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면서도 웃을 수 있는”

[5주년 특별인터뷰] 그때 그 사람② 강허달림

조이여울 | 기사입력 2008/05/24 [06:38]

“울면서도 웃을 수 있는”

[5주년 특별인터뷰] 그때 그 사람② 강허달림

조이여울 | 입력 : 2008/05/24 [06:38]
<일다>는 매주 ‘매력적인 여성’들을 만나왔습니다. <일다 인터뷰>는 사회가 강조하는 외모나 지위, 수상경력이 아니더라도 여성들에게는 다양한 매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코너로 인기를 누려왔습니다. 5주년을 맞아 특별기획으로 ‘그때 그 사람’을 다시 만나 인터뷰한 기사를 매월 1회 싣습니다. –편집자 주

싱어송라이터 강허달림
마음이 아팠다. 무대에 선 그의 입에서 한 소절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내가 느낀 느낌을 말로 표현하자면, 그건 마음이 아프다는 것이었다.

 
이유가 무엇인지는 모른다. 그의 허스키한 음색과 감각적인 몸짓이 그토록 마음을 동하게 한 것인지, 이 무대가 있기까지 참으로 힘든 일들을 많이 겪었나 보구나 하는 추측 때문인지,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보컬을 만난 설렘이 되려 가슴을 저릿저릿하게 만든 것인지.
 
누군가 물었다면 즐거운 공연이었고 세션도 훌륭했다고 답했을 테지만, 정리되지 않은 채 여운으로 남은 느낌은 눈물을 쏟게 만들 것 같은 슬픔이었다. 이렇게 목소리만 들어도 눈물이 날 것 같았던 가수가 또 있었나? 생각해보니, 한 사람 떠오르긴 했다. 전설적인 프랑스 가수 에디뜨 삐아프. 그 외엔 생각나는 이가 없었다.
 
슬픔이 배인 소리, 슬픔을 느끼게 만드는 소리, 강허달림은 그런 소리를 가졌다.
 
첫 단독 콘서트를 열다
 
싱어송라이터 강허달림을 알게 된 것은 5년 전 <일다>에 실린 인터뷰 기사를 통해서다. 짧은 기사 안에 들어있는 그의 좌충우돌 일대기(?)를 보며, 반가움인지 부러움인지 모를 유쾌한 긴장감을 느꼈다. 끼가 있는, 재능이 있는 사람이구나, 그래서 시원하구나 하고.
 
2년 뒤 발매된 싱글앨범 <독백>에 실린 곡을 들었을 때, 생각보다 더 허스키한 음색과 한국적인 창법에 조금 놀랐다. 그 싱글이 나오기까지 2년이나 걸렸다는 사실에 얽힌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기대했던 대로 노래를 ‘잘’하는구나 하며 괜히 뿌듯했다. 그리고 그의 노래를 듣고 팬이 된 사람들이 모두 그러하듯, 정규앨범 소식을 기다렸다.
 
1집 앨범 <기다림, 설레임> 발매 소식과 함께 그의 이름을 건 첫 콘서트가 열린다는 이야기를 들은 건, 그때로부터 또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다. 그러니까 <일다> 인터뷰를 통해 강허달림이라는 가수가 소개된 지 5년 만에 그의 1집 정규앨범이 나온 셈이다.
 
‘야, 쉽지 않구나. 이 사람 정말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그것만 부여잡고 고집스럽게 왔구나.’ 17일 문화일보홀에서 열린 그의 콘서트를 보면서 줄곧 이렇게 생각했다.
 
5년 전과 지금, 녹록하지 않은 음악인생
 
▲ 1집 정규앨범 <기다림, 설레임>을 내다
지난 5년간 그는 무엇을 겪고 어떻게 살아온 것일까. 그 이야기를 듣기 위해, 5년 전 <일다>와 인터뷰했을 당시, 나이 서른의 강허달림을 어떻게 기억하는지 거꾸로 물었다.

 
“그때가 바닥을 치고 막 올라가려 하던 시기였어요. 음악을 그만둘까 했어요.”
 
다른 건 몰라도 음악을 그만둔다는 생각만큼은 절대 하지 않았을 거라 여겼건만, 예상을 깬 첫 마디였다.
 
“전에는 왜 음악을 하려고 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본 적이 없었어요. 당연히 하는 거였죠. 그런데 처음으로 그 질문을 해보았어요. 근데 왜 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꼭 해야 하는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래서 그만두려 했는데….”
 
그래서 그만두려 했는데, 그만두지 못했다. “다르게 살려고 해도, 다른 일을 하기에는 나이 서른에 할 일이 없더라고요.” 그가 음악을 그만두지 못한 이유는 사실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이다. “해야 하는 건가 봐요.” 또는 “팔자인가 봐요.”
 
2년 후, 강허달림은 싱글앨범 <독백>을 냈다. 만족할만한 음반이라고 할 순 없었지만 평단의 반응은 좋았다. 곧 음반계약을 하자는 제안을 받기 시작했다. 곡을 주겠다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렇지만 실제로 음반을 내주는 곳은 없었다. 곡을 주는 이도 없었다. 구두로 맺은 계약은 계약서를 쓰기로 한 다음날 뒤집히고, 약속은 좀처럼 지켜지지 않았다.
 
