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혐오를 투사하지 않기 위한 기술, ‘돌봄’

비평가 스기타 슌스케 인터뷰 ②남성 젠더 트러블

조경희 | 기사입력 2023/03/01 [14:41]

자기혐오를 투사하지 않기 위한 기술, ‘돌봄’

비평가 스기타 슌스케 인터뷰 ②남성 젠더 트러블

조경희 | 입력 : 2023/03/01 [14:41]

일본에서 최근 몇 년 동안에 ‘약자남성’이라는 단어를 쓰며 남성성을 분석하고 관련 저서를 잇달아 출간한 비평가 스기타 슌스케 씨. “스스로가 어둠에 빠지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감각이 있어서 남성학”을 한다는 그는 현재 잡지 『대항언론』 편집인으로 활동, 남성학과 관련해 집필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간의 스기타 씨의 저작과 활동을 주목해온 조경희 성공회대 교수가 인터뷰했고, 대화의 내용과 범위가 방대해 총 4회에 나눠 싣는다. -편집자 주-

 

허무주의, 불신감, 구멍 난 바닥에서 살고 있다는 감각

 

조경희: 질문의 순서가 안 맞지만, 고향이 어디인가요?

 

스기타: 가나가와현 가와사키 출신이에요. 이사는 몇 번 했지만, 가와사키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어요. 해외도 나가본 적이 거의 없고요. 이동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조경희: 나고 자란 곳에 대한 애착이 강한 편인가요?

 

스기타: 그런 건 없어요. 고향에 대한 애착, 향토애와는 달라요. 그냥 움직이기 싫어요. 귀찮고 낯가림도 심하고. 그래서 너의 정체성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일본적인 히키코모리가 가장 가까워요. 근본적으로는 허무주의, 불신감. 모든 것에 대한 불신이 깔려있어요. 히키코모리는 실존주의의 현대판이라 생각해요. 모든 것이 믿을 수 없고, 뿌리가 없는 상태. 바닥이 구멍 난 상태에서 살고 있다는 감각.

 

20세기 실존주의도 결국 불안감이나 무근거성에서 한순간에 민족이나 국가와 같은 존재로 비약하거나 결단주의로 나가버렸죠. 지금 일본에서 그건 애국심보단 역시 헤이트, 혐오가 아닌가 싶어요. 여성이나 재일코리안에 대한 헤이트, 혐한, 혐중 등이 실존적으로 바닥에 구멍이 난 사람들을 쉽게 흡수해버리는 힘이 되어버리고 있죠.

 

가와사키 남부 지역은 코리아타운도 있고 공장노동자와 노숙자들, 그리고 정신장애인들의 작업장도 많아요. 다크하고 카오스적인 이미지가 강한데요. 한편 북부로 가면 고급주택가도 있고 도쿄에 정체성을 느끼는 동네에요. 남북으로 위계화되어 있어서, 남부의 공장지대를 북부가 수탈하는 구조인데, 제가 살았던 지역은 딱 그 중간에 있는 교외 주택가에요. 아무것도 없는 매끄러운 추상적인 공간이에요. 향토애 같은 것이 생길 수 없는 그런 공간이죠. 이것도 저것도 아닌 밋밋한 교외 주택가에서 자란 것이 내가 히키코모리나 오타쿠가 된 배경 요인이었다고 봐요.

 

▲ 스기타 슌스케 씨의 서브컬쳐 비평의 일부, 『죠죠론』(2017)과 『재패니메이션의 성숙과 상실』(2021)

 

조경희: 학부, 대학원에서 문학을 전공하셨죠. 아카데미즘 쪽으로 가실 생각은 없었나요? 그 후 장애인 복지사로 일하게 된 계기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스기타: 석사까지는 갔는데, 그냥 문학이나 평론을 좋아했다는 정도 이상으로 적극적인 이유가 없었어요. 대학 시기는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이나 요시모토 다카아키(吉本隆明)와 같은 사상가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당시 문학부에서는 비평을 정당하게 인정하는 분위기는 아니었고, 그걸로 먹고 살 수 있는 희망은 전혀 없었어요. 그때의 기억 때문에 지금도 학계에 대한 거부감이 있어요.

 

부모님에게 기생하면서 아르바이트 생활을 했는데, 좀 빚이 생겨서 돈을 벌어야 했어요. 당시 일본에서 개호보험 제도(2000년에 시행된 노인돌봄을 위한 사회보험제도)가 막 시작된 시기였는데, 돌봄 노동은 앞으로 취업이 잘 된다고 해서 그쪽으로 갔어요. 그전까지만 해도 돌봄 현장은 90%가 여성이었어요. 홈헬퍼 자격은 비교적 쉽게 딸 수 있었으니까 했지, 애초에 적극적으로 복지사가 되려고 일을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노인복지가 아니라 장애인 쪽으로 간 것도 우연이었고요.

