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U.N.I.T.Y.”라는 이름의 싱글이 세상에 등장한다. 이 곡은 빌보드 차트 상위권에 입성하는가 하면 그래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랩 솔로 퍼포먼스 부문에서 수상했다. 이 곡이 담긴 앨범 [Black Reign]은 여성 솔로 래퍼로서는 최초로 50만장 넘게 판매되었다. 그리고 2022년, 리뷰 미디어 피치포크(Pitchfork)에서는 이 곡을 1990년대 최고의 곡 250곡 중 95위로 선정하기도 했다.
*Queen Latifah “U.N.I.T.Y.”(1993) 뮤직비디오 https://youtube.com/watch?v=f8cHxydDb7o
지금까지 퀸 라티파가 이뤄낸 성과는 어마어마하다. 배우로서도 그 성과를 인정받았고, 음악가로서도 존경을 받는 사람이다. 그래서 래퍼 중에는 최초로 헐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입성(2006)했다. 음악가로서 그래미 시상식에는 일곱 차례 후보로 올랐고, 배우로서 에미상과 아카데미 시상식에도 후보로 올랐다. 자신이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한 TV 영화 〈베시〉(Bessie, 2015)로 제22회 미국배우조합상 TV영화/드라마 부문 연기상(여자)을 수상했는데, 블루스의 여왕이라 불렸던 베시 스미스(Bessie Smith)의 전기 영화로, 퀸 라티파는 직접 베시 스미스 역을 맡아 노래도 불렀다.
이 영화 이야기를 조금만 더 하자면, 흑인 여성 인물을 다룬 작품이며 감독인 디 리스(Dee Rees) 또한 흑인 여성이다. 디 리스는 최근 스티븐 스필버그와 톰 행크스가 제작한 미니시리즈인 〈밴드 오브 브라더스〉, 〈더 퍼시픽〉에 이은 후속작 〈마스터스 오브 디 에어〉의 감독을 맡을 만큼 역량 있는 연출가다. 그가 만든 작품 중에는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치욕의 대지〉가 있는데, 과거 미국 백인들의 인종차별을 직설적으로 다룬 작품이기도 하다.
퀸 라티파의 모든 작품이 그런 건 아니지만, 그가 프로듀서로 참여하는 작품 중에는 인종과 젠더에 대해 다루거나 스테레오타입을 깨트린 작품들이 눈에 띈다. 일례로 최근 호평을 얻고 있는 드라마 〈이퀄라이저〉에서 직접 주연으로 출연하는가 하면, 주인공을 흑인 여성으로 설정하여 순항 중이다.(첫 원작은 백인 남성, 영화 리부트작은 흑인 남성이 주인공이었다.)
세상을 움직인 예술가, 퀸 라티파가 개척한 길
퀸 라티파의 커리어는 1989년부터 시작한다. 그 시작은 래퍼였다. 그리고 커리어의 시작점부터 흑인 여성이 마주한 문제들을 이야기했다. 가정 폭력, 데이트 폭력, 길거리 성추행, 남성이 강압적인 형태의 관계에 관해 목소리를 냈다. 그렇게 나온 첫 앨범은 1989년에 발매된 [All Hail the Queen]이다. 아프리카 문화를 전면에 내세웠고, “Ladies First”라는 곡은 지금까지 ‘페미니스트 앤썸(anthem, 성가)’으로 통한다.
[All Hail the Queen] 앨범은 음악적으로도 훌륭하다. 일찌감치 힙합에 재즈를 들였고(본격적으로 힙합에 재즈가 요소로 쓰이기 시작한 건 1990년대 초반부터다), 레게와 하우스까지 품으며 유연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힙합 초기에 음악적으로 선구자 역할을 하며 선례를 제시했다. 그래서 이 앨범은 미국 의회 도서관에 보존 대상으로 선정되었다.
이후 1991년, 퀸 라티파는 두 번째 앨범 [Nature of a Sista’]를 통해 1집의 장점을 강화했다. 장르적으로 훨씬 다양해졌고, 보컬적인 면모도 드러내기 시작했다.(후에 퀸 라티파는 보컬로서도 앨범을 내고 크게 인정받는다.) 이 앨범에서는 주로 남녀 관계에서의 동등함, 여성으로서의 자부심, 성적 해방과 자기 결정권에 관해 얘기한다.
그리고 빠르게 낸 다음 앨범이 서두에 언급한 [Black Reign](1993)이다. 이 앨범에서 퀸 라티파는 재즈에 대한 애정과 보컬로서의 능력뿐만 아니라 “U.N.I.T.Y.”라는 곡을 통해 젠더폭력 문화에 저항하는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에도 성공한다.
