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보호’가 위험하다…돌봄을 공공재로

야마네 스미카 짓센여자대학교 교수에게 듣다

야마네 스미카 | 기사입력 2026/01/08 [09:19]

‘요양보호’가 위험하다…돌봄을 공공재로

야마네 스미카 짓센여자대학교 교수에게 듣다

야마네 스미카 | 입력 : 2026/01/08 [09:19]

한국보다 먼저 방문요양보호 제도(2000년)를 도입한 일본. 25년이 지났으나, 요양보호사의 노동환경과 대우는 오히려 더 열악해지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2012년 제도 개정 때부터 방문요양서비스 시간을 점차 단축시켰고, 2025년 4월엔 방문요양보호 기본 보수가 인하되었다.

 

2019년에는 방문요양보호사 3인이 노동법이 지켜지지 않는 일자리에 대한 국가 책임을 물으며 소송을 제기했다. 2025년 3월에 최고재판소 상고가 기각되었지만, 항소심에서 방문요양보호사의 권리침해 현황이 밝혀지는 등 적지 않은 성과를 남겼다. (관련 기사: 방문 요양보호사들 ‘임금 올려라’ 국가에 소송 제기 https://ildaro.com/9935) 이 소송을 지원한 야마네 스미카 짓센여자대학교 교수에게 요양보험제도 위기의 근본적 원인을 들었다. [편집자 주]

 

▲ 야마네 스미카(山根純佳) 짓센여자대학 교수. 저서 『왜 여성은 돌봄노동을 하는가-성별분업의 재생산을 넘어』 외 다수. 신간 공저로 『돌보는 나의 ‘힘듦’은 어디에서 오는가-보이지 않는 돌봄책임을 말하는 언어를 엮기 위해』를 펴냈다. (원본 사진: 페민 제공)


돌봄노동자를 착취하는 구조, 돌봄공백 지역도 생겨나

위기의 요양보호제도 어떻게 바로잡을까?

 

요양보험제도가 시작된 당시에는 저 역시 ‘돌봄의 사회화’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제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돌봄노동자가 될 수 있는 ‘여성’에게 고용 기회를 제공할 수 있고, 이용자가 자신의 니즈에 맞춘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구조를 가진 좋은 제도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환상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연구자로서 강한 사명감과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일본의 요양보험제도는 ‘선택과 경쟁’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준시장’(민간에 의한 서비스 공급)으로 성립되었습니다. 돌봄의 영역에 시장의 경제합리주의에 근거한 구조를 도입한 것입니다. 실제로 이용자는 선택하는 주체가 되지 못하고, 경제합리적인 사업자가 이익을 위해 이용자를 선택할 수 있는 구조가 되었습니다. 손해보험회사와 파견회사 등 대기업도 참여할 수 있어, 대규모화 때문에 흡수병합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편에선 이용료와 돌봄 보수가 공적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가격에 가산될 수 없는 경비를 돌봄노동자가 커버하며, 결국 돌봄노동자를 착취하는 제도가 되었습니다.

 

가령, 유료 노인돌봄센터를 함께 운영하는 방문요양보호사업소는 방문요양보호 인원을 센터로 돌리기 때문에 이동 경비를 들이지 않으면서도 이용률이 높아지며, 보수 단가가 높은 ‘신체돌봄’ 신청도 많이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용자의 집이 먼 곳에 있거나 단가가 낮은 ‘생활지원’은 비효율적이기에, 기업은 신청을 받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이용자를 양심적인 소규모 요양보호사업소 등이 받게 되면, 그 사업소의 경영이 어려워집니다. 국가는 ‘생산성의 향상’, ‘효율화’, ‘대규모화’를 주창하고, 기업은 당연히 돈이 되지 않는 지역에서 철수합니다.

 

요양보험제도는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정보력과 인맥과 구매력을 가진 중산층 이상의 도시중심적 고령자가 ‘소비자 모델’(이용자)로 상정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이 소비자 모델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은 배제되고 있는 것입니다. 본디 요양보험제도는 글을 읽지 못해도, 아무리 가난해도, 판단력이 약해진 사람도, 과소지역이나 외딴 섬에 살아도 좋은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제도여야 합니다.

 

효율화할 수 없는 것이 돌봄이다

 

요양보험제도가 만들어지려고 할 때, 그때까지 돌봄 사업을 맡고 있던 사회복지협의회 등은 상근자를 둘 수 없고, 상담업무도 할 수 없고 성과급제인 돌봄 보수 구조에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실버산업을 민간의 힘을 통해 활성화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민간에서 하면 여성인력을 파트타임으로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 이용자의 선택에 따라 지금까지보다 서비스의 질이 높아진다는 언설을 학자들도, 시민사회도 지지했습니다. 선택과 경쟁에 근거한 구조가 사회에 있어 바람직하다고 하는 발상이야말로 신자유주의적 발상입니다.

 

원래, 돌봄이란 상대에 관한 지식을 활용해 변화에 대응하는 개별화된 노동으로, 양질의 돌봄을 위해서는 당사자와 보내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즉, 돌봄은 가장 효율을 꾀할 수 없는 행위인 것입니다.

