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초’ 국가 멕시코 변화 오나, 여성 대통령 탄생

여성 살해‧폭력 심각한 사회…첫 좌파 여성 대통령 출현 의미

안태환 | 기사입력 2024/09/02 [14:33]

‘마초’ 국가 멕시코 변화 오나, 여성 대통령 탄생

여성 살해‧폭력 심각한 사회…첫 좌파 여성 대통령 출현 의미

안태환 | 입력 : 2024/09/02 [14:33]

클라우디아 셰인바움(Claudia Sheinbaum, 1962년생)은 여성 정치인이다. 그녀가 10월 1일 멕시코의 새로운 대통령으로 취임하면 역사적인 일이 된다. 멕시코 헌정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마치스모(마초에서 기원한 말로 남성우월주의 문화를 뜻함)가 강한 멕시코의 유리 천장을 깨뜨리는 일이 된다.

 

▲ 2024년 6월 2일 열린 멕시코 대선에서 승리한 클라우디아 셰인바움(Claudia Sheinbaum) 당선인의 모습. ‘조국과 국민, 멕시코의 역사를 대표하게 되어 기쁘다’며 “거짓말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고, 절대 국민을 배신하지 않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지난 8월 16일 인스타그램에 게재한 사진. [출처]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공식 인스타그램 @claudia_shein


멕시코 정부 공식발표에 의하면, 지난 6월 2일에 열린 멕시코 대선에서 여당인 모레나(Morena)의 후보로서 셰인바움은 거의 60%의 표를 쓸어 담아 승리했다. 여성의 정치 참여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은 멕시코에서 이백년의 헌정사상 첫 번째 여성 대통령이 출현한 의미는 매우 크다. 여성보다 남성이 더 많은 지지를 보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전문가들의 평가에 의하면, 전통적인 우파정당들이 SNS에서의 담론경쟁에서 패배했다고 한다.

 

‘마초’ 국가에서 거대 보수양당의 연합후보를 압도적으로 누르고 당선

 

그렇다면 클라우디아 셰인바움은 별 문제없이 앞으로 6년간 인구가 1억 2천만 명이 넘는 멕시코를 이끌 것인가? 그렇지 못할 것이고 어려움이 많을 것으로 전망된다. 왜냐면 라틴아메리카를 포함한 현재 세계적 정치지형은 우파가 득세하는 흐름이기 때문이다. 특히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등 소위 전통적인 유럽 강국들에서 그러하다. 라틴아메리카에서도 법을 통한 ‘부드러운’ 우파 쿠데타 등이 브라질, 볼리비아, 페루, 에콰도르에서 일어났고 현재에도 그 압박 또는 공세가 강하다.

 

또한 이번 멕시코 대선에서 비록 셰인바움에 의해 큰 차이로 2등으로 밀려난 후보인 호치틀 갈베스(Xóchitl Gálvez)는 거대양당인 PRI와 PAN의 연합후보였다. 거대양당의 정치적 힘은 아직 크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일부 좌파가 기대하는 것은 이번 그녀의 압도적 승리가 전통적인 보수 양당제(PRI/PAN) 붕괴의 암시로 해석할 수 있을 가능성이다. 보수 우파 세력을 뒷받침해오던 지식인들 역시 당황하고 있는 것 같다.

 

전임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AMLO) 대통령은 형식적인 분류로 ‘중도좌파’라고 하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좌파 정치인이다. 그는 현 여당 모레나(Morena)를 만든 매우 독특한 멕시코 진보진영의 아이콘이고, 현재의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당선자를 자신이 시장으로 있던 멕시코시티에서 키워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녀는 멕시코국립대학(UNAM)의 에너지공학 박사로 기후생태위기에 맞춤형 정치인이다.

 

멕시코는 세계에서 “마초”국가로 유명하다. 가정에서 자녀들과 부인을 가죽혁대로 제압하는 것을 자랑할 정도이다. 여성학대와 여성 살인(페미사이드- 대표적인 사례가 북부 국경도시 화레스시의 여성 연쇄살인을 들 수 있다)도 아주 많다. 따라서 앞으로 젠더 평등을 위한 구체적인 정책 추진을 어떻게 할 것인지 관심을 안 가질 수 없다.

 

▲ 클라우디아 셰인바움(Claudia Sheinbaum) 멕시코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7월 발간된 책 『침묵의 페미니즘』(Feminismo silencioso, 저자-베아트리스 구티에레즈 뮐러 Beatriz Gutiérrez Müller)을 읽고 있는 모습을 공식 SNS에 올렸다. [출처]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공식 인스타그램 @claudia_shein


2014년 사범학교 학생들 43명 강제실종 사건,

대규모 시위와 비판적 사회운동으로 번져 ‘정치적 변곡점’

 

특히 이번 대선 직후 멕시코의 진보 매체인 〈호르나다〉(JORNADA)에 따르면, 2014년 멕시코 중부 게레로주에서 있었던 아요찌나빠(Ayotzinapa) 사범학교 학생들 43명의 강제실종사건의 부모들이 물러나는 전 대통령 오브라도르를 만나 신임 대통령 셰인바움에게 “다리”가 되어 실종자들의 수색을 계속해달라고 부탁했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아르헨티나 독재 시절부터 강제실종과 같은 폭력 사태가 자주 일어났다. 결국 이 사건은 2018년에 멕시코시티에서 대중들이 대규모 거리 시위를 통해 실종학생들의 부모에게 아주 강한 사회적 연대를 표현하고, 정치적으로 함의가 큰 비판적 사회운동을 낳은 대표적 배경이 된다.

