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까지 망쳐…농민에겐 일상이 된 기후재난

[기후위기 체감하는 여성 농부들의 메시지] 지구를 식히는 농법 지원을

유화영 | 기사입력 2024/06/12 [16:41]

하우스까지 망쳐…농민에겐 일상이 된 기후재난

[기후위기 체감하는 여성 농부들의 메시지] 지구를 식히는 농법 지원을

유화영 | 입력 : 2024/06/12 [16:41]

붕~ 붕~~ 

미니단호박 꽃을 수정하는데 반가운 소리가 들린다. 드디어 꿀벌이 왔구나!

 

귀농 8년 차인 우리 집 주 작목은 미니단호박(보우짱)이다. 미니단호박은 봄, 가을 1년에 2번 농사를 짓는다. 작년 봄까지만 해도 벌이 수정했는데, 작년 가을부터 벌이 없어서 붓으로 암꽃마다 일일이 수정을 해주게 되었다. 마디마다 나오는 곁순을 제거해줘야 해서 안 그래도 일이 많은 작목 중 하나인데 수정까지 사람 손으로 하려니 힘들던 차에, 꿀벌을 보니 정말 반가웠다. 이제 한 마리가 왔으니 친구들을 불러오겠지? 하는 안도감은 잠시고, 금세 불안한 마음이 든다. 얼마 전 ‘언니네텃밭’(여성농민생산자협동조합) 회의에서 들었던, 꿀벌이 없어 미니단호박 농사를 포기하는 농가가 많아졌다는 얘기가 생각나서다.

 

▲ 작년 여름, 집중호우에 하우스 안으로 물이 차올라 작물이 다 잠긴 모습. (유화영 제공)


양파밭을 보니 한숨이 나온다. 작년에 양파 농사가 아주 잘 되어서 작년 가을 2배로 늘려 300여 평을 심었다. 그런데 겨울비가 많이 온 데다 비 온 직후 갑자기 영하로 뚝 떨어지니 양파가 많이 얼어 죽어버렸다. 그나마 살아남은 양파도 잦은 봄비로 잎마름병이 와서 수확량은 작년보다 1/3로 줄 것 같다.

 

겨울비에 양파는 물론이고 농민회 재정 마련을 위해 공동경작한 냉이는 10%도 수확을 못 했다. 1월~2월 즈음 수확할 계획이었으나, 땅이 마를 만하면 비가 오니 냉이 전용 수확기계가 밭에 들어갈 수가 없어 때를 놓치고, 결국 냉이밭은 다정하게 포즈 잡고 사진 찍고 싶은 아름다운 냉이 꽃밭이 되었다가 갈아엎어야 했다.

 

다른 농민들이 겪는 기후재난, 끝내 나도 체감하게 된 지난여름

 

농사는 사람이 반, 하늘이 반이라고 하는데 이제는 하늘이 농사를 짓는 세상이 된 것 같다. 사실 8년째 농사를 지으면서 작년 수해를 입기 전까지만 해도 기후위기를 직접적으로 느끼지는 못했다.

 

2020년 ‘54일간의 장마! 이 비는 장마가 아니라 기후위기입니다’로 명명했던, 섬진강 아래 지역에 엄청난 피해가 있었다. 당시 피해 복구 지원을 다녀오면서도 아직까지는 기후재난이 나의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봄마다 냉해로 매실 농사, 사과 농사짓는 언니들이 피해를 입고, 한 달간 세 번이나 닥친 가을태풍이 뿌려놓은 당근씨를 휩쓸어가 씨를 3번이나 뿌려야 했던 제주도 언니의 이야기도 같은 농민의 입장에서 안타까운 마음이었지만, 나를 절망케 한 것은 아니었다.

