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화장실에 월경용품 무상 지원 시스템을!‘MeW Project’ 창설한 스기타 에리 오사카대학 교수에게 듣다2021년에 일본에서도 ‘생리 빈곤’이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에 따라 생리용품을 무상 제공하는 지자체나 대학, 학교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화장실 내 칸마다 설치하는 생리용품 디스펜서(dispenser, 공급기)를 개발한 대학교수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계기였을까? 디스펜서 개발자이자 책 『월경의 인류학-여학생의 ‘생리’와 개발지원』 편저자인 오사카대학 스기타 에리(杉田映理)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정리: 가시와라 토키코]
2010년 무렵부터 국제개발의 장에서는 MHM(Menstrual Hygiene Management, 월경 위생 관리) 추진이 거론되었습니다. 생리용품 접근성과 생리용품을 교체하기 편한 화장실 정비, 월경 교육을 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이런 움직임의 배경에는 많은 십대 여성들이 월경 기간에 여러 어려움으로 학교에 가지 못하는 상황에 놓인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현실이 학력에 영향을 준다는 점에 대한 관계자들의 인식이 있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서구의 선진국에서도 경제적 빈곤으로 인해 생리용품을 구하지 못하는 ‘생리 빈곤’(period poverty)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그에 대한 대책 마련 및 ‘생리 평등’(period equity)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졌습니다. 생리용품 무상 제공과 생리용품의 세율 경감, 혹은 비과세 시책을 취하는 국가와 지역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개발인류학 연구자로서 개발도상국의 개발 협력 과정 중의 화장실·손 씻기·월경 관리 등 안전한 물과 위생에 관해 연구해왔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일본에서도 편의점에서 생리용품을 구매하면 구매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생리용품이 보이지 않도록 종이봉투에 넣어주거나, 남성은 극단적일 정도로 월경에 대한 지식이 없거나, 여성들끼리도 좀처럼 생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등 생리의 존재 자체가 숨겨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의 상황을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차에 2021년 3월, ‘모두의 생리’라는 단체가 관련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일본에도 ‘생리 빈곤’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관련 기사: ‘월경 빈곤’ 문제를 결코 간과해선 안 됩니다 https://ildaro.com/9116) 이 조사 결과의 영향을 받아 지자체를 중심으로 생리용품의 무상 배포 움직임이 생겼고, 대학생 주도로 학내에 생리용품을 비치하는 움직임도 확산되었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생리 빈곤’에 대한 대책이기도 하지만 ‘생리 평등’이라는 젠더 관점을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2021년 3월경부터 생리용품을 무상 제공하는 ‘시스템 만들기’를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MeW Project’를 창립했습니다.
전력 필요 없고, 싸고, 재활용 가능한 생리용품 디스펜서 개발
MeW Project에서 개발한 것은 화장실의 개별 칸 안에 놓고 생리대 등 생리용품을 꺼내 쓸 수 있게 하는 ‘디스펜서’입니다.
학교나 대피소에 설치하는 것을 상정하여 디스펜서를 가볍고, 저렴하고, 전력이 필요 없고, 보관이 용이하며, 간단히 조립할 수 있는 종이상자 재질로 만들었습니다. 대피소가 폐쇄되어 디스펜서가 필요 없어져도 종이상자라면 재활용이 가능합니다. 그뿐 아니라, 대피소에서 기부받는 다양한 두께와 사이즈의 생리용품에 맞춰 상자를 접어 활용할 수 있습니다.
오사카대학에 설치된 디스펜서 생리대 중 한 종류는 고흡수 폴리마를 쓰지 않는 것으로 했습니다. 폴리마는 미세플라스틱 오염과 쓰레기 처리의 문제가 있는데, 그 점에 대해서도 역시 생각할 계기가 되길 바랐습니다. 개발된 디스펜서는 작년 10월까지 약 2천8백 대가 판매되어 대학, 학교, 지자체, 기업 등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왜 여성에게만 예산을 쓰냐고?
그런데 이러한 활동을 하면, 여성에게만 예산을 쓰는 것은 불공평하지 않냐는 의견이 꼭 나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해서야 이렇게나 젠더 불평등한 사회를 바꿀 수 있겠습니까. 결과의 평등과 수단으로서의 평등은 나누어 생각해야 하며, 월경 관리와 월경을 둘러싼 다양한 문제를 겪는 여성들을 지원하는 일은 ‘공정’합니다.
디스펜서를 오사카대학 전체 학부에 설치하기에 앞서, 제가 속한 학부에서 먼저 검증실험을 거치고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그러자 단순히 편리할 뿐 아니라 “생리통이 심해서 힘들었는데, 누군가가 곁에서 돌봐주는 느낌”, “안심이 된다” 등 심리 면에서의 긍정적인 영향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그러한 반응 덕에 전체 학부에 설치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우리 학부에서는 생리용품 보충 등의 디스펜서 관리를 학생들이 맡아서 하고 있습니다. 그 일을 하면서 다양한 깨달음과 배움이 있다고 합니다. 초-중-고등학교에서도 디스펜서를 설치한다면, 관리 과정에 학생이 참여할 수 있도록 제안하고 싶습니다. 그 자체가 월경 교육의 일환이 됩니다. 오사카의 어느 초등학교에서는 각 화장실에 설치한 디스펜서를 양호실에 모아, 남학생도 함께 생리용품 보충 작업을 한다고 합니다.
저도 월경 교육 관련한 강연을 할 때면, 남성 참가자도 포함해 크기 등 다양한 생리대, 탐폰, 생리컵, 팬티형 생리대 등 생리용품을 실제로 보고 만지도록 하고, 그 경험을 통해 월경 전후의 신체/정신 증상, 생리에 있어서의 개인차를 알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월경에 대한 이해를 높이면 여성이 생리휴가를 내기 쉬운 환경 조성으로도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1월 1일 노토반도 강진이 발생했을 때, 저도 몇 번인가 현지에 찾아가 대피소 내 생리용품 디스펜서 설치를 요청했습니다. 비상시에 사람을 통한 요청은 좀처럼 실현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소에 각 곳에 디스펜서가 설치되어야 합니다.
또, 대피소 운영자 중에 여성이 있는지 여부에 따라, 생리용품 파악과 관리 등의 대응이 전혀 달라지기 때문에 여성 운영진 역시 필요합니다. (관련 기사: 일본 여성들 ‘재해 여성학’을 만들다 https://ildaro.com/9066)
일본의 생리용품은 우수하지만, 국가의 정책은 지체되어 있습니다. ‘생리 빈곤’만을 문제로 보고 지원 대상자를 한정지어 버리면,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지원이 잘 가닿지 않고 ‘젠더 평등’으로 이어지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효고현 아카이시 시는 시가 설치한 창구에서 생리용품을 배포했는데요. 학교의 아동-학생들도 생리용품을 구하기 쉽게 하자는 목소리에, 지금은 전체 시립학교의 여자화장실 안에 생리용품을 비치했다고 합니다. 정부 차원에서, 월경 관리를 하기 쉬운 환경을 갖추는 일은 젠더 평등을 향하는 확실한 한걸음입니다. [번역: 고주영]
-〈일다〉와 제휴 관계인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 기사를 번역, 편집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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