 

그렇게 된 이유는 멕시코 사회가 이 사건에 대해 오랫동안 형성된 집단적 문화적 트라우마를 부여한 때문으로 학자들이 진단하고 있다. 혹시 학생들의 실종이 정부(공권력)에 의한 “더러운 전쟁”의 전략의 하나가 아니었나 하는 분노가 전국을 뒤엎은 것이다. 그 사건 자체도 비극적이지만 멕시코 사회가 이 사건을 둘러싸고 격렬한 반응을 한 것이다. 특히 실종자 부모들에 대해 집단적으로 정서적 공감을 표출했다.

 

어느 나라든지 역사의 흐름에는 중요한 변곡점이 있는데 멕시코의 경우, 이 대규모 시위사건은 바로 이런 변곡점이 되었다. “모든 사람의 인권을 중시하는, 특히 가난한 사람을 우선 한다”는 모레나 정당의 캐치프레이즈 대로, 좌파 정치인인 오브라도르를 2018년 대통령으로 만드는 “새로운 사회적 서사”의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멕시코 역사에서 이전의 중요한 역사의 변곡점은 1910년에 터진 멕시코혁명이었다. 이 혁명은 특이했다. 혁명의 적은 금방 무너졌지만 혁명 세력 내부의 내전이 10년 이상 시간을 끌다 결국 온건파가 승리, 혁명을 제도화한다는 명분의 제도혁명당(PRI)이 1929년 집권하여 2000년까지 단독으로 장기 집권하게 된다. 그리고 2000년에 신자유주의 정부(PAN)가 들어서면서 소위 형식적 민주주의의 꽃인 정권 교체가 가능해진다. 다시 말해 멕시코는 겉으로는 민주적이지만 속으로는 권위주의적인 소위 “완벽한 독재”체제였다.

 

최근까지 가장 핵심적인 정치 과제는 어떻게 하면 멕시코의 악명 높은 암살 등의 폭력을 줄일 것인가에 있다. 전임 좌파 오브라도르 정부의 대 마약단 정책은 겉으로는 강경하지 않았다. 이에 비해 그전의 우파 신자유주의 정부들은 겉으로는 강경한 대 마약단 전쟁을 선포했지만 실제로는 비판적 사회운동만 위축되고 마약단은 오히려 건재한 역설을 보였다. 이미 경찰, 검찰등 공권력의 일부가 마약단에 포섭되어있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에서 2024년의 이번 멕시코 대선은 정치 지형적으로 커다란 변곡점을 그리고 있을 가능성이 있고, 기후생태위기, 4차 산업혁명, 소수자 인권보호 등의 관점에서 향후 멕시코 정치가 어떤 궤적을 보일지 주목하게 된다.

 

공정무역과 ‘에너지 주권’, 참여 민주주의, ‘부의 재분배’

실질적 젠더 평등, 여성폭력 근절 내세워

 

셰인바움에 대한 어느 평가를 보면, 그녀가 시민들의 여론 지지도가 아주 높은 오브라도르에 너무 의존적이고 카리스마가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런 지적은 미디어의 안일한 신화적 발상으로 보인다. 중요한 것은 과연 셰인바움이 구체적 정책을 설득력 있게 펼쳐 오브라도르식 진보 정치지형의 헤게모니를 계속 구축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 ‘선거운동을 마감’한 클라우디아 셰인바움(Claudia Sheinbaum) 멕시코 대통령 당선인의 모습. [출처]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공식 인스타그램 @claudia_shein


셰인바움에 대해 책을 쓴 저자 아르뚜로 카노(Arturo Cano)는 이번 대선의 결과도 정확하게 예측한 바 있다. 셰인바움의 경제정책과 관련하여, 그는 “공정무역과 민주주의”를 강조했다. 셰인바움은 공정무역(comercio justo)을 강조하며 한국 사회에서도 큰 이슈인 RE100(재생가능 에너지 100% 캠페인)에 대한 향후 대응도 주목된다.

 

부의 재분배와 생태 환경에 대한 배려도 중요하다. 카노는 “1994년의 나프타(북미자유무역협정) 체결 때만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당시에는 투자 액수를 늘리거나 또는 GDP의 성장만을 생각했다. 이제 중요한 도전과제는 그 투자가 지리적으로 재분배되고 복지를 만들어내야만 하는 것이다”라고 지적한다. 무엇보다 셰인바움은 복지와 고용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정부는 투자계획을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조건이 있다. 전 세계와 멕시코를 강타하고 있는 기후위기를 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시민의 공공적 관여가 중요하다.

