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죽으러 오지 않았다” 폭염 속 이주노동자

각종 온열질환, 돌연사 위험도…‘작업중지권’ 실효성 보장해야

우춘희 | 기사입력 2024/07/30 [20:32]

“한국에 죽으러 오지 않았다” 폭염 속 이주노동자

각종 온열질환, 돌연사 위험도…‘작업중지권’ 실효성 보장해야

우춘희 | 입력 : 2024/07/30 [20:32]

“사모님이 큰소리치면서 자주 하는 말이 있어요. ‘돈 없어, 돈 없어, 상추 빨리 따야 돈이 생기고 너네 월급 받아.’ 처음에는 듣기 싫었는데 이제 익숙해요. 더워서 상추 안 따면 월급 못 받아요. 그러니까 일해야 해요.”

 

띠어리(가명, 캄보디아 20대 여성) 씨는 하루 일을 마치고 비닐하우스 안에서 나오면서 말했다. 충남 부여에서는 2023년 7월 26일부터 8월 9일까지, 낮 최고기온이 32~35℃로 약 2주가량 폭염경보가 이어졌다. 햇빛과 벌레를 피하기 위해 입은 긴팔과 긴바지 작업복은 땀으로 젖어 축축했다. 작업 모자도 땀으로 젖은 머리로 다 젖었다. 말 그대로 온몸에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 캄보디아 노동자 티나 씨가 경남 밀양의 한 노지에서 깻잎을 따고 있다. 2023년 8월 5일. 새벽 5시 30분에 온도는 27℃, 습도는 93%를 가리켰다. 이날 낮 최고 기온은 37.8℃에 달했다. (사진-우춘희)


띠어리 씨는 덥고 습한 작업장에서 9시간 이상 땀을 흘렸다. 목욕 후에도 하루 종일 달궈졌던 열은 금방 식지 않았다. 방안에는 선풍기 한 대가 돌아가고 있었다. 띠어리 씨는 열이 내리지 않자 머리에 파스를 붙였다. 이렇게 하면 조금이라도 시원해진다고 했다. 많은 이들이 임시방편으로 열을 식히기 위해서 머리에 파스를 붙였다.

 

낮 최고기온 37.8도, 열흘 넘게 이어진 폭염경보에도

하루 종일 밭, 비닐하우스, 고열의 작업장에서 일해

 

새벽 5시 넘은 시각, 티나(가명, 캄보디아 20대 여성) 씨가 깻잎 밭에 갈 채비를 하면 컨테이너 방문을 열고 나왔다. 2023년 8월 5일, 경남 밀양에서는 최저 온도가 25.1℃, 최고 기온은 37.8℃으로 여름 들어서 최고 무더운 날이었다. 낮 최고 기온이 35℃를 넘어 열흘 넘게 폭염경보가 이어졌다. ‘농촌 온열질환 사망자 발생’이라는 안전안내문자가 계속 발송되었다. 티나 씨는 긴급재난문자를 받아도 무슨 뜻인지 모른다고 했다.

 

찜통더위가 연일 기승을 부려도 여전히 이주농업노동자 여성들은 밭에서 일했다. 깻잎 밭에서 일하는 티나 씨와 부추 밭에서 일하는 쓰레이(가명, 캄보디아 20대 여성) 씨에게, 상의 가슴팍에 달려있는 주머니에 온습도계를 넣고 작업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매시간 깻잎 밭에 가서 이주노동자가 소지한 온습도계를 꺼내 기록했고, 체온도 측정했다.

 

▲ 2023년 8월 5일, 티나 씨가 일한 경남 밀양의 깻잎 밭의 온도, 습도 및 티나 씨의 체온의 변화를 기록한 표이다. (작성-우춘희)


티나 씨는 오전에는 검은색 차양이 있는 노지에서, 오후에는 비닐하우스 안에서 일했다. [표 1]을 보면 오전 5시부터 온도가 올라가 오전 6시가 되면 31.2℃와 습도 96%를 기록했고, 대부분 시간 동안 30~35℃, 습도 80%가 넘는 노동환경 속에서 일했다. 오전 11시 30분에는 체온이 38.6℃까지 올랐다. 사업주는 티나 씨와 동료들이 더위에 쓰러질 수 있다며 오후 12시부터 4시까지는 작업하지 말라고 했다. 오후 4시에 비닐하우스에 들어가자 숨이 턱 막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온도는 33℃, 습도는 81%가 되었다.

 

▲ 2023년 8월 5일, 쓰레이 씨가 일한 경남 밀양의 부추 밭의 온도, 습도의 변화를 기록한 표이다. (작성-우춘희)


같은 시각, 쓰레이 씨가 부추 밭에서는 일했다. [표 2]에 나타나듯이, 오전 6시가 되자 32.5℃와 88%를 기록했고 오전 11시에는 온도와 습도가 각각 37.9℃, 85%를 나타냈다. 그는 오전 내내에 30℃도 넘는 작업장에서 일했다. 점심시간에 1시간 쉬고, 오후에 작업을 할 때는 온도가 35.2℃~36.9℃를 보였다. 오후 3시에는 부추 포장작업을 하기 위해서 에어컨이 있는 작업실로 갔다. 온도는 30.8℃, 습도는 65%로 온도와 습도 모두 약간 떨어졌다. 오후에는 다시 부추 밭으로 돌아와 온습도가 각각 36℃, 74%인 곳에서 일했다.

