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혼 합법화에 비혼 여성 대통령의 기여 컸다?!아시아 최초! 대만의 동성혼 법제화 과정이 시사하는 것: 정치권의 역할성소수자 인권 국제단체인 ILGA World(웹사이트 ilga.org)에 따르면, 현재 동성혼을 합법화한 국가는 전 세계적으로 36개국에 이른다.
아시아에서는 2019년 대만이 첫 동성혼을 법제화한 이후, 네팔의 헌법재판소가 동성혼 금지법을 위헌으로 판결하며 2023년 11월 첫 동성 커플이 혼인신고를 했고, 태국은 올해 6월 혼인평등법률안을 의회에서 통과시켰다.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동성혼 법제화한 대만, 정치 지도자들의 역할은? 대만 인권활동가, 국회의원, 법학자, 언론인 등 40여 명 인터뷰
한국 역시 지난 7월 18일, 대법원이 동성 동반자의 사회보장제도상 권리(국민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를 인정하는 첫 판결을 내리며 성소수자의 권리 확장에 중요한 진전을 이루었다.
김용민, 소성욱 부부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사실혼 관계에 있는 동성부부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받기 위한 소송을 제기했으나, 2022년 1월 1심에서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는 원고 패소를 결정했다. 그러나 이듬해 2심 재판부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평등 원칙을 위반했다고 판단했고, 이는 올해 7월 대법원에서 사실혼 관계의 동성 부부에게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는 최종 판결로 이어지게 되었다. 비록 동성혼을 직접 인정한 판결은 아니지만, 한국에서 성소수자의 인권과 법적 권리를 확대하는 데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가진 결정이다.
한국에서 동성혼 법제화가 지연되는 이유로 흔히 비우호적인 여론과 보수 종교 집단의 강력한 영향력이 꼽힌다. 여론조사 수치는 기관에 따라 차이가 있어 정확한 비교는 어렵지만, 대만 중앙연구원(Academia Sinica)의 대만사회변화연구(Taiwan Social Change Survey)에 따르면, 1991년 대만의 동성혼 찬성 여론은 11%, 반대 여론은 58%였으나, 2013년에는 찬성 여론이 53%, 2015년에는 54%로 늘어났다.
이는 한국갤럽의 조사에서 2001년 한국의 동성혼 찬성 여론이 17%, 2013년 25%, 2023년 40%로 나타난 것보다 높은 수치다. 그러나 2023년 미국 퓨 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의 국제태도조사(Global Attitude Survey)에 따르면, 대만의 동성혼 찬성 여론은 45%, 한국은 41%로 두 국가 간 차이가 크지 않다는 결과도 있다.
2021년 기준 대만의 개신교인은 전체 인구의 5.5%, 천주교 신자는 1.4%를 차지한다. 이는 한국리서치의 2023년 정기조사에서 한국 인구의 20%가 개신교, 11%가 천주교인 것으로 나타난 것과 큰 차이를 보인다.
비록 대만에서 개신교와 천주교 신자가 소수이지만, 보수 종교단체의 반성소수자 운동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강력하게 작용했다. 이들은 미국의 보수 개신교와 국제적 반성소수자 연대를 통해 금전적 및 네트워크 지원을 받았다. 특히 국제가족기구(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the Family)의 회장이자 미국 동성혼 반대 운동을 주도한 전미결혼기구(National Organization for Marriage) 전 회장인 브라이언 브라운(Brian Brown)은 대만을 여러 차례 방문하여 반성소수자 운동을 지원했다. 반성소수자 진영은 민주진보당(민진당)보다 보수적인 국민당 소속 입법의원들을 지지하며, 동성혼 법제화 및 학교 교과과정에서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의 다양성 교육을 제한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대만의 동성혼 법제화 과정에서 성소수자 운동과 사회운동의 역할은 비교적 많이 조명되고 있다.(관련 기사: 한국도 ‘혼인평등의 길’ 한걸음씩 내디디면 된다 https://ildaro.com/9887) 그러나 법제화 과정에서 총통(대통령)을 비롯한 정치 지도자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한국에서도 동성혼 법제화와 다양한 가족 구성권 운동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만큼, 시민사회뿐만 아니라 대통령, 사법부, 국회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대만의 경험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이에 필자는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대만에 머무르며 동성혼 합법화 과정에 깊이 관여한 성소수자 인권활동가, 입법위원(한국의 국회의원에 해당), 법학자, 정부 위원회 위원, 언론인, 종교 지도자 등 40여 명을 인터뷰했다. 동성혼 지지와 반대 여론이 비슷하고, 강력하게 조직된 반성소수자 운동의 영향력이 큰 상황에서, 대만의 정치 지도자들은 어떻게 시민사회와 연대하여 동성혼 법제화를 이루어냈을까?
