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조선인 여성들이 ‘해방주’라 부른 그것막걸리와 재일조선인 여성(상) 몸의 궤적과 흩어진 단편을 한데 모아재일조선인들이 살아남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던 막걸리(탁주)는 이전 일본의 주세법 하에서 적발 대상이었다. 막걸리를 둘러싼 재일조선인 여성들의 생활과 저항의 역사를 식민지주의, 젠더 관점에서 풀어내는 도쿄경제대학 이행리(李杏理) 교수의 글을 3회 연재한다. [편집자 주]
‘탁주전쟁’ - 재일조선인 여성들의 저항의 역사
“살기만도 벅찼어. 아이들 때문에 죽기 살기로 일만 했으니까”.
김문선(金文善) 씨는 막걸리가 든 됫병을 자전거에 동여매고 가와사키역 앞으로 팔러 갔다. 그 모습에 나는, 밤일로 세 아이를 키우며 수도가 끊기기라도 하면 수도국에 호통을 쳐 다시 물이 나오게 했던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린다.
제도의 냉담함과 생활고에 몇 번이고 내동댕이쳐지면서도, 여자들은 유연하고도 강하게 살아왔다.
자식을 키우기 위해 술을 담가 팔러 다니던 사람 중 많은 수는 여성이었다. 돌봄 책임이 여성에게 몰려 있었기 때문이다.
재일조선인은 식민지 지배의 귀결로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전쟁과 분단에 의해 (일본에) 잔류하거나 (일본으로) 재도항을 해야만 했던, 거의 난민에 가깝다. 일본이 패전한 후, 대다수는 일을 구하지 못한 채 가난과 차별 속에서 살았다.
우리는 그 역사적 사실을 ‘생활고로 인해 어쩔 수 없었다.’라고 쉽게 정리할 수는 없다. 식민지 시대의 통제에서 벗어난 여성들이 막걸리를 ‘해방주’라고 부르며 동맹을 꾸리고, 일본 경찰의 단속에 저항했기 때문이다. 여성과 어린이가 최전선에 선 것은, 어쩔 수 없었던 일이 아니라, 생활의 장에서 몸으로 떨쳐 일어난 직접행동으로서의 저항이었다.
1940~1950년대, 일본 각지의 조선인 집단 거주지역에 경찰과 세무서가 밀어닥치자 여자들은 술독을 깨부쉈다. 흩어진 파편에서 막걸리가 흘러나오고 살아있는 효모가 거품을 낸다. 신맛과 단맛이 섞인 냄새는 그저 위반물품이 아니라, 술을 담그는 데 든 몸의 노동과 발효의 숨결이 겹쳐진, 매일을 버티게 하는 그것이었다.
청결한 근대적 시민 vs 불결한 무법적 밀조자
식민지 시대부터 해방 후에 이르기까지, 식량과 술을 규제하는 공권력의 언설은 “암거래의 뿌리에 조선인이 있다.”라며 치안과 위생이라는 단어를 반복했다. ‘청결하고 근대적인 시민’과 ‘불결하고 무법적인 밀조자’라는 대비가 만들어졌다. 그 시선은 조선인 여성의 몸을 일본 시민을 위협하는 ‘위험한 것’이라 간주하여 배제의 논리를 뒷받침했다.
재일조선인 여성은 성차별과 민족차별이라는 벽에 수없이 부딪히며 깨져왔다. 몸도 마음도 망가지고, 가까운 관계조차 찢겨버리곤 했다.
그럼에도 나는, 이러한 몸의 궤적과 흩어진 단편을 한데 모으고자 한다. 돌봄과 불안한 생, 밤일, 이주여성의 삶-지금도 필사적으로 살아내는 모습들-이 바로 우리 곁에 있다. 과거에 겹겹이 쌓아올린 저항은 그 목소리들과 겹쳐져 오늘을 비추는 빛이 된다. [중편에서 계속]
-번역: 고주영, 감수: 이행리. 〈일다〉와 제휴 관계인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 기사를 번역, 편집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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