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플 권하는 사회

크리스마스에 뭐하세요?

문이정민 | 기사입력 2003/12/22 [02:57]

커플 권하는 사회

크리스마스에 뭐하세요?

문이정민 | 입력 : 2003/12/22 [02:57]
“마술보다 신비로운 사랑고백, 아주 로맨틱한 환상의 프로포즈 커플이벤트”
“커플을 위한 크리스마스 파티, 빼빼로 게임, 커플댄스 경연대회, 프로포즈대회”
“드라마 겨울연가의 촬영지인 중도를 배경으로 찍은 베스트커플 사진 공모”
“크리스마스 이벤트, 예쁜 선물상자 + 사랑의 서약서 + 리본 + 사랑의 캔디”
“커플짱 페스티벌 개최”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각종 커플 이벤트들이 앞다투어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서로의 사랑과 소속감을 확인하고자 하는 커플을 타겟으로 한 커플상품들도 소개되고 있다. 커플링, 커플룩, 커플장갑, 커플속옷, 커플석 심지어 커플증까지. 많은 사람들이 ‘크리스마스’ 하면 ‘연인들의 특별한 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렇듯 ‘커플’을 중심에 둔 광고 이미지와 무관치 않다.

“발렌타인 데이에 초콜릿 하나 받아봐야”

우리 사회에서 ‘커플’은 그만큼 장사가 되는 아이템이다. 한 광고기획자는 “커플 시장은 이미 형성돼 있다. 발렌타인 데이, 화이트 데이, 빼빼로 데이, 크리스마스 등의 시즌에 이러한 커플들을 중심으로 한 상품들을 기획하면 수익성은 확실하다”며 “커플들이 시장을 움직이는 힘”이라고 덧붙였다. ‘커플’이 확실한 시장성을 약속하기 때문에 각종 서비스 회사에선 다양한 상품기획에 매진하고 있다. 일체감을 확인하고 과시하고 싶어하는 커플들의 심리를 자극하는 것이다.

유독 일체감과 소속감을 강조하는 한국 특유의 커플중심 문화는 우리에게 아주 익숙하다. 그러나 한국을 처음 방문한 한 외국인은 거리에서 커플룩을 입은 남녀들을 보고 “굉장히 의아했다. 특수한 집단이거나 상점직원들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말한다.

남에게 ‘보이고, 인정 받고, 서로를 확인하는’ 과정이 사랑하는 관계라면 응당 갖게 되는 자연스러운 욕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무차별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커플상품들과 생산되는 이미지들이 낳는 소외감 역시 만만치 않다. ‘신경 안 쓰면 그뿐’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이미지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중학교에 재학중인 한 남학생은 “각종 ‘데이(day)’ 한번 챙겨보고 싶어서 (애인을) 사귀었는데 사실 사귀고 보니 별로 할 일도 없다”고 말한다. 대학교 3학년에 재학중인 김선영 학생은 “나이 더 먹기 전에 연애해서 ‘발렌타인 데이’ 같은 날 초콜릿이라도 하나 받아봐야 할 것 같다”고 말한다. ‘커플’을 만들고자 하는 욕구는 ‘연애 이미지에 대한 욕구’인 경우도 많다. 게다가 이렇듯 커플상품 전략과 이미지 대부분이 ‘젊은 이성애자’들을 모델로 하기 때문에 ‘나이든’ 커플, 혹은 ‘동성애자’ 커플 역시 소외되기 십상이다.

‘커플’중심의 문화가 자리잡다 보니 그 소외감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솔로부대’ 붐이 일기도 했다. ‘12월 25일은 원래 집에서 휴식을 취하며 TV를 보라고 주어진 날이다’, ‘우리 솔로부대는 크리스마스를 가족과 뜻 깊게 보낸다. 우리는 정이 넘치는 솔로부대다’ 등의 구호를 외치는 ‘솔로부대’가 인터넷을 통해 급속도로 호응을 받고 있다.

‘선의’의 강제 소개팅?

커플중심 문화를 반영하고, 이를 부추기는 것은 각종 커플 이벤트나 상품전략에서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커플’ 만들기 전략은 일상 곳곳에서 자연스레 이뤄진다.