 

고용노동부, 체감온도 33℃ 이상에는 매시간 10분씩 그늘 휴식 권고

‘작업중지권’ 있지만 지켜지지 않아 일사병·열사병 발병 위험

 

폭염 경보가 내려지면, 논밭 등 야외에서 작업하는 노동자들이 폭염에 장시간 노출되어 일사병이나 열사병과 같은 온열질환에 걸리기 쉽다. 일사병의 증상은 신체 온도가 37~40℃까지 올라가며, 어지러움, 두통, 구토 등이 나타날 수 있으며, 시원한 곳에서 휴식을 취하면 대부분 증상은 회복되는 편이다.

 

이에 반해 열사병의 증상은 신체 온도가 40℃가 넘어가면서 중추신경계 이상과 의식변화를 보이며, 증상이 오래 지속되면 심하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고용노동부는 ‘물, 그늘, 휴식: 폭염에 의한 〈열사병 예방 3대 기본수칙 이행가이드〉’를 내어 폭염에 의해 노동자들이 일사병과 열사병에 걸리지 않도록 기본수칙과 대응요령 및 응급상황 대처에 관한 정보를 제공했다.

 

▲ 폭염 대비 노동자 건강보호를 위해 고용노동부(moel.go.kr)가 발표한 ‘물, 그늘, 휴식: 폭염에 의한 〈열사병 예방 3대 기본수칙 이행가이드〉’ 중 일부.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체감온도가 33℃~35℃인 경우, ‘주의’ 단계로 매시간 10분씩 그늘(휴식공간)에서 휴식 제공, 무더위 시간대(14~17시)에는 작업시간대 조정이 필요하다. 체감온도가 35℃~38℃인 경우, ‘경고’ 단계로 매시간 15분씩 그늘(휴식공간)에서 휴식 제공 및 무더운 시간대에는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 옥외작업을 중지할 필요가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2023년 8월 5일 경남 밀양지역은 최고 체감온도가 36.5℃를 가리켰다. 티나 씨와 쓰레이 씨가 일했던 사업장은 30℃가 넘고 습도 80%가 넘어 ‘주의’와 ‘경고’ 단계로 온열질환에 걸리기 쉬운 노동환경이었다.

 

고용노동부의 가이드에 따르면 체감온도가 33℃ 이상이 되면 “매시간 10분씩 그늘(휴식공간)에서 휴식”이 제공되어야 한다. 두 사람이 일하는 동안 휴식시간과 공간이 매시간마다 주어지지 않았다.

 

▲ 폭염경보 속에서 캄보디아 노동자들이 비닐하우스 안에서 깻잎을 따고 있다. 비닐하우스 양쪽 측면에 개폐 창문이 열려있어 바람이 조금이나마 불어왔다. 그렇지만 노동자들은 하루 종일 30℃가 넘는 곳에서 일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흘러 자칫 일사병 및 열사병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사진-우춘희)


노동자에게는 위험한 상황에서 일을 하지 않을 권리인 ‘작업중지권’이 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51조는 “사업주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에는 즉시 작업을 중지시키고 근로자를 작업 장소에서 대피시키는 등 안전 및 보건에 관하여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라고 나와있다. 현장에서 만난 이주노동자들은 이런 권리를 알지도 못했다. 일하지 않으면 일당을 못 받기 때문에 폭염이더라도 비닐하우스 안에 들어가서 일했다.

 

빈번히 발생하는 이주노동자의 ‘돌연사’와 무관하지 않을 것

‘죽지 않고 일할 권리’ 보장되어야

 

2021년에 ‘지구인의 정류장’과 ‘경기도의료원 파주병원 노동자건강증진센터’에서 캄보디아 노동자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일하지 않을 때조차 땀을 흘릴 정도의 높은 온도’에 일하는 캄보디아 노동자가 63.5%에 달했다. 이러한 고열 사업장은 산업안전보건공단의 기준에 따라 유해 요인에 해당한다.

 

실태조사 책임자인 이진우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는 이주노동자의 안전 문제에 우려를 표하며 이렇게 말했다.

 

“굉장히 고열이거나 냉온 사업장은 산업안전보건법에서 규제를 하고 있어요. 여기서 말하는 ‘땀 흘릴 정도’는 일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땀 흘릴 정도이에요. 이 때문에 생길 수 있는 질병이 있기 때문에 사업주가 해야 될 최소한의 것들이 있어요. 여름철에는 열사병으로 사망하는 경우도 있어서 물 제공한다거나, 그늘이나 휴식 공간을 제대로 설치해 줘야 합니다. 농업의 경우는 땡볕에서 일하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충분히 유해 요인이 될 수 있는 거죠. 열사병에 가면 죽을 가능성이 높죠. 응급 처치를 제대로 빨리 하지 않으면 그냥 죽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돌연사라는 게 밭에서 일하다가 죽으면 그런 사건일 가능성이 굉장히 높죠.”

