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누워서 본 풍경

[그림책 펼치는 마음] 게으를 때 보이는 세상, 우리가 보이나요?

안지혜 | 기사입력 2024/07/29 [14:19]

드러누워서 본 풍경

[그림책 펼치는 마음] 게으를 때 보이는 세상, 우리가 보이나요?

안지혜 | 입력 : 2024/07/29 [14:19]

여름이다! 주말농장에는 고추와 오이가 달리고 하루가 다르게 푸른 잎들이 쑥쑥 자라난다. 한낮의 아스팔트는 뜨겁지만 시원한 보리차가 더욱 맛있고, 나무 그늘 아래 늘어져 쉬는 개와 낮잠 자는 고양이를 만나면 덩달아 쉬고 싶어진다.

 

▲ 『게으를 때 보이는 세상』(우르슐라 팔루신스카 글·그림, 이지원 옮김, 비룡소) 중에서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면

 

『게으를 때 보이는 세상』 (우르슐라 팔루신스카 글·그림, 이지원 옮김, 비룡소)은 여름이 주는 생기가 담뿍 담긴 그림책이다. 이 책의 화자는 해가 쨍한 날, 창문을 활짝 열어젖힌 여자아이이다. 아이는 광합성을 하는 식물처럼, 창밖으로 몸을 쭉 내밀며 방긋 웃고 있다. 

 

책장을 넘길수록 아이는 어디론가 이동한다. 마당과 정원, 숲과 강, 들판과 집을 거닐고, 각각의 장소에서 삼촌, 이모, 사촌 언니와 동생, 이웃 아주머니와 우체부 등을 만난다. 그들은 신문을 읽는다거나 시장에 가려고 한다거나 지붕을 고친다는 등 모두 어떤 노동을 한다고 말하지만, 모두 그 자리에 누워서 빈둥빈둥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을 뿐이다.

 

이 책은 누워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사람과 그 사람이 누워서 본 풍경이 한 페이지씩 교차로 펼쳐져 있다. 이 구성은 독자에게 신기한 경험을 선물한다. 독자는 책 속 인물의 자리에서 하늘의 풍경을 누리게 된다. 신문지 글자 사이로 어른거리는 햇빛, 밀짚모자 사이로 쏟아지는 빛의 반짝거림, 나무 위에서 움직이는 새와 다람쥐를 나무 아래나 들판, 해먹에 누운 기분으로 보게 한다. 그렇게 사위어 가는 하늘에서 흩날리는 꽃씨와 밤벌레, 연기까지 누리다 보면 어느덧 하루가 저물고 우리는 밤이 온 풍경에 도착해 있다.

 

▲ 『게으를 때 보이는 세상』(우르슐라 팔루신스카 글·그림, 이지원 옮김, 비룡소) 표지


작가 우르슐라 팔루신스카는 이 환상적인 그림책을 만들기 위해 잉크, 콜라주, 컴퓨터 그래픽 등을 섞어서 그렸다고 한다. 나는 작가가 이 책을 만들면서 얼마나 신이 났을까 상상하기도 하고, 독자에게 여름을 생생히 선물해주려는 한편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며 쉬라고 권유하는 것 같아 뭉클해지기도 한다.

 

지하 4층에 있는 주차 관리실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일하는 할아버지도, 요양원에 가신 큰엄마도, 창문이 없는 일터에서 날마다 열 시간 넘게 일하는 친구 P도, 눈물이 많은 H도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고된 노동과 삶에 지친 이들에게 적절한 순간에 찾아가서, 그이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잠시 맑은 공기를 마시기를 바라게 되는 여름이다.

 

보이지 않는 존재들

 

『게으를 때 보이는 세상』을 보여주고 싶은 이들 중에는 그림책 속 등장인물도 있다. 그중 하나는 『우리가 보이나요?』 (발레리아 마리 글, 프란시스카 실바 데 라 세르다 그림, 김정하 옮김, 모래알)에 나오는 이들이다.

 

『우리가 보이나요?』의 주인공은 태어나자마자 물건처럼 팔려 온 강아지 코코다. 코코와 같이 살던 부부는 아이를 낳은 이후 코코를 마당으로 쫓아냈다. 코코는 점점 더 돌봄을 받지 못했고 결국은 거리에서 떠도는 신세가 되고 만다.

 

▲ 발레리아 마리 글, 프란시스카 실바 데 라 세르다 그림 『우리가 보이나요?』 표지 이미지. (김정하 옮김, 모래알)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 모두를 바라보았어요. 하지만 아무도 나를 쳐다보지 않았어요. 그런데 나만이 아니었어요. 대도시에도, 언덕에도, 공원에도, 길에도 점들이 있었어요.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점들이에요.”

 

코코는 또 다른 개가 사람에게 버림받는 모습을 목격하고 그 개, 미니나와 식구가 된다. 함께 걷고 음식과 물을 나누고 잠자리를 마련한다. 그러던 어느 날 코코와 미니나는 정처 없이 떠도는 여자를 알아차리게 된다.

 

“미니나와 나는 대도시에선 사람들도 보이지 않는 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코코와 미니나는 여자의 곁을 지키고 마침내 여자도 코코와 미니나를 알아보게 되고 셋은 서로를 돌보는 관계가 되어간다.

 

나는 이 그림책의 분위기와 어조, 질감과 분위기를 사랑하면서도, 어쩌면 그래서 더 이들에게 『게으를 때 보이는 세상』에 나오는 것 같은 햇빛과 따스함, 나른함을 선물해주고 싶어진다.

 

▲ “편안히 누워서 쉬고 있는 사람들의 시선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우르슐라 팔루신스카 작가의 그림책 『게으를 때 보이는 세상』 홍보(비룡소) 이미지 중에서 


우리를 살게 하는 것

 

이제니 시인이 쓴 에세이 『새벽과 음악』(시간의 흐름)에는 누가 봐도 심하게 아파 보이는 상처투성이 늙은 개를 보행기에 태운 채 하얀 목련 나무 아래에 앉아 있던 할머니 이야기가 나온다. 집에서는 따듯하게 살펴 주어도 개가 늘 아파하며 우는데, 바깥 햇볕 아래에 나오면 개가 좋아하고 편안해 해서 자꾸 꽃나무 아래에 나온다는 할머니. 그 말을 하는 할머니 역시 아프고 기침이 끊이질 않았다는 이야기를 하며 시인은 한 문장을 내놓는다.

 

“조금 덜 아픈 것이 조금 더 아픈 것을 돌본다는 것. 조금 더 아픈 것이 조금 덜 아픈 것을 살게 한다는 것.”

 

어쩌면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오늘의 햇빛 한 줌과 하늘을 올려다보는 마음, 서로를 알아보는 작은 돌봄들인지도 모르겠다.

 

[필자 소개] 안지혜. 날마다 그림책을 읽는 사람. 그림책 『숲으로 간 사람들』을 썼고 여러 권의 그림책을 편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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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마운글 2024/08/01 [12:47] 수정 | 삭제
  • 여름의 좋은 점도 있다는 걸 깜박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그라나다 2024/07/30 [18:27] 수정 | 삭제
  • 와 그림 너무 예쁘다. 피서 온 것 같은 느낌을 당장 주네요. 신기해. ㅎㅎ
  • 메론 2024/07/30 [14:28] 수정 | 삭제
  • 이미지도 재밌고 글 사이사이 상상하게 되는 이미지들이 있어요.
  • 쉼표 2024/07/29 [16:46] 수정 | 삭제
  • 해질녘 어제는 하늘을 좀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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