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젤, 새 시대의 페미니즘 아이콘이 되기까지

벨기에의 싱어송라이터 앙젤(Angele) 이야기

블럭 | 기사입력 2024/07/10 [12:05]

앙젤, 새 시대의 페미니즘 아이콘이 되기까지

벨기에의 싱어송라이터 앙젤(Angele) 이야기

블럭 | 입력 : 2024/07/10 [12:05]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중 〈앙젤〉이라는 작품이 있다. 앙젤(Angele)이라는 벨기에 싱어송라이터의 자전적 이야기인데, 그의 성장부터 현재 위치에 이르게 된 계기까지 거르는 것 없이, 꽤 솔직하게 담았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시작된 세계적인 패션 매거진 〈누메로〉(Numero)와의 인터뷰 하나가 어쩌면 그의 이야기를 좀 더 깊이 있게 다뤘는지도 모른다. “세계를 정복한 벨기에 팝스타 앙젤과의 인터뷰”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그는 넷플릭스 다큐에서 했던 이야기보다 훨씬 더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이야기를 한 듯한 인상이었다. 개인으로서, 음악가로서 앙젤이 가진 태도와 철학을 밝힌 인터뷰였다.

 

▲ 앙젤(Angèle)이 2018년 발매한 1집 앨범 [Brol] 자켓 이미지.


이 글은 2021년 다큐멘터리 〈앙젤〉뿐 아니라 2023년 〈누메로〉 매거진과 인터뷰하며 그가 직접 이야기한 내용을 바탕으로, 아직 그리 길지 않은 앙젤의 음악 인생을 살펴보고자 한다.

 

페미니스트 집회에서 앙젤의 노래를 부르는 이유

 

앙젤(1995년생)의 음악은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벨기에 음악가로서는 최고의 위치에 올랐고, 백만 장 이상의 앨범 판매를 기록한 것은 물론, 여러 차트에서 1위를 했다. 이제 그는 영국 윔블던 스타디움을 관중으로 채우고, 미국 뉴욕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건 공연을 개최하며, 영미권 전체에서 사랑 받는 중이다.

 

개인적으로는 ‘두려움이 있으면서도 모험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그는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도 음악적 커리어가 더욱 단단해졌다. 그리고 74회 칸 영화제 개막작인 레오 카락스 감독의 음악영화 〈아네트〉(2021)에 배우로 출연하기도 했다.

 

▲ 74회 칸 영화제 개막작이자 감독상을 수상한, 레오 카락스 감독의 독특한 음악영화 〈아네트〉(Annette, 아담 드라이버, 마리옹 꼬띠아르 주연, 2021)에 출연한 앙젤(Angèle)의 모습. 그의 첫 영화 데뷔 작이다.


음악시장 내에서 독특한 지점이 있다면, 첫 번째로 앙젤은 최근의 팝 스타답게 다양한 장르를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힙합 곡부터 샹송까지 많은 장르를 자신의 음악적 영역으로 삼고, 그러면서 자전적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풀어낸다. 과거의 팝 스타들이 흔히들 인식하는 팝 음악 계열의 음악, 그러니까 디스코로 시작해 알앤비에 가까운, 어느 정도 고정된 형태를 가졌다면, 최근의 팝 스타들은 다양한 장르를 시기에 맞게 풀어내는 편이다. 앙젤은 그런 면에서 뛰어난 팝 스타다. 바로 옆 프랑스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샹송도, 힙합도(벨기에에는 스트로마에라는 유명한 힙합 음악가도 있지만, 프랑스가 힙합 음악 시장이 상당히 크다) 쉽게 받아들인 것이 아닌가 싶다.

 

사실 그보다 더 큰 배경이 있었으니, 아버지가 잘 알려진 음악가였다. 그래서 커리어 초기에는 부모의 존재를 가리고 싶어했다고 한다.(어머니 또한 잘 알려진 배우다.) 다행이었던 건, 그의 이름이 알려지게 된 계기는 SNS에서 자신의 음악을 선보인 콘텐츠가 호응을 받기 시작하면서부터 라는 것이다. 그 전에는 재즈 클럽에서 공연을 했고, 자신의 음악을 직접 비주얼까지 선보이는 작업을 커리어 시작부터 자연스럽게 해온 것이다.