 

정규직이 된 후에는 주로 중증 심신 장애인들의 돌봄을 담당해서 노동의 강도가 좀 높았어요. 이 일을 하면, 역설적이지만 누군가를 돕고 싶다고 사명감을 가지고 들어온 경우에 오히려 그만두는 경우가 많거든요. 생각했던 것보다 현실이 더 힘들고, 결코 좋은 일이 많은 건 아니니까. 이상을 갖고 들어오는 경우 그만큼 마음이 꺾이기 쉬워요. 저처럼 우연히 해보니까 의외로 오래 일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 모양이에요.

 

주부로서 집안일과 육아 책임 맡아…육아 노이로제 앓아

 

조경희: 그 후엔 복지사를 그만두고 글쓰기를 주 생업으로 삼게되었는데

 

스기타: 결혼해서 애가 태어났는데, 파트너도 복지사로 일하는 사람이에요. 저는 조금씩 비평 일을 하고 있었으니 파트너가 정규직으로 일을 나가고 저는 비정규직으로 가끔씩 나가고, 집에서 글을 쓰면서 살림과 육아를 담당했어요.

 

당시는 주부로서 집안일의 책임은 저에게 있었어요. 사실은 아이가 초미숙아로 태어나서 초기엔 좀 특별한 케어가 필요했어요. 애가 열이 안 내린다거나 알러지 때문에 발작을 일으킨다거나… 구급차로 몇 번씩 병원에 실려 가기도 하고, 그래서 잠을 못 자게 되었어요. 소위 육아 노이로제에 내가 걸린 거죠. 애가 어떻게 될까 봐 24시간 불안에 떨면서요.

 

복지사로 일할 때는 장애인 보호자들에게 전문가로서 조언도 하고 그랬는데, 아픈 애를 키워보니까 내 멘탈이 너무 약한 거에요. 바로 균형이 깨지더라고요.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가 없고, 나는 잠을 잘 수가 없고. 나중에는 장애인 복지사 활동을 했다는 것이 부끄러워졌어요. 사람은 내 일이 된 순간 균형을 잃어버린다는 걸 알았죠. 그때의 기억이 거의 없어요.

 

조경희: 밖에서도, 가정에서도 돌봄을 담당했던 거네요. 특별한 경험인 것 같아요. 듣다 보니 이 시기가 아까 말한 글을 못 쓰게 되었다는 시기, 혹은 남성성 문제와 제대로 대면하는 과정과 겹치는 것 같은데요. 남성이 겪는 ’젠더 트러블’(gender trouble) 같은 측면이 있었던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요즘에 ‘돌보는 남성성’(caring masculinity)이라는 말도 있는데, 지금 나온 과도한 책임감이나 몰입, 남에게 맡길 수 없다거나 하는 점이 스기타씨의 남성성 문제와 어떤 연관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스기타: 밖에서 돌봄 일을 했을 때도 스스로 남자답게, 능력주의적으로 대처하려는 경향이 있었을 거에요. 지원자들이 빠지기 쉬운 부분, 예컨대 장애인이나 보호자의 말을 경청하면서도 은근히 컨트롤하려고 하는 게 있어요. 그 점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 육아를 통해서였고요. 어쩌면 ‘돌봄을 실천하고 있는 나’에 대한 과신이죠. 당시는 특히 돌봄하는 남자들은 희소가치가 있었거든요(웃음). 다른 남자들에 대한 우월감 비슷한 것이 있었을지 몰라요.

 

아픈 아기를 돌보는 일은 그런 것들이 깨지는 경험이었고요. ‘젠더 트러블’도 그렇지만, 저는 멋대로 ‘무능력 트러블’(disability trouble)이라고 부르고 있는데요. 돌봄을 통해서 내가 무력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내 안에 있는 능력주의나 남성성을 소위 언런(unlearn: 학습해온 잘못된 지식이나 습관을 의식적으로 잊거나 버리는 것)하는 과정…이었던 것 아닌가 해요. 지금 생각하면.

 

조경희: 네. 네. 아기들은 전적인 케어를 필요로 하는 존재이고, 정신적인 컨트롤이 불가능한 존재니까요. 그…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 없다는 것도 원래 있는 허무주의나 세상에 대한 불신과 연관이 있을 것 같아요. 혹은 돌봄노동 경력자로서 “내가 못할 리가 없다”는….

 

스기타: 네. 멘붕 상태를 절대 인정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웃음). 다행히도 파트너가 저보다 냉정하고 대담해서, 내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저와 애를 분리하고 조치를 취해줬어요. 그러면서 아기를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 내 취약성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는 방법을 조금씩 배워간 것 같아요.

 

▲ 줌(zoom)을 통해 추가 인터뷰를 진행한 필자 조경희 씨(위)와 스기타 슌스케 씨(아래)

 

함께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이 사라지는 느낌

 

조경희: 개인사를 들으면서 점들이 선으로 이어진 느낌이에요. 주제들의 내적 연관성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글을 쓰셨는데요. 스기타씨의 글쓰기의 원동력은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스기타: 음. 저는 글을 쓰는 것밖에 내 존재가치가 없다는 생각은 종종 하는데, 그렇다고 내가 썼던 글을 좋아하지 않아요. 나를 칭찬하는 사람들이 가장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비교적 자기혐오가 커서 쓰는 것이 즐겁다는 감각은 없는데, 이상하게 그 자기혐오가 저를 추동하는 건 있어요. 이대로는 안 된다는 감각, 이 자기혐오는 아까 말한 내 안의 우생사상이나 능력주의에서 나오는 것일 수도 있지만요.

