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대들이 촛불을 들고 바깥으로 나왔습니다. 정보를 공유하고 의지를 되새기면서, 어떤 경우에는 반대와 처벌을 무릅쓰고 말입니다. 그네들이 외치는 재치 있는 구호에 웃음이 나오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진심 가득히 고민하고 정당하게 권리를 주장하는 모습에 큰 감동이 느껴집니다.
사회가 부정해온 십대들의 에너지와 잠재력
촛불을 든 십대들 소식을 듣고서, 십대의 잠재력을 깨닫지 못하는 사회가 그들의 진지함을 부정하는 큰 실수를 저지를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들었습니다. 우리 십대들은 삶의 의미를 고민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정체성을 다져갈 시간이 너무 부족합니다. 사회가 그 시간을 앗아가 버렸기 때문입니다. 사회가 십대에게 기대하는 바는 정규학교에 잘 다니고 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며 유명한 대학에 들어가는 일뿐인 듯 합니다. 십대들의 에너지와 성장 가능성을 축소시키는 그릇된 기대 때문에, 사회는 십대의 힘으로 변화될 기회를 그 동안 놓치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십대들이 먼저 사회에게 손을 내밀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고맙고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그들은 똑똑합니다. 게다가 그들은 가능성을 지향합니다. 불의가 무엇인지 짐작하고 있으며, 어떤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인지 알고 있습니다. 어른 세계의 현실이 어떤지 평가할 수 있고, 이상을 꿈꿀 줄도 압니다. 십대의 맑음이 사회를 가장 명확하게 진단해줄 수 있습니다. 십대들은 위험한 음식을 먹고 싶어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이 위험한 음식을 먹게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 마음으로 ‘사회의 기대’를 저버리고 촛불을 듭니다. 도덕성 발달을 연구하는 학자 콜버그는 도덕적 추론능력이 발달하는 과정을 세 단계로 나눕니다. 그가 이름을 붙인 ‘관습 이전 단계’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결정적 잣대는 자기 이해와 생존을 높이거나 처벌을 줄이는지 여부에 있습니다. 그 다음 ‘관습 단계’에 있는 사람들은 타인의 승인을 얻기 위해서 경직된 태도로 법과 규제에 의존합니다. 즉, 법은 무조건 옳으니 법을 따르는 사람들도 있겠고, 자신의 희생하면서까지 타인을 보살피는데 과도한 책임을 지닌 사람도 있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관습 이후 단계’에 도달한 사람들은 법이라는 관습이 아니라, 선이나 인간 존엄이라는 도덕적 원칙과 신념에 따라 정의로움을 판단하고 그대로 행동하고자 합니다. 콜버그의 단계가 다소 인위적으로 구분되어 있을지 모릅니다. 허나 촛불을 든 십대들은 자신을 포함하여 모두를 위한 인권의 개념을 이해하고 의사결정의 주체로 나섰다는 면에서, 도덕적 추론능력이 매우 발달한 모습에 가깝습니다. 이들은 무조건적으로 처벌과 관습에 순응하려 하지 않고 자기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 자기 주장 안에 자기가 알지도 못하는 다른 사람들의 건강을 염려하는 공감능력이 확대돼 있으며, 사람의 권리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명석한 시각이 깃들어 있다는 것은 진정 기쁜 소식입니다. 자율적인 도덕성, 십대들이 걷고자 하는 길 도덕적으로 성숙하고자 하며 도덕적인 인간으로서 정체성을 획득하는 십대들에게 상하관계를 들먹이면서 성장을 방해하지 않아야 합니다. 만약 어린 아이들이라면 추상적인 사고능력이 아직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주로 어른들과 상호작용하며 어른이 정한 규칙에 따라 행동을 조절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겁니다. 상하관계에서 아이는 권위와 처벌을 두려워하면서 규칙과 규범을 학습하고, 이를 지킬 책임감을 부여 받습니다. 그러나 인지발달을 달성하고 도덕적으로 성장한 십대들은 자기 안에서 우러나오는 책임감을 느끼게 됩니다. 피아제는 자율적인 도덕성이 중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자율적인 도덕성이란, 나의 권리와 욕구를 인식하듯이 타인의 권리와 욕구를 인식하면서, 상황에 따라 옳고 그름을 재평가하고, 외부의 규제가 아닌 내적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도덕성입니다. 피아제는 자율적 도덕성이 도덕적 성장의 최고점에 놓여있다고 말합니다. 십대들이 걷고자 하는 바로 그 길입니다. 피아제는 자율적 도덕성을 발달시키기 위해서는 상하관계가 아니라 평등한 관계 안에서 서로 존중하며, 합의에 따라 규칙을 만들고 행동을 조절하는 법을 배우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십대들은 이를 많이 경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도덕적 판단능력이 도덕적 행동으로 이어지는 데 역시 이러한 경험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사회는 십대들의 진지한 고민을 경시하고 어른들의 규칙을 주입시키려 합니다. 십대들은 이상을 생각할 줄 압니다만, 이상과 괴리된 어른들의 관점을 주입 당하기 일쑤입니다. 만약 생각과 행동이 괴리된 십대들이 있다면, 라이스와 돌진이라는 심리학자들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사회는 십대의 진실한 모습을 거부하고 가짜 모습을 진짜로 여기도록 부추깁니다. 욕구와 감정을 존중 받지 못하고 내가 과연 무엇을 원하는가 물을 수 없게 하는 사회는 사람이 진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만약 사람이 생각은 고귀하나 행동이 뒤따르지 못한다면, 진심으로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회는 주입하지 말고 진심으로 따르는 신념을 형성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십대들은 사회참여를 통해 성장할 권리가 있어 또한 십대들은 사회에 대해 보다 고민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누려야 합니다. 십대들은 이를 통해서 더욱 성장할 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깁스라는 학자는 최근 연구에서, 어려운 도덕적 문제에 대해 자꾸 사고하다 보면 점차 더욱 정교한 인지능력을 키울 수 있다고 했습니다. 또한 도덕적 추론 과정에 대해 생각하는 눈을 키우면, 자기 행동의 도덕적 측면에 대해 보다 잘 돌아보게 되고, 그리하여 보다 도덕적으로 판단하고 보다 도덕적 행동하고자 한다 합니다. 코리걸-브라운이라는 학자는 사회 참여에 보다 적극적인 젊은이들은 자기 자신을 보다 존중할 줄 알고,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더 키울 수 있었음을 밝혔습니다. 콜버그가 말하는 ‘관습 이전 단계’의 도덕성에서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한 어른도 있습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율적 도덕성의 의미를 숙고해보면, 단지 고차원적인 이성을 지녔다 해서 달성할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심리학에서 자율적 도덕성이란, 타인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타인을 존중하는 마음을 기반에 두고 있습니다. 십대 시절은 자기 내면의 복잡한 심리적 갈등이 커지면서 성장의 고통을 겪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길리건이라는 심리학자는 십대들이 성장통 속에서 내면에 대한 성찰이 극대화되면서, 이것이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는 능력의 밑바탕이 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촛불을 들기로 선택한 십대들에게서 우리는 배울 점이 더 많습니다. 사회가 십대로 인하여 도덕적으로 성장할 기회를 얻어야 하겠고, 사회도 십대를 존중하고 십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방식으로 보답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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