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명 피해자 나오도록 ‘방관’…대형기획사 대표 성폭력

자니스 성폭력 사태, ‘포스트 #미투 반성폭력 운동’의 과제

아츠타 케이코 | 기사입력 2024/04/28 [19:40]

수백명 피해자 나오도록 ‘방관’…대형기획사 대표 성폭력

자니스 성폭력 사태, ‘포스트 #미투 반성폭력 운동’의 과제

아츠타 케이코 | 입력 : 2024/04/28 [19:40]

2023년 3월, 영국 BBC방송이 일본의 대형 연예기획사 ‘자니스 사무소’의 창설자 자니 기타가와(ジャニー喜多川, 1931~2019)가 남성 연예인들 대상(미성년자 포함)으로 성학대를 해왔다고 보도한 것이 계기가 되어 피해자들의 고발이 이어졌다. 피해자 수는 수백 명이나 된다. 일본 언론도 ‘마침내’ 보도를 시작했고, 자니스 성폭력 사태는 이후 큰 파장을 불러왔다.

 

하지만 자니 기타가와의 성폭력에 관한 ‘소문’은 이전부터 있었다. 일본 사회도, 지금까지 성폭력 문제와 싸워온 사람들조차 이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해왔다고 할 수는 없다는 자성이 제기되고 있다. 젠더 연구자이자 ‘페미·세미나 & 카페’ 운영위원인 아츠타 케이코(熱田敬子) 씨의 기고를 싣는다. [편집자 주]

 

▲ 자니 기타가와의 성폭력을 25년간 고발해온 히라모토 준야(平本 淳也) 씨. 오랫동안 목소리 내었지만, 2023년 3월 영국 BBC 다큐멘터리가 나올 때까지 그저 ‘소문’으로만 취급된 것에 대해 무력감을 느꼈다고 말한다. (제공_페미·세미나 & 카페)


[자니스 성폭력 문제를 둘러싼 연표]

 

-1960년대~2022년, 일부 주간지 등에서 자니 기타가와에 의한 연예인 성학대를 보도, 일부 소송으로

-2023년 3월, 영국 BBC 프로그램 ‘포식자, J팝의 비밀 스캔들’ 방영

-2023년 4월, 전 ‘자니스 주니어’가 실명을 걸고 피해를 밝힌 기자회견. 이후 연이은 고발.

-2023년 6월, ’자니스 성가해 문제 당사자 모임‘ 발족

-2023년 7월, 유엔 인권이사회 ‘기업과 인권’ 실무팀의 조사 시작

-2023년 8월,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재발방지특별팀이 성가해 사실을 인정. 9월에 자니스 사무소가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

-2023년 10월, 자니스 사무소 폐업 결정 및 새 회사 스마일업 창업

 

피해자 “25년간이나 고발해왔다”…무력감 호소

 

“사과를 받은들, 뭘 받은들 상처는 낫지 않는다. 나을 수 없는 것을 낫게 해달라는 말이 아니다. 이 일을 뛰어넘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정의가 필요하다.”

 

자니 기타가와의 성폭력을 25년간 고발해온 히라모토 준야(平本 淳也) 씨는 이렇게 말한다.

 

2023년, 필자가 운영위원으로 있는 페미·세미나 카페에서는 ‘포스트 #미투의 반(反)성폭력 운동’ 연속강좌의 일환으로 히라모토 씨를 초청했다. 더불어 그와 같은 해 5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자니 기타가와의 가해를 고발한 나카무라 이치야(中村一也) 씨도 강연자로 함께 했다.

 

일본에서도 미투(#MeToo)의 물결 속에서 여러 피해자들이 들고 일어났지만, 집단고발이 일어난 사례는 아직 많지 않다. 영국 BBC 보도를 통해 알려진 자니스 성폭력 고발을 보며, 1990년대에 일본군 성폭력 피해자들이 자신의 이름을 드러낸 이후 역사적인 미투를 보고 있다고 직감했다.