 

▲ 작년 여름 농활을 온 학생들과 첫날 새참과 막걸리를 마시며 화기애애하게 찍은 사진.(왼쪽 두 번째가 필자.) 곧 엄청난 폭우가 쏟아져 수해를 입게 될 거라고는 누구도 상상 못 했다. (유화영 제공)


그러다 작년 여름 ‘나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6월 중순 장마가 시작되었고, 그날도 아침부터 장대비가 내렸다. 여름 농활을 온 학생들과 갓 수확해 삶은 햇감자와 감자전에 먹걸리 한 사발까지 맛난 새참을 먹고 다시 하우스 안에서 일을 시작했다. 비는 계속 세차게 내렸지만 그러려니 하며 고수 씨앗을 갈무리하느라 바닥만 보다가 무심코 하우스 밖을 보니 하우스 안으로 물이 들어올락 말락하는 게 아닌가! 100mm가 넘는 집중호우라는 예보가 있었지만 그게 얼마만큼인지 가늠이 안되었고, 하우스가 잠길 수 있다는 건 상상도 못했는데… 하우스 안에는 갓 수확을 시작한 미니단호박이 주렁주렁 달려있고… 바닥에는 말리고 있던 양파가 1톤도 넘게 있는데….

 

그때부터 제정신이 아니었다. 학생들과 같이 정신없이 양파를 상자에 담아 나르기 시작했다. 파레트를 놓고 상자를 차곡차곡 쌓는 사이 하우스 안에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처음엔 발목까지, 점점 무릎까지, 쌓아놓은 양파에도 물이 차오를 것 같아 다시 단을 더 높이 쌓고 그 위로 양파 상자들을 옮겼다. 이 정도면 양파까지 젖지는 않겠지, 제발….

 

이 비가 그쳐주었으면 세상의 모든 신에게 빌고 또 빌었다. 살면서 이렇게까지 간절한 기도는 처음이었던 것 같다. 물이 무릎을 넘어서자 위험할 수도 있어서 학생들을 숙소로 데려다주고 다시 하우스로 오니 그새 시청에서 “위험. 접근금지” 라인을 쳐놓았다. 비는 전혀 그칠 기미가 없고, 인근 폐수펌프가 작동을 하지 않아 하천에서 물이 역류까지 하니 순식간에 더 불어난 물은 허벅지를 넘어 허리까지 차올랐다.

 

애지중지 키워 판매를 앞둔 양파들이 물에 잠기는 것을 차마 볼 수가 없어 양파 1톤을 승용차에 실어 집으로 나르기 시작했다. 평소 10kg도 겨우 들 만큼 근력이 약한 내가 1톤이나 되는 양파를 들고, 이고. 사람이 위기에 처하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다고 하더니 정말 그런 순간이었다. 안방, 거실, 주방 바닥까지 온 집안에 양파를 들이고 보일러로 말리고…. 일부 수확해두었던 미니단호박도 집안에서 후숙을 시키고, 겨우 사람이 지나다닐 만큼의 공간을 제외하고는 미니단호박과 양파가 집안에 가득 찼다.

 

▲ 작년 집중호우에 우리가 농사짓는 땅 2,200평 중 손바닥만큼도 남지 않고 전부 물에 잠겼다. 집까지 잠기지 않고, 다치지 않은 것에 감사했다. (유화영 제공)


비는 다음날까지 쏟아졌고 이틀 동안 330mm가 넘게 내렸다. 농로를 경계로 우리 하우스부터 시작해서 주변 일대가 바다가 되었다. 우리가 농사짓는 땅 2,200평 중 손바닥만큼도 남지 않고 전부 물에 잠겼다. 토종고추, 토종넝쿨콩, 토종오이, 비트, 열무, 들깨, 참깨, 바질, 고수, 쌈채소… 씨앗을 받으려던 고수(수장된 고수 씨앗이 자연발아되어 가을에도, 올 봄에도 싹이 나오고 있다)와 토종완두콩, 비가 그치면 옮겨심으려던 토종검은찰옥수수와 토종들깨 모종까지 모두 잠겼다. 나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구나. 망연자실 그 자체였다.

 

그래도 양파와 조금이나마 미니단호박도 구했고, 무엇보다 집이 잠기지 않아서, 아무도 다치지 않아서 감사했다. 물이 빠진 후 처참한 광경에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하다가도 직접 만들어준 새참에 엄지척 해주고 ‘누님에 죽고 누님에 사는 농활대(우리 아들, 딸보다 훨씬 어린데도)’라며 너스레를 떠는 학생들 덕분에 힘든 줄 모르고 잘 넘길 수 있었던 것 같다. 또 소식을 듣자마자 복구를 위해 달려와준 분들, 구사일생한 양파와 미니단호박을 나서서 판매해준 분들까지 정말 고마운 사람들이 많았다.