 

다시 돌아와서, 앙젤 또한 앨범을 팝 음악이라는 결에 맞춰서 선보이기는 하나, 음악적으로 굉장히 탄탄하다는 걸 작품 자체만으로도 느낄 수 있다. 여기에 그는 늘 프랑스어로 노래한다. 영국 가수 두아 리파(Dua Lipa)와 함께 만든 곡 “Fever”에서도 그는 영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노래한다. 〈누메로〉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곡에 프랑스어가 많아서 쿨한 것 같다’고 말하며, 자신의 작품이 유럽적인 측면이 있고, 또 이를 전달하고 싶다고 말했다.

 

▲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앙젤〉(세바스티엥 랑소네 브리스, 프랑스/벨기에, 2021) 중에서. 성인 잡지 〈플레이보이〉에 동의 없이 성적 대상화된 사진이 실리는 사건을 겪은 이후, 앙젤이 심경을 밝히는 장면. (출처: Netflix)


그런 그에게 2017년, 큰 사건이 하나 찾아온다. 성인 잡지 〈플레이보이〉지가 매체 성격과 다르게 페미니즘적 메시지를 전달할 거라 얘기하고서 그를 인터뷰하고는, 앙젤을 성적 대상처럼 찍은 사진을 동의 없이 게재한 것이다. 이런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이후, 앙젤은 반대로 더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다짐했다. 자신이 겪은 성차별 경험, 음악 산업 내에서 여성으로서의 위치를 생각하게 되었고, 이 사건을 계기로 더 많은 여성들의 목소리와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공감하게 되었다고.

 

그렇게 나온 곡이 “Balance Ton Quoi(너의 무언가에게 소리쳐라)”다. 이 곡의 제목은 프랑스의 미투 운동 문구였던 ‘Balance Ton Porc(너의 돼지[가해자]에게 소리쳐라)’에서 비롯되었다. 앙젤은 이 곡에 지금 하고 싶은 이야기를 썼고, 이후 많은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이 곡을 부르는 걸 보며 자신이 어느 정도 페미니스트 아이콘이 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밝혔다.

 

“Balance Ton Quoi” 뮤직비디오에는 반(反)성차별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앙젤의 모습을 키치하게 담고 있어, 아마 영상만으로도 메시지가 어느 정도 전달될 것이다. 가사는 자신에게 ‘넌 예쁜 여자치고 바보 같지 않네’, ‘재미있는 여자치고 못생기지도 않았네’, ‘부모님과 오빠가 도와주는 거잖아(오빠는 래퍼다)’와 같이 자신이 직접 들었던 이야기를 담았다. 그리고 ‘날 노래하게 놔둬’, ‘언젠가는 아마 바뀔 거야’라고도 이야기한다. 이 곡이 담긴 앨범 [Brol](2018)은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고, 이 곡은 앙젤이 지금의 위치에 도달하기까지 중요한 역할을 했다.

 

* Angèle - Balance Ton Quoi [CLIP OFFICIEL] https://youtu.be/Hi7Rx3En7-k

 

▲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앙젤〉(Angele, 세바스티엥 랑소네 브리스 연출, 프랑스/벨기에, 2021) 포스터 (출처: Netflix)


지난 해, 앙젤은 미국 최대 음악 축제 중 하나인 코첼라(Coachella) 페스티벌 무대에 섰고, LGBT 깃발을 흔들었다. 앙젤의 행보를 보면, 그리고 그가 양성애자임이 알려졌기 때문에 일견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지만, 코첼라의 오너가 반(反) LGBT 단체에 기부했던 사실이 알려져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조금 더 큰 의미를 부여 받기도 했다.

