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랑 보는 거 정말 오랜만이에요. 특히 이렇게 둘이 보는 건요.”
박주희씨는 소아미비 장애여성이다, 지금은 많이 없어졌지만 그 나이 또래(40대) 사람들에게는 조금은 접하기 쉬운 장애유형이라고 한다. 소아마비가 어떤 사람은 한쪽 다리에만 나타날 수 있는데, 언니의 경우에는 하반신 전체에 장애가 있는 경우였다. “첫돌 때였어, 그때는 예방체계가 그리 좋지 않았었나봐. 어느 날 갑자기 고열이 나더래. 그래서 병원에 갔다 왔는데 퇴원을 하고도 허리 부분에 힘이 안 들어가는 걸 보고 큰 병원에 갔더니 소아마비라고 하더래. 난 그래도 상반신은 장애가 없으니 그나마 (다른 사람들보다) 여러 가지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은 듯해.” 방치와 간섭 속에서 눈치를 보았던 기억 “어릴 때는 어떻게 지내셨어요?” “뭐, 내가 어릴 때만해도 장애가 있는 딸은 집안에서 숨겨야 하는 존재였어. 그래서 좀 방치된 상태로 지냈지. 특히 우리 집은 아버지가 너무 엄격하고, 때로 폭력적이기까지 했던 분이라, 그런 영향이 막내인 내게 많이 왔어. 나쁜 기운이 물 흐르듯이, 엄마도, 언니도… 그래서인가 어릴 때부터 눈치 빠르게 행동하고 분위기 맞춰주는 것에 도가 튼 것 같아. 그게 오히려 자기 자신한테는 무척 안 좋은 일인데 말이야.” 엄격하고도 권위적인 아버지와 그 때문에 평생 숨죽여 지냈던 어머니, 그리고 나이차이 많은 언니 틈에서 살았던 그녀는 장애여성이기에 받을 수 있는 차별을 더욱 많이 받았다고 한다. 특히 부모님이 ‘집안의 빛’이라고 표현했던 오빠가 어릴 때 사고로 죽자, 자신에게는 더욱 더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그는 담담했다. “어릴 때 잠깐 재활원에 있었던 적이 있어. 그런데 몇 개월 안 가서 어머니가 그냥 집으로 데려오시더라. 그 재활원이 좀 돈이 들었나 봐. 특히 부모가 재산이 좀 있는 경우에는 그 왜. 약간의 추가비용을 더 들인 것 같아. 그래서 집으로 돌아왔어. 그때는 그런가 보다 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건 무척 속상한 일이었지.” 그 뒤로도 부모와의 관계는 방치와 간섭이라는 상반된 분위기로 이어졌고, 그는 자신이 남에게 당당하게 보이지 못하는 자식이 되어버린 듯해서 마음속에 상처가 오래 남았다고 한다. 남에게 아픈 소리 한번 못하는 그는 언제나 밝은 모습이었는데, 내색 못한 상처가 많았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첫 번째 결혼과 이혼, 그리고 싱글맘 생활
“장애여성들이야 늘 과도한 간섭을 받잖아요. 저도 아직까지 제 나이에 비해 여러 가지 간섭을 많이 받는 편인데요? 아직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와 같이 사는데 가끔가다 옷차림 같은 것도 간섭하시고, 그럼 참 난감해지더라고요.” “그거야 약과지. 난 부모님 간섭에 못 이겨 두 번 가출까지 했어. 나 독립할거라고, 도저히 이대로는 못 살겠다고. 한번은 딸이랑, 한번은 나 혼자서. 그때 내 주장을 처음 내세워봤어. 결혼할 때도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독립문제만은 양보하고 싶지 않더라. 근데 당시에 내 주장대로 한 거 지금까지 내가 한 일 중에 제일 잘 한 거라고 생각해.” 부모님의 간섭은 그가 이혼한 후에도 계속되었다. 부모에게는 장애가 있는 딸에게서 난 ‘장애 없는 아이’가 마치 하늘과도 같은 존재였다고 했다. 부모님은 그에게 모든 일을 중단하고 오로지 집안에서 아이 양육에만 몰두할 것을 강요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녀의 양육을 엄마의 손에 전적으로 맡기지도 않았다고 한다. “난 유나의 엄마지만 부모님들은 나를 참 못미더워하셨지. 항상 유나에게 네가 최고다, 부족한 거 있으면 우리(부모님)한테 얘기해라, 그런 애기는 끊임없이 하시면서 지나가는 말로도 엄마랑 잘 지내라는 말을 안 하시더라고. 그게 우리 부모님만 유별난 건지, 장애여성의 부모님이면 다 그런 건지 난 아직도 잘 모르겠어.” 내가 강해지니 남을 용서할 수 있더라 그녀의 싱글맘 생활은 꽤 오랜 기간 계속되었다. 딸 유나는 그녀가 좀 천천히 크라고 할 정도로 엄마의 든든한 친구가 되어주고 있다. 그리고 재작년 봄, 그는 처음 목소리만으로 반했다는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여 또 다른 행복을 누리고 있다. “한번은 어느 라디오 방송에 게스트로 나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 근데 내가 싱글맘이라는 얘길 듣고 이 사람 마음에 내가 들어갈 자리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더라구. 