 

호우로 땅이 잠긴다고 하는 것은 당시 농작물의 피해에만 그치지 않는다. 땅이 제대로 마르는 데 한 달이 걸렸다. 떠내려온 온갖 쓰레기와 인분, 기름 등으로 오염된 땅을 소독해야 했고 다음 농사는 늦어지고, 병해충도 심해졌다. 다행히 특별재난구역으로 선포되어 지원금을 받기는 했지만, 하우스를 자동으로 열고 닫는 개폐기, 온풍기 등 설비에 대한 것은 빠져있어서 그 부담도 컸고, 농사 소득이 다시 생길 때까지 생계비, 영농비 등을 해결하기 위해 잠을 줄여가며 미친 듯이 일해야 했다.

 

 

▲ 물이 빠지고 난 광경은 처참하다. 수해를 입고 엉망진창이 된 창고 안. (유화영 제공)


소비자들도 사과, 대파값 폭등…피해는 모두가 겪는다

기후대책 없이 수입농산물로 위기 모면할 수 있을까?

 

지금은 웃으며 말할 수 있지만 한편으론 올여름이 두렵기도 하다. 아니 여름만이 아니라 이제는 집중호우가 계절이 따로 없고 지대가 낮은 곳에 농지가 있다 보니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또 잠기면 어쩌지? 하는 트라우마가 생겼다.

 

이제 농사는 농민과 하늘이 같이 짓는 농사가 아니라 하늘이 짓는 농사가 되었고 농민이 아무리 정성을 다해도 어찌할 수 없는 기후재난은 일상이 되었다. 농민들은 정말이지 온몸으로 기후재난을 감내하고 있다.

 

작년 진주에서는 친환경 단감 농사를 짓는 농민이 병해충이 극심해 추석 명절에도 쉬지 못하고 과수원에 갔다가 불의의 사고로 생을 달리했다. 올 3월에는 상주의 복숭아 농사를 짓는 농민이 농가부채 압박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어쩌면 드러나지 않는 죽음들이 더 있을지도 모르고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 농민들도 많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 너무 마음이 아프고 우울해진다.

 

▲ 집중호우로 잠긴 땅이 제대로 마르는 데 한 달이 걸렸다. 떠내려온 온갖 쓰레기와 인분, 기름 등으로 오염된 땅을 소독해야 했고, 다음 농사는 늦어지고, 병해충도 심해졌다. (유화영 제공)


기후재난은 농민에게 생과 사를 가를 정도로 가혹하지만 비단 농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소비자들 또한 사과, 대파값 폭등에서 보았듯이 농산물값 폭등으로 그 피해를 고스란히 겪고 있다.

 

2040년에 한반도 기온이 1.5도로 오르면(이미 산업화대비 1.1도 오른 상태니 이제 0.4도 남았다.) 고랭지 배추는 재배면적이 지금보다 94% 감소하고, 2090년이 되면 재배 가능 면적이 0.3%에 불과하다고 한다. 사과는 2040년에는 재배면적이 70% 감소하고 2090년(기온이 4~5도 오를 것으로 예상)에는 0.3%로 감소, 고추와 마늘은 아예 멸종위기라고 한다.(2022년 농진청 국정감사 자료)

 

이 농산물들이 어느 날 자고 일어나면 갑자기 사라지는 것일까? 아니다. 농민들은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마늘, 배추, 사과를 심고 가꿀 것이다. 작년 사과가 그랬고 올해 양파가 그렇듯이 냉해로, 병해충으로, 또 집중호우로 가뭄으로. 농민들은 일은 더 많이 하고 소득은 안 되는 농사에 해마다 좌절하고 또 좌절하고 좌절하다가 이 농사들을 포기하게 되고 소비자들은 높아가는 농산물값에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한국인의 밥상에서 배추김치는 사라질 것이다.

 

정부는 근본적인 기후위기 대책은 뒷전이고 당장 수입농산물로 위기를 모면하려 한다. 그러나 언제까지 수입농산물이 더 싸다는 보장도 없고 언젠가는 수입 자체가 불가능할 날이 올 수도 있다. 『6℃의 멸종』(마크 라이너스)이라는 책에서는 기온이 3도 상승하면 민족 간에 식량 확보를 위한 전쟁이 발발하고, 기온이 5도 상승하면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더 늦기 전에, 지구를 식히기 위해 모두가 나서야 하지 않을까?

