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가 없던 시절에 대한 향수?

1950년대 생의 독재의 기억-5

이순진 | 기사입력 2006/03/06 [22:50]

자유가 없던 시절에 대한 향수?

1950년대 생의 독재의 기억-5

이순진 | 입력 : 2006/03/06 [22:50]
우리는 아픈 현대사에서 ‘반공’과 ‘경제성장’의 기치아래 군부독재정치가 자행됐다는 것을 배웠다. 그러나 ‘독재’가 남긴 유산이 과거의 것에 머물지 않고 지금도 계속되는 역사이며, 국가권력에 의한 것만이 아니라 사회 곳곳의 문화 속에 스며들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는 이는 드물다. 보수정당과 보수언론의 공세에 밀려, ‘독재’가 실제로 어떤 것인지 제대로 판단할 기회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덕분에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뿌리깊게 자리하지 못했다.
 
<일다>는 민주주의가 성숙하려면 ‘독재’의 유산을 청산해야 한다는 전제 하에, ‘독재의 기억’이라는 주제로 독재란 과연 무엇이며 현재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가를 개인의 일상을 통해 조명해나갈 계획이다. -편집자 주

독재 하면 떠오르는 것은 선거다. 박정희 군사정권시절 공무원들은 줄을 선 순서대로 누가 누굴 찍었는지 다 알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선택의 권리가 없었다. 군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감시와 통제, ‘100%’라는 결과, 형식만 있는 정책 등은 군사독재의 표상 같은 것이었다. 하긴 형식적으로도 직접 대통령을 선출하지도 못했던 적도 있었으니.

1980년 광주와 삼청교육대

계엄령이 선포된 1980년은 보다 공포스러웠다. 광주에 사는 조카 아이는 집에 오던 길에 도로가 막혀 산을 넘어 몰래 집까지 들어왔다고 했다. 밖으로 나가면 ‘사살’당했기 때문에 친척 집에서는 자녀들을 다락에 가두었다고 했다. 전쟁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군인들이 국민들을 향해 무차별 폭격을 가하고 있다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스에선 이 같은 사실을 보도하기는커녕 ‘유언비어’가 돌고 있으니 속지 말라고 했다.

당시 전라도 일대는 전기도 끊기고 전화도 끊겼다. 그리고 내가 사는 서울에선 누구도 내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단지 사회를 위협하는 ‘폭도’들이 난동을 부린 것이라 했다. 이 작은 땅덩어리에서 사람들의 소통과 정보를 차단하고 통제할 수 있는 힘이 정권에게 있었던 것이다.

전두환 집권과 더불어 공포정치는 계속됐다. 지금은 사람들에게 전설처럼 전해지는 삼청교육대와 관련한 사건도 접했다. 당시 고모부가 동네 청년들과 바둑을 두다가 끌려가서 연락이 두절됐는데, 돌아왔을 땐 무슨 일을 겪었던 것인지 1년 넘게 병원신세를 졌다. 그 때는 쥐도 새로 모르게 끌려가는 시절이었다. 택시를 타고 입 한 번 잘못 열었다간 언제, 어떻게 잡혀갈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는 어느 날 정체 모를 차 한 대가 집 앞에 만신창이가 된 사람을 던져놓고 가버리는 것이다.

말할 자유가 없다는 것, 숨쉬는 공기 속에 국가권력의 지배와 공포감이 깔려있다는 것, 그것이 어떤 것인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모를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무서운 독재정권 시절을 많은 사람들이 너무 쉽게 잊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독재의 인맥은 계속된다

정권이 교체되고, 광주민주화 운동이 역사적으로 평가를 받고 기념탑이 세워지고 기념행사가 열리게 되었다고 해서, 독재의 탄압을 받았던 희생자들과 그 지인들의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 희생자들의 넋은 개인의 명예회복으로 그 보상을 받고 싶기보다는,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독재의 탄압에 대해 제대로 배우고 기억해주기를 더 바라지 않을까?

독재를 기억한다는 것은 지금 우리 사회가 과연 얼마나 민주적인 사회이며, 국민들이 민주주의를 제대로 실천해가고 있는지 돌아본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어딜 가나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대해 욕설을 해대는 사람들이 있는 지금, 이 사람들이 20~30년 전 누리지 못했던 자유를 지금은 누리고 있다는 것에 대해선 별로 돌아보지 못한 채 오히려 과거 독재정권과 독재자에 대해 ‘권위’를 부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독재탄압과 민주화 운동이 까마득히 옛날 일인 줄로만 아는 요즘 젊은 사람들을 보며 더욱 위태로운 마음이 든다. 과거와 같은 군부독재는 더 이상 이 땅에서 자리잡지 못할 것처럼 보이겠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독재의 잔재와 그 인맥들은 여전히 위세 등등하게 세력을 떨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아직 독재의 시절은 끝난 게 아니다. 제대로 된 평가도, 교육도,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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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06/03/18 [13:27] 수정 | 삭제
  • 사람들에게서 잊혀졌다는 게 -
    삼청교육대는 아직도 실체가 다 드러나있지도 않지만-
    아이러니죠.
    역사교육 제대로 해야 합니다.
  • jnbk 2006/03/12 [12:17] 수정 | 삭제
  • 그 때 노동했던 사람들 때문에 잘살게된 것인데.
    최순영 의원이 박근혜 대표에게 보낸 메일에서도 그 아이러니가 나와있죠.
    (공순이가 영애에게)
    박정희 추앙하는 사람들은 박정희 시절에 부만 누리고, 주위에 가혹하게 탄압받는 사람은 없었던가 봅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요.
    망월동에 올해도 한 번 다녀와야겠습니다.
  • 2222 2006/03/12 [04:21] 수정 | 삭제
  • 먹고살기 힘들고 굶어죽게 생겼는데 자유만 외치면 빵이 나오나?
    박정희 시대가 노예시절?? 그래서 민주화가된 지금 현재 우리나라 국민들은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 아주 잘먹고 잘살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수 있나?
    일자리 못구해서 노숙자로 전략하는 사람들이 한두명이 아니고 세계에서 자살율 1,2위를 다투는 나라가 지금 현재모습인데...차라리 굶어죽는 자유보단 독재를 선택하는게 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박정희 대통령이 위대한 대통령 1위를 차지하는거같군.
  • sook 2006/03/10 [16:15] 수정 | 삭제
  • 박정희를 떠받드는 사람들은 노예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노예근성을 버리지 못해서 자유를 누릴 자격이 없는데 민주화 수혜를 받은 게 아닐까.
    그 때 그 사람들이 아직 물갈이가 다 안 되어서 그런 것인지도.
  • 이영 2006/03/09 [00:32] 수정 | 삭제
  • 저에게도 생생하게 느껴지는 글입니다. 오늘에 와서 민주화 운동을 기린다고 하면서도, 사람들은 과거독재정권과 독재자에 대해 '권위'를 부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저도 걱정됩니다.
  • 2006/03/07 [03:15] 수정 | 삭제
  • 전쟁으로 기록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그렇다면 군부세력은 전쟁의 침략자들 쯤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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