그게 인연인지.” “유나는 지금 아빠하고 잘 지내요?” “응, 아주 잘 지내. 이 사람이 나보다도 유나를 잘 돌보더라고. 그래서 내가 마음이 좀 놓이기도 해. 근데 문제가 있다면, 이 사람이 시각장애인이라 그런지 우리 부모님이 유나에 대해 아직도 과도한 관심을 가진다는 거야. 난 유나가 일등이 아니어도 좋은데, 그냥 정말 곧은 아이로 키우고 싶은데, 할아버지 할머니의 바램은 항상 기죽지 마라, 일등 해야 한다. 그런 말을 주로 들으니까. 유나도 사춘기인지라 그런 말 듣기가 싫은가 보더라고.” 그러고 보니 유나를 처음 본 것이 유치원 다닐 때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지금 6학년이 되었다는 말을 들으니 정말 그 동안 많은 변화를 겪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 6년 동안 언니는 참 많은 일을 경험했구나 하는 생각도. “음. 이 사람을 만나고는 좀더 내면의 힘이 강화된 것 같아. 심리적 안정감도 있지만, 그냥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해져. 신앙 때문인지는 몰라도, 깊이가 있는 사람이야. 그런 사람 옆에 있으니 나도 안정이 되는지도 모르지. 그만큼 그 공기가 나한테 전염이 되고 그러다 보니 내가 치유하지 못했던 상처들에 대한 생각도 하나하나 꺼내볼 수 있는 용기도 생겼어. 근데 확실히 내가 강해지니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더라고.” 마음이 편해진 것은 표정의 깊이를 봐도 알 수 있었다. 예전과는 다른 참 깊은 표정이 얼굴에 나타나있었다. 주변 사람들이 자신에게 쏟아냈던 억압들을 애써 감출 때와는 달리, 이제 그런 것들을 무시하고 한편으로는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한다. 그것이 그가 가진 내면의 힘이 아닐까? 다시 연극활동을 시작하며
처음 봤을 때 체구도 자그마한 사람이 어찌나 좌중을 휘어잡는 목소리를 가졌던지, 정말 멋져 보였던 기억이 난다. “그 동안 좀 힘들었던 것 같아, 내가 상처를 완전히 치유하지 못한 채 다른 사람을 대하니까 나중엔 나도 힘들고, 나를 만나는 사람들도 힘들어지더라고. 그래서 잠시 활동을 접게 된 거지. 그래도 연극에 마음이 항상 가 있었어. 그 동안에도 나를 찾아주는 사람이 있고, 불러주는 사람이 있어서 더욱 빨리 복귀한 것 같아. 물론 나도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며 강해졌다고나 할까.” 얘기를 하는 동안 그의 전화벨은 계속 울렸다. 여전히 바쁜 일들이 많은 듯했다. 그런데도 그 일들을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으려는 모습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바쁘게 약속 장소로 향하는 그녀의 모습을 사진에 담으며, 그의 건강과 함께 내면의 힘이 더더욱 무럭무럭 자랄 수 있기를 바래보았다. 소아마비에 대하여: 사전에는 ‘소아에게 발병되어 수족마비의 후유증을 남기는 병’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성질이 다른 두 개의 병을 총칭하는데, 하나는 척수성 소아마비(폴리오)이고 다른 하나는 뇌성 소아마비이다. 척수성 소아마비는 척수신경에 폴리오바이러스가 침범해 팔과 다리에 마비가 일어나는 것이다. 뇌성 소아마비는 출산 전후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해 뇌신경에 바이러스가 침범해 일어난다. 마비의 상태도 현저하게 달라서, 척수성 소아마비의 경우는 손이나 발에 힘이 빠진 것 같이 흐늘흐늘 움직이는 이완성 마비이지만, 뇌성 소아마비는 손발의 근육이 뻣뻣해지는 경직성 마비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또한 같은 유형의 장애라도, 장애가 있는 부분은 다를 수 있고 경중 역시 다르다. 최근 들어 예방의학이 발달해 거의 사라진 형태의 장애라 할 수 있지만, 전에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접할 수 있는 장애였다. 보행이 가능한 장애여성의 경우에도 피로를 빨리 느껴서, 이들과 함께 걸을 때 배려가 필요한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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