 

고열의 작업장에서 일을 하게 되면 열사병, 열탈진이 발생할 수 있고 정도가 심각해지면 사망까지 이를 수 있다. 농업 사업장도 여기에 해당한다. 질병관리청 발표에 따르면 2023년에 온열질환자 수는 2,818명, 사망자는 32명에 달했다. 온열질환이 발생한 장소는 실외작업장이 32.4%(913명)였고, 논·밭이 14.0%(395명)로 그 뒤를 이었다.

 

▲ 질병관리청에서 발표한 2014~2023년까지 폭염일수, 온열질환자 수 및 사망자 수


폭염일수가 많아지면 온열질환자 수와 사망자 수는 증가한다. 기상청의 통계에 따르면 [표 3]과 같이 폭염일수가 31.4일이었던 2018년도에는 역사상 가장 많은 온열질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기록했다.

 

이주인권단체 ‘지구인의 정류장’의 김이찬 대표는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주노동자는 본국과 한국에서 건강검진을 해요. 건강한 사람들만 입국하죠. 그런데 몇 년 지나지 않아서 많은 이들이 자다가 갑작스럽게 죽어요. 왜 그러는지 알 수도 없고 그냥 사건이 처리가 되죠. 이런 죽음에 대해서는 한 줄 기록도 남지도 않아요. 이주노동자는 한국에 죽으러 오지 않았잖아요.”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해마다 100명이 넘는 이주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죽었다. 2018년에는 136명, 2019년에는 129명, 2020년에는 118명의 이주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했다. 3~4일에 한 명이 일하다가 죽었다. 산업재해로 인정받지 못한 죽음은 통계로 잡히지도 않는다. 일하다 죽은 이주노동자의 수는 더 많을 것으로 추측된다.

 

▲ 2023년 7월말부터 8월 초까지 경남 밀양에는 열흘 넘게 폭염경보가 이어졌다. 검은색 차광막이 있는 깻잎 밭에서 캄보디아 노동자가 깻잎을 따고 있다. (사진-우춘희)


폭염이나 혹한이 계속 이어지는 날에는 어김없이 캄보디아 노동자들의 돌연사 소식이 종종 들려왔다. 페이스북에는 기숙사로 보이는 곳에서 구급대원에 둘러싸여 심폐소생술을 받은 모습, 살아생전의 모습의 사진이 올라왔다. 모두 20~30대 젊은 청년들이었다. 열악한 노동환경, 장시간 노동, 열악한 기숙사 등 노동환경과 관련되어 있을 것으로 추측될 뿐, 원인 규명은 제대로 되지 않은 실정이다.

 

2019년까지 고용허가제로 16개국에서 매년 5~6만 명의 이주노동자가 입국했다. 이제는 그 수가 점점 늘어 2023년에는 12만 1천198명이 입국했고, 2024년에는 16만 5천 명이 입국 예정이다. 건설 현장, 실외작업장, 논밭에서 많이들 일한다. 여름철에 폭염이 예상되면 작업을 중지할 권리가 적극적으로 실행되어야 한다. 이주노동자들이 목청 높여 외친다.

“우리는 죽으러 오지 않았다.”

 

※이 기사는 필자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와 공감직업환경의학센터의 지원을 받아 연구한 사례를 기반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필자 소개] 우춘희. 『깻잎 투쟁기: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과 함께한 1500일』을 썼다. 미국 매사추세츠 대학에서 사회학 박사과정 중에 있다. 캄보디아와 한국에서 현장 연구를 했다. 지금은 한국으로 이주한 캄보디아 이주농업노동자들에 관해서 논문을 쓰고 있다. 먹거리, 이주, 젠더에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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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ㅇㄹ 2024/08/07 [14:01] 수정 | 삭제
  • 이건 단지 이주노동자의 문제가 아니겠죠.. 약자의 얘기죠.. 우리나라에도 약자가 있고, 누구나 약자가 될 수 있으며 그 얘긴 국적 관계없이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에요. 부디 처우가 개선되길 바랍니다.
  • mira 2024/08/01 [11:05] 수정 | 삭제
  • 외국인 노동자 돌연사가 많다는 거 너무 충격적이네요.. 슬픕니다. 예전에 한국에 이주노동 온 가족이 죽어서 시신으로 돌아왔다는 사연을 접한 기억이 났어요.. 진짜 대책이 필요한 것 같은데.
  • 햇님 2024/07/31 [14:21] 수정 | 삭제
  • 밖에 나가면 당장 모기 물리고 폭염에 머리가 이상해질려고 하는 여름 날이네요, 야외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들의 안부가 걱정이 되더라구요. 열사병 예방 수칙들이 얼마나 철저히 지켜지고 있는지 모르지만, 한국이라는 낯선 땅에 일하러 온 청년 노동자들의 건강도 좀 신경 써달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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