 

“나프타 2.0을 넘어: 대중과 지구를 위한 진보적 통상의 아젠다를 향해”(Beyond Nafta 2.0, 2019년 6월 보고서)를 보면, 미국이 주도하는 북미(미국, 캐나다, 멕시코)의 기업이익을 우선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국제적 좌파의 비판적, 대안적 인식을 담고 있다. 멕시코는 2026년에 나프타의 후속협정인 T-Mec을 다시 검증할 것이라고 한다. 왜냐면 이 새로운 협정은 임기가 끝나가는 예전 PRI(제도혁명당) 정부의 페냐 니에토에 의해 협상이 되었고, 외국인 투자자의 요구를 너무 받아들여 통상적으로 볼 때 논쟁거리가 많다고 지적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급진적인 변화 대신에 온건한 변화를 추구할 것 같다. 나프타는 멕시코인들에게 신자유주의의 문제가 추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임을 인식하게 했다. 나프타는 1994년 1월 1일 발효되었고 이것을 개정한 T-Mec은 2018년 11월 30일 서명되었다. 한편 오브라도르는 2018년 7월 1일 대선에서 승리했고 2018년 12월 1일 대통령에 취임했다. 오브라도르의 권력 인수팀이 상기 T-Mec의 제8장에 멕시코가 석유에 대해 양도할 수 없고 절대적이고 직접적인 소유와 지배 권리를 지니고 있다는 조항을 삽입했다.

 

셰인바움 당선자는 공정무역에 대한 생각을 이미 1991년부터 (스탠포드 대학 재학시절부터) 가지고 있었다. 과거에 셰인바움이 1991년 미국의 스탠포드대 학부생이었을 때, 당시 NAFTA협정이 협상 중이었는데 그녀는 자유무역에 반대하고 공정무역을 위한 학생시위에 참여했었다. NAFTA는 1994년 1월 1일에 발효되었고 사파티스타 해방군은 같은 날 궐기한바 있다. 당시 그녀는 미국을 방문 중인 전직 대통령, 카를로스 살리나스(Carlos Salinas)를 향해 멕시코의 민주주의를 복구시키고 미국과의 공정한 무역을 복구시킬 것과, 조국은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해야 한다는 사회정의의 정신과 열망을 표현했다고 카노는 강조했다.

 

영국 언론 파이낸셜 타임즈는 “멕시코 주류 엘리트가 좌파의 압도적 선거 승리를 이해하기 위해 현재 애를 쓰고 있다”는 기사에서 “멕시코의 선거 결과를 설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며, 수십년 간 빈곤율이 높고 불평등이 심하고 임금이 낮았는데 로뻬스 오브라도르가 최저임금을 두 배로 올리고, 사회 프로그램을 확장하고 약자들 편에 있다는 일관된 메시지를 발신했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여러 가지 맥락에서 멕시코와 미국 사이의 외교는 멕시코 대통령에게 매우 중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셰인바움이 미국 스탠포드 대 학부를 졸업한 것이 부드러운 외교를 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미국사회를 잘 이해할 것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셰인바움이 매우 민족주의적 색채를 가진 UNAM(멕시코 국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것도 주목해야 한다. 그녀는 자유권보다 ‘사회권’을 강조하여 “노동권, 건강권, 여성의 권리, 청년, 돌봄의 권리”를 내세운다. 특히 여성 대통령으로서 실질적 젠더 평등, 여성폭력의 근절을 강조하고 있다. 사실이 문제는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고 하루아침에 달성할 수 있는 일도 아니므로 신중하고 지혜롭게 접근해야 할 것이다.

 

또한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에너지 주권”과 “식량주권”을 내세워 자신의 전공 분야(에너지 공학)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어 흥미롭다. 멕시코의 사회운동 단체들이 과거의 나프타의 구도를 비판하며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해온 주제이기도 하다. 세계적인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생태환경의 유지를 강조하고 있으며, ‘민주주의 강화’를 위한 참여민주주의와 선거제도 개혁이 단순히 레토릭에 그칠 것인지 여부도 앞으로 우리가 관심을 가질만하다.

 

[필자 소개] 안태환.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연구원.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와 동 대학원을 마치고, 스페인 콤풀루텐세 대학교 사회학과에서 수학하다가, 남미 콜롬비아 하베리아나 대학교에서 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에서 HK교수로 재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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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9/04 [19:03] 수정 | 삭제
  • 변화가 왔음 좋겠다!
  • ㅇㅇ 2024/09/03 [14:07] 수정 | 삭제
  • 흥미로운 소식이군요. 멕시코에 여성살해와 민간인 납치가 큰 문제라는 건 알았는데, 국민들이 정치적으로 힘을 보여주고 있다는 뉴스 보니까 반갑습니다. 좌파 여성 대통령이 나왔다니 멋지네요.. 잘 헤쳐나갔으면 좋겠습니다.
  • H.S 2024/09/02 [16:37] 수정 | 삭제
  • 페미니즘 책 읽는 여성 대통령 우리도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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