 

조경희: 자기혐오라고 했을 때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것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자아의 문제인지… 자신은 더 나은 사람이라는 일종의 자기애의 표현으로 볼 수도 있는데요.

 

스기타: 나쁜 의미로의 자기애일 수도 있죠. 나는 더 재능이 있다거나 하는 유치한 나르시시즘의 표현일 수도 있지만요. 기본적으로 히키코모리들이 갖는 나는 세상에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감각, 허무감에서 오는 것이 더 크다고 생각해요.

 

더 말하면 남성혐오의 문제가 있어요. 내 안의 남성혐오를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물론 그건 여성과의 소통에 실패했다거나 남성들끼리의 호모소셜한 압력이 싫다거나, 혹은 엄마와의 애착관계의 굴절이라든가… 여러 배경 요인이 있을 텐데요. 이 부분은 다른 남성들 중에서도 공감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데, 충분히 논의되지 않는 것 같아요.

 

저는 자기혐오 자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고, 내 안의 남성혐오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인데, 다만 그것이 누군가에 대한 혐오로 전환되지 않기 위해서는 지혜나 기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기 위해 다른 누군가에게 배우거나 연결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겠죠.

 

장애인 돌봄을 하면서 흥미로웠던 것은 섹슈얼리티나 장애/비장애 경계가 살짝 흔들릴 때였어요. 저는 남자 자폐인 친구와 종종 손 잡고 외출하기도 했는데요. 처음엔 쑥스러웠는데 점점 그 경험이 꽤 즐거워졌어요(웃음). 요즘엔 퀴어 이론하고 장애학이 결합된 이론을 클립(crip)이라 부르기도 하지만요. 동성애적 관계나 자폐인/비장애인 관계에서 어떤 즐거움을 느끼거나 긍정적인 욕망이 나온다는 것을 경험했어요.

 

또 어떤 날은 신체적, 지적 중증장애 소년과 함께 사무실에서 숙박하기도 했는데요. 그 방은 바깥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서 왠지 혼자 있으면 좀 오싹하고 무서운 공간이었는데, 그 친구랑 있으면 하나도 무섭지 않는 거에요(웃음). 가령 유령이나 강도가 나타나면 그 친구는 아마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데, 존재하는 것만으로 결정적으로 다르다는 걸 느꼈죠. 정말로 두려움이 사라진다는 것이 신기했어요.

 

이런 경험들이 내 생각을 조금씩 바꾸게 한 부분은 있어요. 자기혐오나 공허함이 아닌, 조금 다른 가치관을 갖게 만든 거죠. 장애인 돌봄 경험이 자신의 무의미함의 감각을 벗어나게 해준 부분은 있는데, 그래도 여전히 허무주의와 자기혐오는 강해요. 늘 그 길항(拮抗) 속에 있어요. (3편에서 계속)

 

[필자 소개] 조경희. 일본 출생. 성공회대학 동아시아연구소 부교수. 일본과 한반도의 관계를 중심으로 식민주의, 이주, 소수자, 젠더 문제를 연구하고 가르친다. 주요 공저에 『아시아의 접촉지대: 교차하는 경계와 장소』(2013), 『주권의 야만: 밀항, 수용소, 재일조선인』(2017), 『〈나〉를 증명하기: 동아시아의 국적, 여권, 등록』(2017), 『두 번째 ‘전후’: 1960-70년대 아시아와 마주친 일본』(2017), 『포스트냉전과 팬데믹: 오키나와의 코로나 경험과 정동』(202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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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감 2023/03/14 [20:46] 수정 | 삭제
  • 돌봄을 통해서 익숙했던 속도보다 늦춰가는 것, 타자를 고려하고 떄로 살리는 것, 사랑을 받는 것을 배우고, 또 책임지는 것과 동시에 의존을 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 평등에 다가가는 것임을, 그래서 페미니즘이 돌봄을 이야기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 루비 2023/03/02 [15:10] 수정 | 삭제
  • 참 대단한 분인 것 같다. 장애인 돌봄하고 육아도 담당하는 클라스.
  • B 2023/03/02 [12:33] 수정 | 삭제
  • 두 분의 대화가 너무 흥미로워서 몇 번을 다시 읽게 되네요. 좀 놀랍기도 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의 태도랄까요, 배울 점이 많은 것 같아요. 자신의 약함에 대해 마주하게 되면 그대로 미끄러져 내려버리거나 어떻게든 자기정당화를 하거나, 자기보다 더 약해보이는 사람들을 혐오하는 것으로 이어지기가 정말 쉽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직면의 시간과 접점을 어디로 연결할 것인가라는 점에서, 스기타 씨가 제기하는 문제의식이 소중하고 많이 공유가 되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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