 

하지만, 일본 사회의 반응은 무뎠다. 언론은 유엔이 움직일 때까지 상황을 지켜보았고, 사회운동을 하거나 성폭력에 대응해온 사람들의 반응도 느렸다. 히라모토 준야 씨는 2023년에 비로소 사회가 움직일 때까지, “오랫동안 목소리를 내었지만 ‘소문’ 정도로밖에 전달되지 않았다. 씁쓸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이 “보잘 것 없고 무력하다”는 생각에 괴로웠다고 한다.

 

▲ 필자 아츠타 케이코(熱田敬子) 씨. 젠더 연구자이자 ‘페미·세미나 & 카페’ 운영위원. 임신중지 경험자 인터뷰, 일본군 전시 성폭력 피해자 지원운동 등을 연구했고, 공저로 『해시태그만으로는 소용없다: 동아시아 페미니즘 무브먼트』(오츠키쇼텐)가 있다. femisemi2017@gmail.com


영국의 방송국 BBC의 보도 후에도, 이렇게 큰 규모의 인권침해 사건이 사회에 즉각 중요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일본 사회가 수많은 성폭력 피해자의 고발에도 불구하고 달라지지 않았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2023년 10월, 일본 민영방송국 TBS는 특집 방송을 통해 자니스의 성폭력을 자국 언론이 보도하지 않은 이유를 검증하고 두 가지로 원인을 분석했다. 첫 번째 이유는 자니스 사무소가 가진 강력한 영향력에 대한 고려, 두 번째 이유는 ‘남성’이 겪는 성폭력 피해에 대한 낮은 의식으로 인해 이 고발을 주간지의 연예 가십 정도로 받아들인 사회적 인식을 꼽았다. 첫 번째는 앞으로 규명과 언론계의 자성이 더 필요하며, 두 번째 원인은 모두가 마주해야 할 문제다.

 

자니 씨의 남다른 성적 취향 탓?

 

2024년 1월, 자니스 성폭력 피해자인 이다 쿄헤(飯田恭平) 씨, 나카무라 이치야(中村一也) 씨, 나가토 코지(長渡康二) 씨를 릿쿄대학 강의에 초청해 이야기를 들었다. 이 세 사람은 다른 두 명의 피해자와 함께 ‘자니스 성가해 문제 당사자 모임’을 떠나 개별 활동을 시작한 참이었다.

 

오랫동안 피해 사실을 밝히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로, 이다 쿄헤 씨가 “자니스에 있었다고 하면 꼭 ‘자니 씨는 ‘호모’냐?’라는 질문을 받는다. 동성애와 성폭력은 다른데…”라고 말했다. 그러자 나가토 코지 씨도 자신은 더욱 직접적으로 ‘자니 씨에게 당한 거지?’라는 질문을 들었다며, “성적인 피해를 다루는 방식이 가볍고, 경솔하다”고 분개했다.

 

눈앞에 있는 사람이 피해자일 가능성을 무시하고, 성폭력 피해를 동성애자를 멸시하는 ‘호모’ 소재로 삼아 소비하는 것은 ‘남성’은 성적인 피해를 당하지 않는다는 믿음, 그리고 ‘주간지의 연예 소식’을 깔보는 시선 때문일 것이다.

 

▲ 자니스 성폭력 피해자인 나카무라 이치야, 나가토 코지, 이다 쿄헤 씨가 2024년 1월 릿쿄대학 강의에 초청을 받아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제공_페미·세미나 & 카페)


BBC 보도 이후, 자니스 사무소 내 재발방지특별팀이 꾸려져 2023년 5월말부터 3개월 간 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세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여기서조차 성가해의 원인을 “자니 씨의 남다른 성적 취향”이라고 적고 있다.(개인의 섹슈얼리티가 폭력의 원인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섹슈얼리티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한다. 페미·세미나에서는 재발방지특별팀에 대한 항의 성명을 준비 중이다.)