대만 최초 여성 총통 차이잉원, 페이스북에 직접 동성혼 지지 영상 진보적 성향 헌법재판소 재판관 임명해 ‘위헌’ 결정에 간접적 영향도 미쳐
대만의 동성혼 법제화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인물 중 대만 최초 여성 총통인 차이잉원을 빼놓을 수 없다. 그녀의 임기 중인 2019년에 동성혼이 법제화되었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동성혼 법제화는 총통의 직접적인 권한이 미치는 영역은 아니다. 대만은 프랑스와 같은 준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어, 총통은 국가안보와 외교에 주력하고 총리는 국내 정책을 담당한다. 그러나 총통이 총리와 사법부 재판관을 임명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어, 국내 정치에도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대만의 경우, 헌법재판소가 2017년 5월 동성혼 제한이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린 후, 2019년 5월 행정원이 제출한 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동성혼이 합법화되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차이 총통은 직간접적으로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차이잉원은 대만국립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미국 코넬대학교 로스쿨에서 법학 석사, 런던정치경제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귀국하여 대만정치대학교와 동아대학교에서 법학 교수로 재직했다. 이후 대만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고, 1999년부터는 대만에서 양안관계(중국-대만 관계)를 담당하는 대륙위원회(Mainland Affairs Council) 의장과 국가안전보장회의 수석고문으로 활동했다. 2004년 민진당에 합류한 후, 2008년에는 혼란에 빠진 민진당의 당대표로 선출되며 행정관료와 정당인으로서의 전문성을 쌓았다.
비록 2012년 총통 선거에서 46%의 득표에도 불구하고 패배했지만, 2015년 10월 대만의 프라이드 축제일에(한국의 퀴어문화축제에 해당) “제 이름은 차이잉원입니다. 저는 혼인평등권을 지지합니다.(我是蔡英文,我支持婚姻平權)”라는 15초 분량의 비디오를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려 대만 최초로 동성혼을 공개 지지한 총통 후보가 되었다.
이후 2016년 선거에서 56%의 득표로 당선되었고, 4년 후 재선에도 성공했다. 임기 말기에도 40% 이상의 직무수행평가를 받으며 2024년 5월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아시아에서는 예외적으로 ‘정치 가문 출신이 아닌 여성 대통령’이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비혼 여성으로서, 고양이를 좋아하기 때문에 당선 이후 “법학자이자 동성혼을 지지하는 고양이 집사”라는 뉴스 헤드라인이 뜨기도 했다.
2017년 당시 헌법재판소 재판관 15명 중 차이잉원이 임명한 5명이 동성혼과 같은 사회적 이슈에 대해 진보적인 의견을 가진 인물들이었기 때문에, 총통이 헌재의 위헌 결정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헌재 판결 이후, 민진당이 입법원의 다수파를 차지하고 있었음에도 동성혼 합법화는 빠르게 추진되지 못했다. 이는 야당인 국민당뿐만 아니라 민진당 내부에서도 동성혼을 반대하는 의원들이 다수였기 때문이다. 특히 수도인 타이페이를 제외한 지역에서는 사회적으로 보수적인 입장이 강해, 민진당 소속 의원들은 동성혼 법제화가 선거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을 우려했다.
차이잉원의 동성혼 찬성 입장을 기대하며 민진당을 지지했던 진보적인 젊은 유권자들과 인권운동 진영은 차이잉원이 “사회적 합의”를 강조하며 찬성파와 반대파의 입장을 모두 고려하려는 신중한 접근을 하는 것이 사실상 사안 회피와 책임 회피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그들은 성소수자 문제는 차이잉원 정권의 우선순위가 아니었으며, 단지 표를 얻기 위한 정치적 전략에 지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2018년 당시, 차이잉원은 동성혼 찬성파와 반대파 모두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동성 커플의 혼인 권리를 제한하는 것이 불가능해지자, 동성혼 반대 진영은 당시 민법을 통해 규정되는 결혼 제도를 이성 커플에게만 허용하고, 동성 커플에게는 민법이 아닌 특별법을 통해 생활동반자 지위를 부여하는 법안 제정을 요구하는 것으로 전략을 전환했다.
이에 동성혼 찬성 진영은 생활동반자관계법과 같은 특별법을 만드는 것이 차별적이라고 주장하며, 진정한 혼인 평등을 위해 민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맞섰다. 반대 진영은 2018년 2월, 국민투표를 통해 결혼을 이성애자에게만 허용하는 안건을 제안하기 위해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반대 진영은 가짜뉴스와 공포를 조장하며 성소수자 권리에 반대하는 여론을 형성하려 했다.
결국, 2018년 11월 국민투표에서 성소수자 관련 5개 안건을 포함한 10개의 안건이 상정되었고, 동성혼 합법화 진영은 실망스러운 결과를 맞았다. 반대 측에서 제안한 결혼을 이성애자에게만 국한하는 안건은 통과되었으나, 찬성 측에서 제안한 민법 개정을 통한 동성 커플의 혼인권을 인정하는 안건은 통과되지 못했다.
