지원센터 띵동)에서 알게 됐어요. 20대 트랜스젠더로, 인권 활동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알고 있었죠. 그가 군대에서 성별정체성을 이유로 배제됐을 때,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지, 어떤 길이 있는지 함께 알아보며 지원자로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요. 트랜스젠더 당사자로서, 트랜스젠더라면 느낄 수 있는 차별과 혐오, 배제를 같이 경험한 동료였죠.
그의 얼굴과 표정을 직접 지켜봤던 사람으로서, (변희수 하사 사망) 이후 희수나 희수의 삶을 생각하면 슬픔과 분노가 일었어요. 사실 희수가 (커밍아웃 하면서) 어떤 허황된 꿈을 이야기한 건 아니잖아요? 그저 계속 군인이고 싶다는 거였죠. 앞으로도 이런 이야기를 할 또 다른 희수들이 분명히 나타날 텐데, 그 때 또 한계를 느끼고 싶지 않았어요. 이런 일을 반복하는 게 싫어요. 희수 이후에는 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 그러니까 뭐라도 해 보자는 마음으로 재단 준비위원회에 함께하게 됐어요.
하루: 변희수 님을 직접 만난 적은 없어요. 희수 님이 처음 TV, 뉴스 등에 나올 땐 (내가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하기 전이었거든요. 사실 ‘난 트랜스젠더는 아닐거야’라고 부정하던 시기였어요. 그랬기 때문에 희수 님 이야기에 깊이 공감했다기보다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차별과 혐오의 말들에 시달리는 모습을 봤으니까요. 이후에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한 후 다시 희수 님을 떠올려 보니, 정말 용감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라면 무서워서 그렇게 못했을 것 같거든요.
성별정정 이후에 ‘일반회사’에 취업했는데, 회사 생활이 너무 힘들었어요. 성별정정이 완료되고, 주민번호 앞자리도 바뀌었지만, 나는 그저 나 그대로였거든요. 근데 사회에서 요구하는 모습, 성역할, 성별표현 등에 시달리면서 힘들었어요. 이상한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었고요. 그러던 중에 변희수재단 활동가 모집 공고를 보게 된 거죠.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게 뭘까?’ 생각하게 됐어요. 사실 그냥 편하게 살고 싶었거든요. 늘 험한 길을 걸어왔다고 생각해서, 정말 편하게 살고 싶었어요. ‘일반회사’ 다니면서 출퇴근하고, 공휴일에 쉬는 ‘평범한’ 일상을 상상했는데, 막상 성별정정 끝나고 보니까 ‘다른 트랜스젠더들은 조금 더 쉬웠으면 좋겠다, 힘든 거 몰랐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들더라고요. 그럴 때 재단을 만나게 된 거죠.
에디: 추모 행사라고 하면 뭔가 슬프잖아요. 너무 슬퍼만 하는 행사가 되지 않기를 바랬어요. 그보다 우리가 희수의 의지를 이어받아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지를 이야기하는, 희망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사실 성소수자 추모 행사를 가면, 떠난 사람을 기억하고 기리는 시간이 좋긴 했지만… 그 시간이 끝난 후에 남아있는 이들은 다시 일상을 살아가야 하잖아요? 근데 슬픈 감정이 계속 남고, 이걸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는거죠. 우린 (성소수자들이 세상을 떠나는) 문제가 무엇인지 알잖아요. 그 문제가 해결되어야 우리의 슬픔도 해결될 수 있다는 걸 아는데, 그 문제 해결이 어렵고 힘드니까… 자꾸 안 하고 쌓아둔 숙제처럼 되잖아요.
그래서 이번 행사 땐 그 슬프고 힘든 마음을 조금이라도 풀고 ‘한번 숙제를 해보자’는 이야길 하고 싶었어요. 우리가 원하는 걸 이야기하고, ‘이걸 하길 위해 노력할 테니 당신들도 함께 해 줬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던짐으로써 슬픔과 희망을 잘 섞고 싶다는 마음이었어요. 그게 전해졌기를 바라죠.
-숙제를 해나가자는 말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네요. 재단에서 주요하게 해나갈 활동은 무엇인가요?
하루: 트랜스젠더의 사회적 지원체계 구축, 지속가능한 추모가 가능한 공간 구축, 트랜스젠더 가시화와 인식 개선, 트랜스젠더 역량강화 지원으로 정했는데요. 사실 다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개인 경험으로 이야기하자면, 트랜지션과 성별정정을 하고 나면 뭔가 끝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니거든요. 사회로 복귀하는 것, ‘사회적인 트랜지션’이라고도 하는데 이게 힘들거든요. 사람마다 다를 순 있지만, 전 정말 힘들었어요. 그런 점에서 사회적 지원체계 그리고 트랜스젠더들의 역량강화도 중요하다고 봐요.
