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노래를 한다. “날마다 고마웠어. 매 순간 사랑했어.” 그 부모의 이웃이 되기로 한 이들도 함께 부른다. “열여덟 수학여행 간다고 짐 싸며 들떠 있던 너. 날마다 고마웠어. 매 순간 사랑했어.”
『520번의 금요일』(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사단법인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피해자가족협의회 기획, 온다프레스, 2024) 북토크 자리였다. 416 합창단이 노래를 부르자, 내 앞에 앉은 덩치 큰 남자가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다. 옆자리에 앉은 남자가 그의 손을 잡아준다. 왜인지 나는 그곳에서 위로를 받았다.
이 책은 세월호 가족협의회가 지난 10년 활동을 ‘솔직하게’ 돌아보며 객관적인 평가를 나누고 싶어서, 다른 재난 피해자들에게 도움이 되고,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안전사회 건설 활동을 계속하고 싶어서 작가기록단에게 제안해서 쓰인 기록물이다.
참사 이후 한동안 나는 귀를 기울이고,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수학여행 가기 전날 밤, 엄마를 안아주면서 나 없다고 밥 굶지 말라고 말했다는 아이. 소설가가 꿈이었던 단원고등학교 2학년 4반 최성호를 잊지 않고 있었다. 2학년 5반 박성호도 기억한다. 가톨릭 사제가 되고 싶었던 아이. 성당 모임에서 미래의 자신에게 편지를 썼을 때 (혹시 뜻하는 바를 이루지 못했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힘들어 하지 않고 부모님, 가족, 하느님을 원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감사하라고 쓴 아이. 큰 누나가 미국 소 수입 반대 시위에 다녀왔다가 엄마의 걱정을 사자, 평소 말대꾸 같은 걸 하지 않던 아이가 그날은 엄마에게, 잘못된 일에 목소리를 낸 누나에게 왜 그러시느냐고 편을 들어줬다는 아이. 구명조끼를 친구에게 벗어주고 떠난 차웅이도, 아이들을 구하러 간 선생님과 승무원들도, 환갑여행에서 목숨을 잃은 분도, 새 삶을 위해 이사하던 가족과 남은 아이도 기억하고 있다.
『520번의 금요일』에는 피해자 가족들이 세월호 참사 이후 십 년 동안 겪었던 여러 고난과 에피소드가 담겨있다. 그 가운데는 아프고 힘든 기억도 있지만, 안산에서 팽목항까지 유가족을 태우며 자원봉사를 했던 안산 택시기사들, 가게를 접고 달려온 약사들이 눈물 닦는 수건을 준비하던 마음, 정치 운동 같은 건 해본 적 없는 이들이 시민으로서 상주가 되겠다며 시민상주 모임을 만들어 지금까지도 계속 활동하는 이야기도 담겨있다. 진도에서든 광화문에서든 세월호 유가족들이 머무는 곳마다 누군가들이 나타나서 밥과 청소를 해주던 세세한 기록도,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으려고 낫질과 도끼질을 해가며 팽목바람길을 만든 작가와 진도 주민의 모습도 기록되어 있다. 어떤 유가족은 말한다. 세월호 참사 이전에는 이토록 많은 국가폭력과 재난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있다는 걸 몰랐다고. 뒤늦게 알아서 미안하다고.
『520번의 금요일』과 함께 세월호 생존자, 형제자매 이야기를 담은 책 『봄을 마주하고 10년을 걸었다』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사단법인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피해자가족협의회 기획, 온다프레스, 2024)도 출간됐다. 이 책에는 그동안 “수학여행에 가지 않은 ‘잔류 학생’으로 분류되어 당사자의 위치를 박탈당했던 확장된 생존자”의 목소리와 함께, “생존자 감수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 사회에서”, “‘어린 피해자’로서 겪어야 했던 차별, 그리고 생존자에게 던져진 호기심을 가장한 낙인”에 무릎 꿇지 않고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세월호 운동”을 해 온 이들의 목소리가 구체적으로 담겨있다. 이른바 세월호 세대가 십 년이 지나는 동안 N번방 사건과 이태원 참사 등을 보고 받은 충격과 각성도 절절하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나는 왜 이들의 이야기에서 이토록 위로받는 것일까. 참사의 피해자들이 고통 속에서도 운디드 힐러(Wounded Healer, 상처 치유자)가 되어 오히려 우리 사회를 치료해주는 것 같아 뭉클함과 서글픔을 느꼈다.