뿐만 아니라 그는 엔터테이너로서도 영역을 개척해왔다. 일찌감치 배우로서 커리어를 병행하며 1999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건 토크쇼도 만들었다. 미국 사회에서 이름을 걸고 토크쇼를 연다는 것은 지금도 그렇지만 과거에도 엄청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래퍼들이 지금의 모습처럼 부를 과시할 만큼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을 거두기 시작한 것이 2000년대 초중반 이후인 것을 감안하면, 정말 이른 시기에 이뤄낸 성과다.
연기를 본격적으로 한 것도 윌 스미스(Will Smith)보다 조금 더 이른 시기부터였다. 윌 스미스가 1990년에 시트콤에 출연하긴 했지만, 본격적인 연기 커리어는 1992년부터로 보는데, 퀸 라티파는 1991년부터 연기 활동을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연기에 있어서도 각종 수상은 물론 큰 규모의 상업 작품에도 다수 참여하며 입지를 쌓았고,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로 오르기도 했다. 2010년에는 슈퍼볼 하프타임 쇼에 다시 섰으며, 2014년에는 그래미 시상식에서 매클모어 & 라이언 루이스(Macklemore & Ryan Lewis)의 “Same Love” 퍼포먼스에서 여러 형태의 커플의 웨딩에 주례로 참여하기도 했다.
‘흑인 여성의 스테레오타입을 바꿔놓았다’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퀸 라티파는 미국 문화 안에서 인상 깊은 순간을 다수 남겼고, 그것이 곧 길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러 장르를 흡수하며 좋은 음악 작품을 만들었고, 뉴 저지(New Jersey)라는 당시 힙합 불모지에서 음악적 성과를 쌓아 올렸다. 무엇보다 인종차별과 성차별 이슈를 동시에 다루며, 흑인 여성으로서 ‘페미니즘 제3물결’에 중요한 역할을 했고, 여성 래퍼로서 길을 열었다.
*Queen Latifah-Ladies First(feat. Monie Love) M/V https://www.youtube.com/watch?v=8Qimg_q7LbQ
AAIHS(African American Intellectual History Society, 아프리카계 미국인 지성사학회)를 비롯한 여러 연구기관에서는 퀸 라티파를 두고 ‘스테레오타입을 바꿔놓았다’고 표현했다. 그간 예민하고 감정적인, 의존적인 이미지였던 흑인 여성 이미지를 진취적이고 서로 똘똘 뭉치는 느낌으로 바꿔놓은 것이다. 사실 흑인 여성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은 아직도 여러 미디어를 통해 답습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퀸 라티파의 존재는 더욱 소중하다.
이름에 ‘여왕’이라는 단어를 쓴 것도, 지금은 멋지고 쿨한 이름이라고 느껴지지만 그가 등장한 당시만 해도 영미권에서 쓰이는 극존칭이자 유럽에서 쓰이는 특정 지위를 개인이 스스로를 표현하는 단어로 쓴다는 것 또한 큰 의미였다고 한다. 그는 이름으로도 유럽중심적인 사고를 깼고, 자신의 뿌리인 아프리카를 내세우며 단어가 가진 의미를 전복시켰다.
최근 그가 두각을 드러내는 새 영역은 프로듀서로서의 역할이다. 자신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는 것으로 시작한 프로듀서로서의 커리어는 어느덧 꽤 많은 편수의 제작자가 되었다. 래퍼로 길을 열고, 래퍼에게 노래도 같이 불러도 된다는 걸 알려줬고, 연기로 새로운 길을 여는가 하면, 이제는 프로듀서로서의 길도 열고 있다. 커리어를 상상하는 데에 있어 좋은 선례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후대에게 정말 큰 차이다. 그런 의미에서 퀸 라티파는 세상을 움직인 예술가이자, 미국 사회 전체를 봐도 좋은 어른이다.
[참고 자료] -로빈 로버츠, 「“Ladies First”: 퀸 라티파의 아프리카 중심주의적 페미니스트 뮤직비디오」, 1994년 여름, 아프리칸 아메리칸 리뷰 28호 No. 2 흑인 여성의 문화 이슈 편 245-257p -미켈 카터, “퀸 라티파와 블랙 파워의 유산들”, 2023.02.22, AAIHS(아프리카계 미국인 지성사학회)의 블로그 미디어 Black Perspectives -섀넌 코차란, 「“나에게 몸을 주세요! 퀸 라티파의 예술성과 활동주의에 나타난 인종, 성별, 체중 정체성」, 저널 오브 힙합 스터디스, 2021 겨울호, 8호 이슈 1, 14-34p
[필자 소개] 블럭. 프리랜서로 일하며 음악평론가, 작가, PD, 기자 등 다양한 호칭으로 불리며 기획, 제작, 연출 일도 한다. 음악시장 내에서 여성주의 실천을 하며, 새로운 의제를 던지고자 노력 중이다. 저서로 『노래하는 페미니즘』이 있다. 음악 관련 글을 쓰지만 디자인 관련 글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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