에디: 트랜스젠더를 위한 재단은 변희수재단이 처음이잖아요. 트랜스젠더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아가는 게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이 재단의 가치라고도 생각하고요.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더 가까이서 듣고 싶어요. 그래야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찾을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그렇다고 트랜스젠더를 완벽히 지원해주거나 트랜스젠더를 부자로 만들어 줄 순 없을 거에요(웃음) 하지만 정말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그냥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당연한 것들이 다 사라졌을 때, 그 사람이 다시 자신의 삶을 찾을 수 있는 장치들을 만들어가고 싶어요.
하루: 벌써 몇 분 신청이 들어왔어요. 근데, 아마 책도 낸 에디 님 만나고 싶어서 신청한 거 아닐까 싶어요. (박에디 씨는 에세이 『잘하면 유쾌한 할머니가 되겠어』의 저자이기도 하다. 관련 기사: ‘젠더된 도리’로 내 삶을 펼쳐 보인다! https://ildaro.com/9686) 에디 님 팬미팅이 되지 않을까.(웃음)
에디: 사실 책 내고 나서 개인 SNS로 당사자들의 메시지가 종종 왔어요. 특히 기억에 남는 건 나랑 동갑인 1987년생인 분이었는데, ‘지금 트랜지션을 시작하는 건, 이미 늦은 건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가 내 책을 읽고 힘을 얻었다는 거였거든요. 한번 직접 만나서 이야길 했는데, 너무 신기한 게 그 사람이 그냥 내 삶, 내 이야기를 다 이해하고 있더라고요. 그런 경험이 나한테도 너무 소중했어요. 이런 경험을 변희수재단을 통해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어요.
하루: 당사자가 또 다른 당사자를 만나는 건 정말 중요한 일인 거 같아요. 트랜스남성의 경우엔 성별정정까지 끝내고 나면, 트랜스젠더 커뮤니티에서 사라지는 일이 많거든요. 트랜스젠더가 아닌 것 같은 삶을 살고 싶은 거죠. 그래서 트랜스남성들의 성별정정 이후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없어요. 그에 대한 기록이 없고 만날 사람도 없으니까 ‘난 어떻게 살아야 하지?’ 불안했었어요. 그러다가 한참 나이가 많은 형을 알게 됐는데, 너무 이야기가 잘 통하는 거에요. ‘이거’, ‘그거’라는 단어로도 그냥 다 이해되는? 공감의 깊이가 다르다는 걸 느꼈어요. 재단을 통해서 그런 경험을 넓혀가고 싶어요.
-만나야 하는 트랜스젠더도 많고, 할 일도 무척 많은데요. 재단 내부에서만 노력한다고 되는 건 아니잖아요? 외부의 지원, 도움이 많이 필요할 것 같은데, 재단 밖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건 뭐가 있을까요?
에디: 지금은 변희수재단 준비위원회이고, 정말 재단이 되기 위해선 설립 신청을 해야 해요. 6월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데요. 그 신청을 하려면 기본 재산이 필요하더라고요. 현재 모금활동을 하고 있어요. 모금에 함께해주시면 너무 좋을 것 같습니다. 또한 재단에 대한 관심도 무척 중요하고요. 재단 소식에 귀 기울여 주시고, 어떤 일을 하는지 살펴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때때로 쓴소리도 필요할 거고요. 다만 채찍보다 당근을 더 많이 주시면 좋습니다.(웃음)
하루: 일단 정식 재단이 되는 게 중요하죠. 그래야 계획한 활동들도 할 수 있고요. 재단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많은 관심과 애정을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에디: 어렸을 때 학교 앞에 문구점이 있었는데, 별 게 다 있었어요. 먹을 것도 팔고 게임도 할 수 있고… 그래서 학교 끝나면 애들이 거기 모여서 놀았단 말이죠. 심지어 게임하는 친구들 구경하는 것도 재미였어요. 그곳이 우리의 커뮤니티, 아지트였어요. 학교 생활이 마음에 안 들고 힘들어도 그 공간을 생각하면 날 반겨주는 친구들이 생각나서 좋았어요. 변희수재단이 많은 당사자들에게 그런 공간이면 좋겠어요.
커밍아웃하고 벌써 12년 정도 활동가로 살아왔는데, 우리 사회가 크게 바뀐 것 같진 않아요. 그렇지만 날 보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사람이 있다는 건 확실히 보이더라고요. 또 내가 나서서 이야기를 하니까, 트랜스젠더가 여기 있다는 걸 알아주고, 당사자가 안전한 환경이 되어야 한다는 걸 알아가는 시민들의 모습도 봤고요. 개인이 만들어낸 변화가 있다고 한다면, 재단이 만들어 낼 변화는 더 클 거라고 생각해요. 그걸 위해 함께 노력할 생각입니다.
하루: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이 그저 일상을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학교나 직장, 병원, 화장실 등에서 나를 숨겨야 하고 차별받거나 배제 당하는 일에 대해 함께 당당하게 대응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사실 많은 걸 포기하고 살았는데, 더이상 포기하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내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 그걸 위해서 변희수재단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나갈 거고요. 또한 트랜스남성 활동가, 성별정정 이후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변희수재단 설립 기본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소셜펀딩을 통한 모금이 진행 중이다. 〈변희수 하사의 평생친구〉 https://socialfunch.org/bhsfoundation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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