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죽으러 오지 않았다” 폭염 속 이주노동자각종 온열질환, 돌연사 위험도…‘작업중지권’ 실효성 보장해야“사모님이 큰소리치면서 자주 하는 말이 있어요. ‘돈 없어, 돈 없어, 상추 빨리 따야 돈이 생기고 너네 월급 받아.’ 처음에는 듣기 싫었는데 이제 익숙해요. 더워서 상추 안 따면 월급 못 받아요. 그러니까 일해야 해요.”
띠어리(가명, 캄보디아 20대 여성) 씨는 하루 일을 마치고 비닐하우스 안에서 나오면서 말했다. 충남 부여에서는 2023년 7월 26일부터 8월 9일까지, 낮 최고기온이 32~35℃로 약 2주가량 폭염경보가 이어졌다. 햇빛과 벌레를 피하기 위해 입은 긴팔과 긴바지 작업복은 땀으로 젖어 축축했다. 작업 모자도 땀으로 젖은 머리로 다 젖었다. 말 그대로 온몸에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낮 최고기온 37.8도, 열흘 넘게 이어진 폭염경보에도 하루 종일 밭, 비닐하우스, 고열의 작업장에서 일해
새벽 5시 넘은 시각, 티나(가명, 캄보디아 20대 여성) 씨가 깻잎 밭에 갈 채비를 하면 컨테이너 방문을 열고 나왔다. 2023년 8월 5일, 경남 밀양에서는 최저 온도가 25.1℃, 최고 기온은 37.8℃으로 여름 들어서 최고 무더운 날이었다. 낮 최고 기온이 35℃를 넘어 열흘 넘게 폭염경보가 이어졌다. ‘농촌 온열질환 사망자 발생’이라는 안전안내문자가 계속 발송되었다. 티나 씨는 긴급재난문자를 받아도 무슨 뜻인지 모른다고 했다.
찜통더위가 연일 기승을 부려도 여전히 이주농업노동자 여성들은 밭에서 일했다. 깻잎 밭에서 일하는 티나 씨와 부추 밭에서 일하는 쓰레이(가명, 캄보디아 20대 여성) 씨에게, 상의 가슴팍에 달려있는 주머니에 온습도계를 넣고 작업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매시간 깻잎 밭에 가서 이주노동자가 소지한 온습도계를 꺼내 기록했고, 체온도 측정했다.
고용노동부, 체감온도 33℃ 이상에는 매시간 10분씩 그늘 휴식 권고 ‘작업중지권’ 있지만 지켜지지 않아 일사병·열사병 발병 위험
폭염 경보가 내려지면, 논밭 등 야외에서 작업하는 노동자들이 폭염에 장시간 노출되어 일사병이나 열사병과 같은 온열질환에 걸리기 쉽다. 일사병의 증상은 신체 온도가 37~40℃까지 올라가며, 어지러움, 두통, 구토 등이 나타날 수 있으며, 시원한 곳에서 휴식을 취하면 대부분 증상은 회복되는 편이다.
이에 반해 열사병의 증상은 신체 온도가 40℃가 넘어가면서 중추신경계 이상과 의식변화를 보이며, 증상이 오래 지속되면 심하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고용노동부는 ‘물, 그늘, 휴식: 폭염에 의한 〈열사병 예방 3대 기본수칙 이행가이드〉’를 내어 폭염에 의해 노동자들이 일사병과 열사병에 걸리지 않도록 기본수칙과 대응요령 및 응급상황 대처에 관한 정보를 제공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2023년 8월 5일 경남 밀양지역은 최고 체감온도가 36.5℃를 가리켰다. 티나 씨와 쓰레이 씨가 일했던 사업장은 30℃가 넘고 습도 80%가 넘어 ‘주의’와 ‘경고’ 단계로 온열질환에 걸리기 쉬운 노동환경이었다.
고용노동부의 가이드에 따르면 체감온도가 33℃ 이상이 되면 “매시간 10분씩 그늘(휴식공간)에서 휴식”이 제공되어야 한다. 두 사람이 일하는 동안 휴식시간과 공간이 매시간마다 주어지지 않았다.