그래서 직접 ‘런뮤직’이라는 레이블을 만들었다. 앨범을 내기 위해 혼자 회사를 차린 것이다. 옥탑 방과 지하연습실을 오가는 생활을 하면서도, 몇몇 재즈라이브 까페에서 연주하고 받은 돈과 대출을 받은 빚을 합해 첫 정규앨범 <기다림, 설레임>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만큼 살아남기 힘든 시장이었다. 아니, 어쩌면 “강허달림표 음악”에 대한 그의 고집과 욕심 때문인지도 모른다.
 
인간관계엔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
 
▲ '런뮤직'이라는 레이블을 만들다
“혼자 파고드는 고민들이 너무 많아요. 겉으로 보기엔 잘 웃고 그러니까 (사람들은) 잘 눈치 못 채죠.”

 
싱어송라이터가 곡을 만들고 연주하는 일에만 매달려도 버거울 텐데 매니지먼트에 제작까지 하다니, 아무래도 그의 어깨에 놓인 짐이 너무 무거워 보였다.
 
“음악 가지고 고민하면 좋은데, 저는 음악 가지고는 고민 안 해요. 음악이 벼슬하는 것도 아니고. 중요한 건, 혼자 하는 작업이 아니라 사람들과 어울려서 하는 일인데,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는 것, 그런 부분에서 많이 부딪히게 되요. 저는 돈이 없는 상태고, 제가 바라는 순수성은 제 마음일 뿐이잖아요. 다른 사람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데, 얼마나 해야 사람들 마음이 움직일 수 있나, 사람들마다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서 그런 것이 참 어려워요. 차라리 돈으로 사버리는 것이라면 편할 수도 있지만 그게 아니니까 힘들죠.”
 
가진 것은 재능과 열정밖에 없는 가난한 음악가가 작품활동을 지속해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주위에 손 내밀 줄도 알고, 갚지 못하는 도움을 받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지 않고, 설혹 아쉬운 소리를 들어도 상처 받지 않고 무던히 버텨낼 수 있는 뻔뻔한 면이 조금은 있어야 할 텐데, 그에겐 그게 부족한가 보다.
 
고집스럽지만 무대뽀로 나가지는 못하는 그의 성격은, 시골서 콘서트 장까지 찾아오신 어머니의 영향도 있는 것 같다. “존재감 자체만으로도 힘이 되는” 어머니는 “생활과 생을 바라보는 태도, 인성 면에서 엄청난 내공과 공력을 가지고 계신 분”이라고 했다. “그래서 빗나가기가 무서워요. 그런 분이 옆에서 지켜보고 계시니까.”
 
평생 빗나가지 못할 것 같아 그것이 때로 두렵다고 말하는 강허달림. 그런 그를 예뻐해 주는 사람들이 많은 건 필연적인 일이 아닐까. 비록 오랜 시간이 필요했지만, 앨범을 만들고 콘서트를 열게 된 것도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고 “순수하게 도움을 많이” 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모든 게 다 착취”였다고 말하는 것으로 고마움을 대신했다.
 
천천히 달리다
 
▲ 강허달림
이제 그는 갈 길을 간다. 곡을 만들고, 노래를 부르고, 다음 앨범을 준비할 것이다. 세 번째 음반이 언제 나오게 될지는 몰라도 “나오긴 나올 거니까” 20대처럼 조급해하지 않는다. 무대에서도 “천천히 달리겠다”고 말했듯이, 너무나 분명한 그 길을 천천히 달려갈 것이다.

 
블루스냐, 재즈냐, 락이냐, 포크냐, 판소리냐 하는 외부의 논쟁(?)에도 개의치 않고 “강허달림표 음악”에 대해 설명하는 것도 듣기 좋았다.
 
“그런 양면성을 좋아해요. 약간 배어 나오는 슬픔이 있어야, 호탕하게 웃을 수도 있는. 웃음을 배로 느낄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울면서도 웃을 수 있는. 블루스를 들으면 사람들이 우울하다 하잖아요. 저는 기분이 너무 좋아져요. 슬픔도 느끼면서 그 안에서 희열과 기쁨이 공존하는 거. 제가 갖고자 하는 음악의 모습도 그런 것일 수 있고요.”
 
나는 강허달림의 소리를 듣고 느낀 ‘슬픔’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그의 말을 듣고 보니 “울면서도 웃을 수 있는” 이라는 표현이 훨씬 정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자기만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과 고민하는 것을 공유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앨범재킷 표지에 사인을 받고서 아쉬운 인사를 나눌 즈음엔 기도하는 마음이 되었다.
 
부디 그가 지하연습실보다는 탁 트인 자연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길, 더 넓은 무대에 선 모습을 보게 되길, “천천히 달리는” 길에서 좋은 인연들을 맺게 되길.
 
런뮤직 (runmusic.co.kr)   
달림사랑 (cafe.daum.net/dalim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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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그넘 2008/06/03 [15:03] 수정 | 삭제
  • 좋은 사람에게서 좋은 음악이 나오는 법이죠.
    물론 글도 마찬가지구요.
    따뜻함이 느껴지는 것도 어쩌면 당연함이겠지요...
  • 독자 2008/05/30 [20:59] 수정 | 삭제
  • 천천히 달리는 그 길에 응원을 보냅니다.
  • 2008/05/26 [15:07] 수정 | 삭제
  • 클럽에서 듣고 싶은 목소리~~
    TV에서도. ^^

    고민이 많았던가봐요.
    모든 것이 다 달림씨의 음악적 성숙을 위한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 feat 2008/05/24 [23:09] 수정 | 삭제
  • 달고 쓴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분인가보죠.
    강.허.달.림.
    이름 참 잘 지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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