“회사에 들어갔는데 내가 솔로라고 하니까 뜬금없이 솔로인 남자사원 하나랑 이어주려고 하는 거에요. 내 의견은 묻지도 않고. 하루 이틀도 아니고 정말 끔찍했죠.” 3년차 회사원인 박모씨(29세)는 신입사원시절부터 계속되는 집단적인 ‘짝짓기’ 분위기에 학을 뗐다. 남자에 관심도 없고, 연애하고 싶은 마음도 없는데 남자친구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과장서부터 동료직원까지 “쟤 어떠냐, 이어줄까”, “얼른 남자친구 사귀어야지” 등의 ‘쓸데없는 참견’을 멈추지 않았다.

광고회사에 근무하는 이모씨(28세) 역시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나니 여기저기서 소개팅 시켜주겠다고 하는데 그게 더 스트레스였다”고 고백한다. 아예 깜짝 소개팅을 강제로 당하는 경우도 많다. 너무 화가 나 항의를 했지만 “커플이 있어야 행복하다. ‘선의’의 강제 소개팅이었다”는 능청스런 답변만 돌아왔다. 당사자가 뭘 원하는지에 상관없이 ‘애인이 있어야 행복하다’는 근거 없는 ‘커플 지상주의’가 개인을 피곤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중학교 교사인 김모씨(28세)는 “중학생들 사이에서도 연애를 해야 뭔가 있어 보인다는 의식 때문에 별 생각 없이 사귀고 헤어지고 반복하는 일이 많다. 뚜렷이 원해서라기 보다 안 하면 모자라 보이니까 일단 ‘깔’(애인)은 만들고 보자 식”이라면서 ‘커플’이 되고 싶어하는 중학생들의 심리를 설명했다.

아이디가 ‘단청’인 한 여성은 <일다> 몸과 성 ‘나에게 연애는’ 코너에 “내가 연애하는 이유는 한 가지다. 친구들이 다 연애를 하기 때문이다. 애인들을 동반해서 만나는 자리는 나에게 불편했다. 그래서 나도 애인을 만들었다. 애인이 알면 좀 섭섭하게 생각할 지도 모르겠지만, 사실이다”라고 의견을 남겼다. ‘남들이 다하기 때문에’, ‘남들이 좋다고 하기 때문에’ 커플이 되기도 하는 실상을 보여준다.

사실 ‘커플’중심의 문화는 ‘혼자’를 인정 못하는 한국사회의 집단문화와 무관치 않다. 혼자 밥 먹는 것, 혼자 영화 보는 것, 혼자 술 마시는 것 등이 한국에서는 모두 ‘좀 이상한 일’로 간주된다. 개인의 다양한 욕망과 삶의 형태를 인정하기보다 천편일률적인 집단문화를 강요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에 이상하게 보이지 않기 위해서 늘 누군가와 함께 해야 할 것 같은 강박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커플’이 되기를 유도하는 형형색색 이미지의 상품전략, 끊임없이 남녀를 이어주려는 이성애적 커플문화, 개인보다는 소속감과 일체감을 중시하는 집단문화가 싱글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내가 원해서, 내가 원하는 시기에, 내가 원하는 사람과 연애하고 싶다”는 개인의 당연한 욕구 또한 실현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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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03/12/26 [22:14] 수정 | 삭제
  • 이러한 우리의 커플문화도 결국 집단주의 문화가 발현된 전체현상의 작은 한 귀퉁이에 불과합니다..

    커플문화만 비판할게 아니라, 집단주의 문화 그 자체를 비판해야 합니다. 그런 집단주의 문화가 손쉬운 상업적 목적으로 이용되는거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기사는 대체로 방향을 잘 잡은 것 같네요.

    비단 커플문화 뿐만 아니라 생활의 모든 부분에서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개인주의 문화의 확립이 절실합니다.
  • 을의 경우 2003/12/26 [13:52] 수정 | 삭제
  • 다행히 (?) 저는 꿋꿋이 버티면서 혼자서 살다가 저에게 너무 잘 맞는 지금의 남편을 만나서 결혼을 했어요.