 

지구를 식힐 수 있는 농민들의 힘과 실천

생태적인 방식으로 농사짓고 싶어하는 농민을 지원하는 일

 

농민은 기후위기의 가장 직접적인 피해자이지만 또 지구를 식힐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이기도 하다. 탄소를 저장하는 땅을 돌보고 가꾸는 땅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2020년 IPCC 기후와 토양에 관한 특별보고서에서는 “땅을 살리면 매년 인류가 만들어 낸 온실가스 1/3을 그 땅이 흡수할 수 있다.”라고 한다. 그렇다면 땅을 살리는 농사는 어떤 농사일까? 화학비료, 농약, 기계 전기등 이산화탄소를 방출하는 화석연료를 덜 사용하고 자연에서 온 것을 자연에 돌려주며 생태적이고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농사를 짓는 것이다.

 

▲ “나를 비롯해 많은 여성 농민들이 생태적인 방식으로 농사를 짓고 싶어 한다. 여러 품종을 조금씩 지어 종 다양성을 지키면서, 땅도 살리고, 지구도 식히는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기후생태 직불금’ 등의 정책적 지원이 절실하다.” 필자 유화영 씨의 모습.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으로 땅을 살리기 위해 우선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는다. 농사 처음에는 아침저녁이 다르게 폭풍 성장하는 풀과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라고 덤비다가 골병든다는 게 어떤 건지 알았다. 이제는 자연스럽게 작물을 키우는지 풀을 키우는지 모르게 더불어 산다.

 

하우스 농사를 줄였고 화학비료를 쓰는 대신 버섯농가에서 폐배지를 실어와 축분과 함께 발효시켜 퇴비로 쓰고, 음식물 찌꺼기와 농사 부산물을 액비로 만들어 천연거름으로 쓴다. 기술센터에서 보급하는 미생물, 가끔은 바닷물을 실어와 희석해서 미네랄을 공급해주기도 한다. 작물 간에 특성을 이용해 병해충을 예방하려고 노력한다, (열무와 케일을 같이 심으면 케일이 더 달아서 벌레들이 케일만 먹고, 향이 강한 허브를 같이 심어주기도 한다)

 

나를 비롯해서 많은 여성 농민들이 생태적인 방식으로 농사를 짓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런 농사는 노동력이 훨씬 많이 들어가기에, 소품목 농사만큼 규모를 키우기 어렵고 특별히 가격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어서 개인의 의지만으로 농사방식을 바꾸기가 너무 어렵다. 그래서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여러 품종을 조금씩 지어 종 다양성을 지키면서 땅도 살리고 지구도 식히는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기후생태 직불금’을 지원하는 것이다.

 

유럽처럼 생태농업의 단계를 세분화해서 한 단계, 한 단계 높아질 때마다 인센티브를 준다면 좀 더 많은 농민들이 생존의 위협에서 벗어나 생태적인 농사방식에 용기를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생명지기로, 지구를 지키는 농민으로 더 자부심 넘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필자 소개] 유화영.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농사, 모든 생명있는 것들이 존중받고 더불어 사는 농사, 생명지킴이 농민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사회를 꿈꾸는 귀농 8년차 여성농민입니다.

 

-‘기후위기 체감하는 여성 농부들의 메시지’ 기록은 아름다운재단(beautifulfund.org) 지원으로 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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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ㅠㅠ 2024/06/25 [17:06] 수정 | 삭제
  • 국가적 재난인데 농민들이 감당해선 안된다고 생각해요. 정부가 미리 대응책을 내놔야지...
  • 촌사람 2024/06/20 [12:01] 수정 | 삭제
  • 한해 농사가 얼마나 힘든데 결실의 시기에 이런 일을 겪으시다니 정말 속상하네요. 농사가 하늘이 반, 사람이 반이 아니라 사람이 아무리 노력해도 기후변화에 속수무책이라는 거, 사무실 안에서만 보내는 화이트칼라들이 좀 더 관심 가지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어요.
  • 독자 2024/06/17 [11:39] 수정 | 삭제
  • 농민들이 도시사람들을 떠받치는 어떤 역할을 하고 계신 거 같아서 마음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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