 

이 제도 전에는 가정봉사원이라는 공무노동이 있었고, 가정봉사원과 방문요양보호사가 이용자와 보내는 시간 속에서 키워온 돌봄의 실천과 돌봄 문화가 있었습니다. 선택과 경쟁은 없었지만, ‘돌봄의 질’을 추구했던 것입니다.

 

게다가 돌봄 분야만 노동법과 노동자를 분리시키고, 최저임금조차 지켜지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이용자의 수요를 충족시키는 노동자일수록 취약한 입장에 놓입니다. 돌봄노동에는 이용자를 주체로 생활을 지원한다는 이용자 중심의 강한 직업윤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돌봄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조건보다도 이용자의 니즈를 우선시하는 것입니다.

 

방문요양보호사들이 제기한 국가배상청구소송은 “원고인 우리가 목소리를 낼 테니 사회가 알아주길 바란다”는 단말마 같은 비명입니다.(관련 기사: “돌봄이 아니라 컨베이어 작업” 떠나는 요양보호사들 https://ildaro.com/10355) 원고들은 “조각조각 난 노동(방문요양서비스 시간 단축)으로 인해 이용자를 학대하는 것 같다”며, 이 노동방식이 돌봄의 질을 떨어뜨린다고 느끼고, 간신히 얻었던 ‘감정적 보수’(보람)도 얻지 못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 ‘방문요양보호사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지원하는 모임’ 홈페이지 메인 화면. 소송 원고인 방문요양보호사 세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왼쪽부터 이토 미도리, 후지와라 루카, 사토 쇼코 씨. https://helper-saiban.net


페미니즘의 화두인 ‘돌봄의 사회화’

돌봄의 가치 평가하고 시장논리 벗어나 공공재화(化) 해야

 

돌봄노동자를 보호하지 않으면 돌봄서비스 제공이 불가능해진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아야 합니다. 우선은 돌봄노동을 부분적으로 공공재화(化)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도쿄도 시나가와구는 방문요양보호의 기본보수 인하분을 구 차원에서 보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방문요양보호에 사용하는 자동차나 주유비 지급 등 지자체가 검토해볼 수 있는 필요 자원들도 있습니다. 특히 돌봄인력 부족이 심각한 인구과소 지역에서 돌봄의 공무원화-공공재화는 시급한 과제입니다.

 

돌봄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와 이익을 말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일도 중요합니다. 노동자 간, 사업소 간의 연계도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질 높은 서비스는 질 높은 노동으로만 가능합니다. 프랑스에서는 고용주 단체가 노-사-정의 사회적 대화를 통해 가사·돌봄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구조가 있습니다.

 

제도 초기에 ‘며느리 돌봄에서의 해방’이라는 주장은 요양보험제도를 지탱하는 원동력이 되었지만, 일본의 페미니즘 진영이 돌봄노동자의 권리향상을 호소하지 않았던 점은 반성해야 할 지점이기도 합니다. 돌봄의 사회화란, 돌봄노동자를 사회적으로 평가하는 것이자, 돌봄을 시장적인 것으로부터 떼어내어 공공재로서 자리매김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번역: 고주영]

 

-〈일다〉와 제휴 관계인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 기사를 번역, 편집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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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린두알람 2026/01/12 [19:46] 수정 | 삭제
  • 요양보호사 제도를 효과적으로 운용하기 위하여는 젊은이들이 요양보호사가 되어야 하는데 용양보호사가 하는 일이 너무 힘든 데 반해 보수가 턱없이 낮은게 문제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노령 요양보호사가 고된 노동 강도에도 불구하고 노령층을 보살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지 전국엔 많은 요양보호사가 배출되어 있습니다. 그들도 노령이 대부분 이지만 언어나 친밀도가 높고 같은 처지의 노령층을 보살피는데는 적합합니다. 따라서 이들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소지한 분들에게 동남아 요양보호사를 한두명씩 동반케 하여 돌보면 좋을 것입니다. 점차 그들이 익숙해지면 언어의 장벽도 뛰어넘고 문화적 차이도 극복하학 될 것입니다. 그때 이들을 별도의 용양보호사 자젹증을 부여하여 요양보호사 문제를 해결하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 올리브 2026/01/10 [19:28] 수정 | 삭제
  • 경제성 따져서 효율화할 수 없는 것이 돌봄의 속성이라는 말에 답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도 돌봄노동자 대우가 낮은데 더 열악해질까봐 걱정이 되네요. 공공돌봄이 강화되어야 합니다.
  • KKim 2026/01/10 [11:26] 수정 | 삭제
  • 한국과 일본의 임금 구조와 규제 현실은 완전히 다름(일본의 임금은 우리나라의 6-70% 수준으로 공공 내 관리됨. 우리나라는 공공비용으로 민간 운영에 따른 폐단 심각. 예: 프랜차이즈식 확장)을 우선 이해하고 돌봄 제공자 처우에 대한 시장 인식을 논하여야 합니다.
  • 에델 2026/01/10 [09:04] 수정 | 삭제
  • 탁상공론만하는 공무원들의 행정 현장의 어려움을 모르는게 문제 ! 온갖 서류만 늘어난 복지 요양 업무! 공무원은 먹고 할일이 없으니 새로운 행정업무만 만들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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