    그 전에는 서른 넘은 노처녀로 애인만들 생각도 안하고 사니까 상사들의 반갑지 않은 호의때문에 많은 고통을 받았죠. 아랫분들 언급하신 것처럼 회사 안에서 이총각 저총각과 엮어주려고 하는 노력.. 그 부작용을 아십니까... 회사에서 노총각 노처녀들은 스스럼없이 같이 일할수도 없어요. 모두의 생각이 콩밭에 가있다보니.

    그보다 더 굴욕적인 것은... 울회사가 '을'을 많이 하다 보니까...'갑'인 회사에 노총각이 있다 그러면 열씨미 저를 팔아먹습디다. 무슨 선심쓰는 것 같아요. 근데 저의 의사는 묻지도 않고 말이죠. 참 곤란하데요... --.--;; 그쪽도 물론 곤란해하지요. 암튼 같이 일하면서 내내 힘들어져요.

    암튼, 무슨 사연이 있든 아님 그냥 성격탓이든 아님 뭐 다른 일에 매진하고 있든 '지금 사귀는 사람 없고, 당분간 생각이 없다'라고 하면 그냥 두면 좀 좋아요...

    아니면, 굳이 짝을 지워주고 싶어 못참겠다 그러면... 적어도 업무에 방해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뚜쟁이 경력을 쌓으라고 말하고 싶군요.
  • 2003/12/25 [10:37] 수정 | 삭제
  • 상업적인 현대문화에 한가지를 더해봅시다.

    이 날은 뒤를 돌아보고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자신의 시간을 갖는거예요.
  • amore 2003/12/24 [21:31] 수정 | 삭제
  • 제 생각엔 사람은 혼자 있는 건 불완전한 거라고 생각하는 거 같습니다.

    그럴거면 둘보다 여럿이면 더 좋다고 해야할텐데 유독 둘씩 짝을 지으라 하죠.

    옛날부터 쌍쌍족을 가리키는 용어도 계속 발달해오고 있다는 생각이구요.

    매월 14일은 연애와 관련된 기념일들이잖습니까.
  • 쳇쳇쳇 2003/12/24 [20:19] 수정 | 삭제
  • 원래 솔로부대 유래가 디씨인사이드 밀리터리갤러리(밀갤)이잖아요.
    디씨의 폭력적 마초성에 군사주의까지 버무려진 셈이죠.
    더군다나 그 솔로부대라는 것도 커플주의문화를 확실히 전복하는게 아니라
    기껏해야 커플선망 이상이 되지 못해서, 보는 사람 짜증스럽게 해요.
  • 요소 2003/12/24 [15:22] 수정 | 삭제
  • 커플이 되면 행복하고.
    커플이 되면 뽀사시하고.
    커플이 되면 이벤트가 있고.
    커플이 되면 따뜻하다는.

    그런 환상은 광고이미지인 경우가 많죠.
    현실은 그냥 관계일 뿐인데
    그렇게 색칠하는 것이 광고의 역할이긴 하지만
    커플을 강요하는 것은 이성애문화와 관련이 깊다고 생각해요.
    커플 속에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죠.
  • 하나더 2003/12/23 [12:22] 수정 | 삭제
  • 굉장히 남성중심적이죠.