동성혼 찬성 진영의 활동가 대부분은 호주, 아일랜드, 미국 등에서 동성혼 관련 국민투표 과정이 결과와 상관없이 분열을 초래하고, 성소수자 당사자들에게 상당한 트라우마를 안겨준다는 연구 결과와 경험담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국민투표 이전부터 많은 우려를 표명했다고 한다. 많은 인터뷰이들은 당시 국민투표 국면에서 반대 여론이 강해지자, 성소수자들이 절박함을 느껴 주변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본인이 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하는 사례들이 많이 나왔다고 전했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민투표 결과가 합법화 진영에 실망스럽게 나오자, 이를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의 거부로 받아들여 비관해 자살하거나 자살을 기도한 사람들도 있었다. 몇몇 인터뷰이들은 세상을 떠난 지인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인터뷰 중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국민투표 당일 저녁에는 타이베이의 228 화평기념공원에 400여 명이 모여 서로를 지지하고 위로하는 집회를 열었다. 대만에서 가장 오래된 성소수자 인권단체인 대만성소수자핫라인협회(臺灣同志遊行)는 “Together, Stronger(함께, 더욱 강하게)”라고 적힌 핀버튼을 제작해 나누어 주었으며, 많은 성소수자 지원 단체에서 상담 및 위기 지원 서비스를 제공했다.
총통, 총리, 국회의원 등 정치 지도자들이 활동가들과 연대해 동성혼 법제화
국민투표법에 따라 정부는 3개월 이내에 통과된 안건을 반영한 입법안을 제출해야 했다. 동성혼 반대 진영은 동성 커플의 입양과 국제결혼의 범위를 제한하는 법안을 추진했다. 반면 찬성 진영은 민법 개정이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특별법을 통해 동성 커플의 혼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로비를 이어갔다.
당시 민진당 소속의 수전창(蘇貞昌) 총리는 ‘백래시’(사회의 진보적 변화에 반동하는 여론)를 우려하는 민진당 의원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헌법재판소 해석 제748호 시행법”이라는 다소 복잡한 이름의 정부 입법안을 입법원에 제출했다.
이 입법안은 국민투표의 결과를 반영하여 “결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헌법재판소의 정당성에 기대어 헌재의 결정을 따르기 위해서는 정부가 추진해야 하는 불가피한 법안이라는 점을 강조하여 정치적 부담을 피하려는 전략적 선택이었다.
차이잉원 총통과 수전창 총리 외에도, 다양한 정치 지도자들이 인권활동가들과 연대하여 동성혼 법제화를 위해 노력했다.
인터뷰 면담자들은 2000년대부터 동성혼 합법화를 위한 입법 활동과 연대 활동을 펼친 인권변호사 출신의 민진당 유메이뉘(尤美女) 의원, 국민당에서 유일하게 공개적으로 동성혼을 지지한 제이슨 후(許毓仁) 의원 등의 역할을 강조했다.
특히, 저명한 정치인들 중 일부는 기독교 신앙과 동성혼 지지를 결합하여 성소수자 운동을 지지했다. 현직 부통령인 비킴샤오(蕭美琴)는 2006년에 당시 입법의원으로서 대만에서 최초로 동성혼을 합법화하는 법률안을 제출했는데, 그녀의 아버지는 저명한 장로교회 목사이자 신학자였다. 또한, 차이잉원의 첫 임기 중 부통령이었던 첸지엔젠(陳建仁)은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서 공개적으로 동성혼을 지지하며 다른 지지자들에게 큰 힘을 실어주었다.
강력하게 조직된 반성소수자 운동의 저항과 호락호락하지 않은 여론에도 불구하고, 성소수자 인권운동가들의 수십 년간의 투쟁, 다양한 시민운동의 연대 활동, 그리고 주요 정치인들의 역할이 결합되어 대만은 아시아 최초로 동성혼을 법제화하는 성과를 이뤄냈다. (대만의 동성혼 법제화에 영향을 미친 주요 인물들과 역사에 대해서는 다음 기사를 참고: https://ildaro.com/8604).
이후 추가 입법을 통해 2023년부터는 동성 부부의 공동 입양이 가능해졌다. 이전에는 부부 중 한 사람에게 생물학적으로 연계된 아이만 그 배우자가 입양할 수 있었다. 같은 해에는 ,동성혼이 합법인 국가의 국적을 가진 사람과의 국제결혼만 인정하던 규정이 개정되어 2023년부터는 중국 국적자를 제외한 국제결혼도 가능해졌다.
비록 법 제정 과정에서 진척 속도가 더뎌 차이잉원 총통과 여당에 대한 비판이 있었지만, 현 시점에서 인터뷰 대상자들은 법 제정 과정을 되돌아보며 총통과 여당이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전략이 아닌, 헌법재판소와 국민투표, 입법 과정 등 다양한 민주주의 기제를 통해 오랜 시간 진통과 숙의 과정을 거친 것이 대만의 동성혼의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한다.
대만의 동성혼 합법화 과정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한 인물에 대한 의견은 엇갈리지만, 차이잉원 총통이 직접적이고 간접적으로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는 거의 모든 면담자들이 동의했다.
[필자 소개] 이영임. 현재 캘리포니아의 한 대학에서 젠더정치와 동아시아정치에 대해 가르치고 글을 쓰고 있다. 특히 박근혜의 탄핵이 여성 정치 세력화와 박정희 향수에 미친 영향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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