 

용기 낸 피해자들을 사회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

 

피해자가 누구이든, 피해는 피해이다. 이 당연한 전제를 확인한 다음 단계는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피해를 이해하기 위해 ‘남성’의 성피해와, 연예계에 대한 시선을 젠더 관점으로 분석하고 사회 문제로서 고찰해야 한다.

 

성가해를 가능하게 하는 사회구조를 ‘강간 문화’라고 한다. ‘남성’이라는 성별과 아이돌이라는 직업 때문에 피해자가 겪은 고통을 가볍게 취급한다면, 누구든 인권침해를 당할 경우 “저 사람은 OOO이니까”라는 식으로 피해자의 속성이 평가의 기준이 되며 적절한 대응과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나카무라 이치야 씨는 자신의 고발에 대해 “보이지 않았던 경치가 보이기 시작했다”며, 후회는 없다고 말한다. “앞으로 나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길 바란다. 혹여 피해를 당했어도, 지금의 세상에서 부끄러워하지 말고 꼭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밝게 살길 바란다.”고 당부한다.

 

▲ 자니스 성폭력을 고발한 나카무라 이치야(中村一也) 씨. “앞으로 나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길 바란다. 혹여 성폭력 피해를 당했더라도, 부끄러워하지 말고 고개를 들고 밝게 살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제공_페미·세미나 & 카페)


성범죄의 피해자를 약하고 보호해야 할 존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하지만 침묵을 선으로 여기는 사회에서, 피해자라고 이름을 밝히는 행동은 굉장히 강력한 것이다. 목소리를 낸 사람들은 이미 고발 다음을 내다보고 있는데, 이를 쫓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회이다.

 

성폭력 피해자를 더이상 고립시켜선 안 돼

 

자니스 성폭력 문제는 여전히 진상규명과는 거리가 멀다. 광고나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 수많은 대기업이 가해의 구조에 가담해온 데다가, 유엔의 지적을 받은 일본 정부는 “법적 구속력은 없다”고 일축했다.

 

가해 사실이 인정되어도 책임자가 처벌받지 않고, 오히려 피해자가 비난을 당하고 인권 회복으로 향하지 않는 사회다. 일본군에 의한 전시 성폭력을 해결하지 않는 것과 같은 구조다.

 

부담을 짊어지고 사회를 바꾸려는 피해자들을 더이상 고립시켜서는 안 된다. ‘자니스 성가해 문제 당사자 모임’의 대표를 맡고 있는 히라모토 준야 씨는 지금 건강 악화로 대표직을 사임하고 요양 중이라고 보도된 바 있다.

 

#미투의 물결을 이어 성폭력 가해를 따져 묻고 피해자에게 정의를 돌려주지 않으면, 목소리를 낸 사람들이 피폐해갈 뿐이다. 카페, 식당, 선술집 같은 일상적 장소에서 사람들이 ‘성폭력 피해 사실을 드러낸 사람이 대단하다’고 당연하게 이야기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일본군 성폭력의 피해자들, 그리고 지금까지 성폭력과의 싸움을 보아온 우리는 그 일이 변호사나 기자, 상담사 등의 제한된 사람들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페미·세미나 카페에서는 ‘포스트 #미투의 반(反)성폭력 운동’ 연속강좌 이후에도 자니스 성폭력 문제 대응을 위해 젠더, 사회학 등의 연구자로 이루어진 운영위원들이 피해자를 인터뷰하여 『자니스 성가해 문제』(아케비쇼보)를 펴냈다. 팟캐스트를 통해서도 언론 보도와 스마일업(자니스 사무소 폐업 후 새로 설립한 회사)의 문제점 등에 대해 다루고 있다. [번역: 고주영]

 

-〈일다〉와 제휴 관계인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 기사를 번역, 편집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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