배의 시점으로 그려낸 『세월 1994-2014』
세월호 10주기이다. 그동안 나는, 우리는 무엇을 잊고 무엇을 간직하고 있었을까? 무엇이 변했고 무엇이 변하지 않았을까? 잘 기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 나미노우에호, 1994년 일본에서 태어났다. ‘파도 위’라는 뜻의 배 이름은 해신에게 평안을 빌던 절 이름에서 따왔다. 나는 일본의 남쪽 바다를 18년 넘게 오갔다.”
그림책 『세월 1994-2014』(문은아 글, 박건웅 그림, 노란상상, 2024)는 세월호의 일생을 배의 시점에서 그려냈다. 이 책은 일본에서 운항을 멈춘 배가 우리나라에 팔려 와서 위태로운 항해를 했던 과정에서부터 침몰과 인양까지의 경과가 다큐멘터리처럼 펼쳐져 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세월호 참사의 배경 일부를 짐작할 수 있다.
“수명이 다한 나는 쉬어야 마땅했다. 하지만 2012년, 선박 수명을 늘린 이웃 나라로 팔려 가…….”
온갖 영역에서 규제 완화와 민영화를 외치던 이명박 정부는 여객선 운항 선령 제한을 20년에서 30년으로 풀었다. 박근혜 정부는 증축과 과적, 고박 장치에 대한 안전 감시도 제대로 하지 않고 배를 운항하게 했다. 그리고 2014년 4월 16일, 세월호는…….
이 책은 세월호 인양 뒤에 밝혀진 진실도 꼼꼼히 추적하여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기록했다. “단 하나의 원인이라도 제거되었다면 나는 바닷속으로 가라앉지 않았을 텐데…….”
세월호는 수밀문 열일곱 개와 맨홀이 열려 있는 채로 운항하다 빠르게 침몰했다. 수밀문은 배에 달린 미닫이식 문이다. 닫아 놓으면 갑판까지 물이 차더라도 침몰하지 않고 물이 배 안으로 새어들지 않아서 운항 중에는 닫아놓는 것이 원칙이다. 또한 세월호에는 규정보다 무거운 화물이 가득 실려있었다. 선원과 관리자들은 그것들을 제대로 고정시켜 놓지도 않은 채 출항했다.
문은아 작가는 세월호 참사 이후 마음속에 고래가 사는 것 같다고 말한다. 어미 고래가 새끼를 낳으면 새끼 고래를 온몸으로 밀어 바닷물 바깥으로 올려 숨 쉬게 하는 것처럼, 이 참사의 진실을 끌어올려 밝혀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박건웅 그림작가는 그간 비전향 장기수, 인혁당 사건, 민청학련 사건 등 굵직한 현대사를 만화로 그려온 작가이다. 그는 역사가 과거의 이야기로 인식되었는데, 세월호 참사 이후 역사가 오늘의 일이자 미래를 결정하는 일이라는 걸 체감한다고 했다.
이 책의 화자, 세월호는 말한다. “나는 증거다. 꿋꿋이 버티고 서서 제대로 설명되지 않은 죽음, 누구도 책임지지 않은 참사를 끝끝내 증언할 것이다.”
이 책은 세월호의 진실 한 조각을 담고 있다. 유가족들이 받았던 멸시, 추모집회를 진압한 최루탄과 물대포, 형제자매와 생존자가 겪은 2차 피해와 트라우마는 여기 담겨있지 않다. 그럼에도, 이 책을 어린이 독자와 읽는다면 당신은 자꾸 질문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왜요? 도대체 왜 그랬어요? 지금은 어떻게 되었어요? 우리는 어떤 대답을 준비할 수 있을까.
『꽃할머니』, 『나무 도장』, 『식스틴』, 『용맹호』 등의 그림책을 펴내며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와 제주 4·3항쟁,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베트남 참전군인 같은 현대사의 비극을 정면으로 파헤쳐온 작가 권윤덕은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어린이들에게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어른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를 고백하는 일뿐이었다. 어른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려주어야, 그 지점에서부터 어린이는 자신이 살아갈 사회를 꿈꾸어 갈 수 있지 않을까?”
[필자 소개] 안지혜. 날마다 그림책을 읽는 사람. 그림책 『숲으로 간 사람들』을 썼고 여러 권의 그림책을 편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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