 

그의 곡 중 “Ta reine”(당신의 여왕)이나 “Tu me regardes”(너는 나를 보고 있다)는 이성애 관계를 노래한 것이 아니라 동성 관계를 노래한 곡이기도 하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를 보면 곡의 해석에 관해서도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가 먼저 커밍아웃을 한 것이 아니라 방송을 통해 아웃팅을 당했다는 사실 또한 나온다. 이후 앙젤은 커밍아웃을 하며, 미디어의 폭력적 방식을 공개적으로 지적했다.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앙젤은 가부장제, 임금차별 등을 비롯한 성차별 문제를 더욱 강하게 인식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꾸준히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중이다. 지하철에서 언어폭력을 경험한 뒤에 쓴 곡이 위에 언급한  “Balance Ton Quoi”로, 유럽 내 페미니즘 찬가가 되었다.

 

프랑스에서 늘 이슈가 되는 것 중 하나가, 앙젤이 제모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Balance Ton Quoi” 뮤직비디오 썸네일에서 이미 볼 수 있지만, 그는 SNS에서도, 무대 위에서도 겨드랑이 털을 깎지 않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왔다. 그 자체로 여성의 몸은 ‘있는 그대로’ 괜찮고, 아름답다는 걸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프랑스 언론은 그가 SNS에 제모하지 않은 모습을 게시할 때마다 기사화하고, 마치 논란인 양 만들어냈다.

 

▲ 앙젤(Angèle)의 “Balance Ton Quoi” 뮤직비디오 썸네일. 출처: https://youtu.be/Hi7Rx3En7-k


이제 앙젤은 자신의 목소리를 더욱 적극적으로 내는 중이다. 물론 대중적인 팝 스타이고 상업적인 성과와도 떼어놓을 수 없기 때문에, 그에게는 지나치게 상업적이라는 지적, 혹은 그가 전하는 메시지가 결국 비즈니스를 위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따라붙기도 한다. 앙젤은 그럼에도 자신의 목소리와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고자 한다.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앙젤을 보면서, 이러한 앙젤의 행보를 보면서, 여전히 많은 국가의 미디어가 개선되어야 할 점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한편으로 페미니스트 팝 스타를 소개할 때 영미권에만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기쁘기도 했다.

 

무엇보다 앙젤의 음악은 정말 뛰어나다. 현재 음악 시장이 지닌 트렌드를 읽어내면서도, 무심한 듯 자신의 색채를 선보이고, 그러면서 감각적이다. 그래서 다른 음악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준다. 재즈와 랩, 디스코와 팝을 모두 오가는 앙젤의 음악을 들어보자. 특히 1집 [Brol]은 그의 유년기부터 앨범을 냈던 시기까지의 고민과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를 모두 담고 있어서, 한 사람의 생애가 그려질 정도다. 가사는 프랑스어로 되어 있지만, 번역기로 번역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감성이 담겨 있다.

 

[참고 자료]

-비올렌 슈츠, “세계를 정복한 벨기에 팝스타 앙젤과의 인터뷰”, 패션 매거진 누메로 (2023.05.08)

-킴 윌셔, “벨기에 팝 센세이션 앙젤: 우리가 페미니즘에 관해 얘기할 때, 사람들은 두려워한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 (2021.12.09)

 

[필자 소개] 블럭. 프리랜서로 일하며 음악평론가, 작가, PD, 기자 등 다양한 호칭으로 불리며 기획, 제작, 연출 일도 한다. 음악시장 내에서 여성주의 실천을 하며, 새로운 의제를 던지고자 노력 중이다. 저서로 『노래하는 페미니즘』이 있다. 음악 관련 글을 쓰지만 디자인 관련 글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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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ㅇㅇ 2024/07/11 [11:02] 수정 | 삭제
  • 음악 엄청 좋다.
  • 우드 2024/07/10 [13:47] 수정 | 삭제
  • 앙젤(앙헬)의 Tout Oublier라는 곡 애정했습니다. 음악도 너무 좋고.. 말하듯 부르는 목소리도 좋고. 뭐랄까, 그녀는 자유로운 느낌을 줘요.
  • 곰곰 2024/07/10 [12:53] 수정 | 삭제
  • 잘 읽었습니다. 영화도 앨범도 모두 보고 들어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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