빈번히 발생하는 이주노동자의 ‘돌연사’와 무관하지 않을 것 ‘죽지 않고 일할 권리’ 보장되어야
2021년에 ‘지구인의 정류장’과 ‘경기도의료원 파주병원 노동자건강증진센터’에서 캄보디아 노동자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일하지 않을 때조차 땀을 흘릴 정도의 높은 온도’에 일하는 캄보디아 노동자가 63.5%에 달했다. 이러한 고열 사업장은 산업안전보건공단의 기준에 따라 유해 요인에 해당한다.
실태조사 책임자인 이진우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는 이주노동자의 안전 문제에 우려를 표하며 이렇게 말했다.
“굉장히 고열이거나 냉온 사업장은 산업안전보건법에서 규제를 하고 있어요. 여기서 말하는 ‘땀 흘릴 정도’는 일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땀 흘릴 정도이에요. 이 때문에 생길 수 있는 질병이 있기 때문에 사업주가 해야 될 최소한의 것들이 있어요. 여름철에는 열사병으로 사망하는 경우도 있어서 물 제공한다거나, 그늘이나 휴식 공간을 제대로 설치해 줘야 합니다. 농업의 경우는 땡볕에서 일하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충분히 유해 요인이 될 수 있는 거죠. 열사병에 가면 죽을 가능성이 높죠. 응급 처치를 제대로 빨리 하지 않으면 그냥 죽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돌연사라는 게 밭에서 일하다가 죽으면 그런 사건일 가능성이 굉장히 높죠.”
고열의 작업장에서 일을 하게 되면 열사병, 열탈진이 발생할 수 있고 정도가 심각해지면 사망까지 이를 수 있다. 농업 사업장도 여기에 해당한다. 질병관리청 발표에 따르면 2023년에 온열질환자 수는 2,818명, 사망자는 32명에 달했다. 온열질환이 발생한 장소는 실외작업장이 32.4%(913명)였고, 논·밭이 14.0%(395명)로 그 뒤를 이었다.
이주인권단체 ‘지구인의 정류장’의 김이찬 대표는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주노동자는 본국과 한국에서 건강검진을 해요. 건강한 사람들만 입국하죠. 그런데 몇 년 지나지 않아서 많은 이들이 자다가 갑작스럽게 죽어요. 왜 그러는지 알 수도 없고 그냥 사건이 처리가 되죠. 이런 죽음에 대해서는 한 줄 기록도 남지도 않아요. 이주노동자는 한국에 죽으러 오지 않았잖아요.”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해마다 100명이 넘는 이주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죽었다. 2018년에는 136명, 2019년에는 129명, 2020년에는 118명의 이주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했다. 3~4일에 한 명이 일하다가 죽었다. 산업재해로 인정받지 못한 죽음은 통계로 잡히지도 않는다. 일하다 죽은 이주노동자의 수는 더 많을 것으로 추측된다.
2019년까지 고용허가제로 16개국에서 매년 5~6만 명의 이주노동자가 입국했다. 이제는 그 수가 점점 늘어 2023년에는 12만 1천198명이 입국했고, 2024년에는 16만 5천 명이 입국 예정이다. 건설 현장, 실외작업장, 논밭에서 많이들 일한다. 여름철에 폭염이 예상되면 작업을 중지할 권리가 적극적으로 실행되어야 한다. 이주노동자들이 목청 높여 외친다. “우리는 죽으러 오지 않았다.”
※이 기사는 필자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와 공감직업환경의학센터의 지원을 받아 연구한 사례를 기반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필자 소개] 우춘희. 『깻잎 투쟁기: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과 함께한 1500일』을 썼다. 미국 매사추세츠 대학에서 사회학 박사과정 중에 있다. 캄보디아와 한국에서 현장 연구를 했다. 지금은 한국으로 이주한 캄보디아 이주농업노동자들에 관해서 논문을 쓰고 있다. 먹거리, 이주, 젠더에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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