    저번에 좀 봤는데,

    원래 전쟁 포스터 활용하는 것이니 등장인물 대부분이 남성인 것은 참아주고 넘어간다고 쳐도, 대체 왜 여성 네 명이 등장하는 사진에는 "이 여성들과 사귀고 싶지 않은가!"라고 쓰는 것인지-_-;;
  • 알이엠 2003/12/23 [10:24] 수정 | 삭제
  • 기사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부분이 혼자서 아무 것도 못하게 한다는 겁니다.
    영화 제대로 보려면 혼자 보는 게 좋은데, 영화취향도 안 맞는 사람과 같이 봐야합니까.
    솔로로 있으면 주위에서 영화보러 같이갈 짝을 만들라고 데이트 주선을 합니다.
    소개팅 약속까지 잡아놓고 안 나가면 우리 망신시키는 일이라고 협박을 합니다.
    다른 사람이 연애를 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라고 그런 수고를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내 인연을 왜 자기들이 만들어주겠다고 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아래 글 읽다가 오해하길까봐 덧붙이면, 저는 안 생긴 편입니다.
    잘 생기고 안 생기고의 문제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 anony 2003/12/22 [22:30] 수정 | 삭제
  • 사실 주변에서 왜 커플이 아니냐고 물어보고 자꾸 소개시켜줘서 짜증난다고들 하시는데, 물론 짜증날만하다.
    근데 그것도 왠만큼 생긴 사람들이나 당하는 말이다.
    별로 안생긴 사람들은 그런말도 잘 못듣는다.
    누군가를 누군가에게 소개시켜줄 때 일단 둘이 대충 학벌이나 직업이 비슷한 레벨인 경우 소개시켜주고, 그담에 중요한건 외모다. 외모가 별로면 성격이 아무리 좋더라도 소개 안시켜주더라.
    별로 안 생긴 사람들에겐 누구 소개시켜줄께. 라고 압박 주는 사람도 없다.
  • 가파치 2003/12/22 [17:29] 수정 | 삭제
  • 그리하여 들뢰즈는 '쌍의 범람'을 현대의 병적징후라 했습니다.
  • 바람소리 2003/12/22 [15:37] 수정 | 삭제
  • 연애가 '강박증'이라는 점에 동의

    어떤 줌마가 있어요.
    한살차이뿐이 안나건만,
    '넌 아직 결혼안해서', '연애경험없어서 뭘 모른다며'
    매번 연애를 부축이는데, 이유는 도대체 뭔가요.

    결혼전 엄청난 '연애의 노하우'를 가졌다며(과시용 연애담)
    이 연애 저 연애에 개입하며 한마디씩 거들고...
    이에랑 저에랑 대충 끼워맞춰놓고 싶어하고
    주변 사람들을 들척이며 다니는
    이 줌마의 저의가 뭔지 궁금하군요.

    줌마의 '안전성'을 품에 안고
    늘 자랑스러워하는 풍부한 연애 경험을 바탕으로
    연애못하는 '애숭이'들을 선도하는
    멘토링????

    도대체 이 여자는 왜이럽니까.
    남자들이 서로 여자꼬시는 법을 전수하듯,
    연애술을 하나의 사회적 '경력'으로 연출하는
    이 여자의 부추김이 싫어 죽겠당.
  • 무좀 2003/12/22 [11:55] 수정 | 삭제
  • 커플에서 벗어난지 1년정도 지났는데 외롭다는 생각이 드는건
    다 주변에서 '왜 넌 커플이 아니냐'는 말을 하기 때문이죠..
    모든 행사들이 커플위주.. 광고도 커플을 대상으로 하고..
    커플이 아니면 비정상인것처럼 대하는 세상에선
    외롭지 안을 수가 없죠..
    그래서 나 스스로가 준비도 하지 못하고.. 어설픈 연애들을
    하는게 아닐까요.. 후후...
  • 솔로 2003/12/22 [10:55] 수정 | 삭제
  • 내 말이.

    난 괜찮은데 주위에서 자꾸 안 괜찮다고 하니
    갑자기 정말 안 괜찮은 것 같이 느껴져요.

    무슨무슨 날은 어찌나 많은지
    연인들 잘 지내는 건 좋은데
    연애 안하는 사람 괜시리 초라하게 만드는
    광고들, 사람들의 시선 좀 사라졌으면 합니다.
  • turtles 2003/12/22 [10:55] 수정 | 삭제
  • 대중가요 가사들은 95%가 사랑에 대한 거 아닌가요? 가사쓰는 사람들은 맨날 사랑만 하고 사는 것도 아닐텐데, 그리고 그 노래 부르는 가수들 중에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절반도 안 될텐데, 왜 그런 건지 모르겠어요. 이런 것도 커플지상주의 아닐까요?
  • 우리 2003/12/22 [10:18] 수정 | 삭제
  • 크리스마스에 뭐할 거냔 질문 받으면 난처해요.

    커플들이 행복하게 잘 사는 건 좋은데요.

    싱글인 사람들 이상하게 안 봤으면 좋겠어요.

    자기가 연애하면 남들도 연애시키려고 안 했으면 좋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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