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다〉는 여성 노동자가 겪는 구조적 차별을 드러내기 위해, 연속 세미나 [다섯 가지 키워드로 본 여성과 노동]을 기획했다. 다섯 번째 키워드 ‘소수자성’에 관한 논의가 10월 30일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기록노동자 희정이 진행과 기록을 맡았다. [편집자 주]
다양한 몸들이 고려되는가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을 입증해야 한다는 의무가 우리를 옥죈다. 성별과 성정체성을 불문하고, 가부장제 사회의 구성원인 우리는 양분화된 규격과 규범의 틀을 유지하려는 힘의 선상에 존재한다.
호림(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상근 활동가): 화장실 건강권 문제.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 문제에 있어도 화장실은 민감한 의제거든요. 그리고 재생산 문제를 다룰 때도, 화장실이 계속 언급되잖아요. 처음에 화장실을 ‘권리 문제야’라고 이야기했을 때, 인권이나 권리를 거대한 개념으로 이야기하는 데 익숙해한 사람들이 피식 웃는 일도 있고 그랬지만, 화장실은 몸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측면이잖아요.
모드(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 여성국장): 화장실은 휴식권으로도 이야기되어야 하는데. 금속노조는 남성이 주된 사업장이기 때문에, 여성 노동자 화장실이나 휴게실 문제가 있거든요. 한 예로, 모 정규직 노조에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걸 반대하는 성명서를 내면서, 지금은 여성 노동자들이 사업장에 들어올 때가 아니다. 여자 화장실도 없고. 순차적으로 논의하자, 이런 식으로 언급한 적이 있어요.
화장실은 단지 화장실이 아니다. 생식, 휴식, 재생산 등 인간의 몸에 직접적으로 필요한 시설과 환경이 일터에 얼마나 갖춰져 있는지를 한눈에 보여준다. 지금의 일터는 많은 여성들, 그리고 소위 ‘다른 몸’을 가졌다고 하는 이들의 존재가 고려되지 않는 공간이다.
여성/남성 가르는 세계에 맞서
모드: 저도 자동차공장 같은 데를 한 번씩 출장 가면, 여성 노동자 화장실이 너무 적고 멀리 있어서 한참을 가는데.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쉬는 시간 10분 안에 그 멀리까지 가야 하는 거지요.
금속 사업장이라 불리는 제조업체에는 여성 근무자가 적다. 뽑질 않으니까. 제조업에는 당연히 남성이 많다고 여길 수 있으나 이 또한 선입견이다. 남자가 더 잘할 수 있는 일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남자가 더’ 할 수 있도록 노동환경을 조직한 일터가 있을 뿐이다. 금속노조 노동연구원(연구자: 엄재연)이 연구조사한 『금속노조 여성노동자 작업장 경험』 보고서는 성별 고정관념에 따른 직무 분리, 남성만이 관리자로 승급되는 유리천장, 생리․출산 휴가 사용의 어려움 등 성과 재생산 권리가 지켜지지 않는 노동환경이 제지 없이 유지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것이 여성 노동자의 입지를 좁히는 것은 물론, 실질적인 근무자 수를 줄이는 데 영향을 미친다.
모드: 네가 여성이니까 여성국 사업을 담당해봐, 하면서 주어지는 경우도 있고. 담당을 해도 그 일을 할 시간을 할애해주지 않기도 하고. 저는 왜 맡았냐면, 공석이 되면 안 된다는 위기감이 있었어요. 공석도 자주 발생하거든요. 한편으론 이 자리에서 성소수자 사업을 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어서 자발적으로 맡았던 게 있어요.
모드는 여성국장의 자리에서 성소수자(조합원)들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는 사업을 함께한다. 호림의 경우 ‘행성인’이라는 성소수자 단체에서 일하기 때문에, 단체 내에서 성별 분업으로 나눠진 일은 거의 없다고 했다. 사루(노동당 충남도당 사무처장)는 노동당이라는 정치 운동을 하기 전에 교육대학을 나오고 교생 실습을 한 경험을 들려줬다.
“교육대학은 ‘정상성’에 관한 관념이 굉장히 센 편이에요. 보통 (사회가 말하는) 바르게 자란 사람들이 오는 데라. 정상성이 의심 없이 믿어지니까, 반대로 그 외의 정체성에 대한 혐오가 숨 쉬듯 나오는 게 있어요. 조금만 ‘남자답지’ 않으면 ‘너 게이냐?’ 이런 식으로. 교생실습 중에 강연을 듣는데, 정말 혐오 가득 찬 강연을 해서, 제가 한 번은 교생실습 한 번 더 할 각오를 하고 실습록 제출을 거부한 적도 있어요.”
세 사람은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을 옥죄는 ‘여성성/남성성’에 맞서 저항하고, 틈새에서 다른 활동을 하고, 다른 길을 모색하기도 한다. 그리고 각자가 지향하는 세계를 위해 운동한다.
퀴어 노동자는 어디에나 있다…변화의 지점들
호림: 퀴어 노동자의 특성은 일터 어디에나 있는 사람들인 거 같아요. 지금의 현실에서 이주노동자나 장애를 겪는 이들의 경우에는 현재의 사회구조 속에서 불안정하고 취약한 일자리에서 일할 가능성이 높은데요. 성소수자 노동자의 경우에는 그런 경우도 있지만, 또 존재 자체가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특정한 취약성을 공유하지 않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성소수자의 공통 이슈는 어느 곳에나 존재하지만 드러나기 어려운 사람들이라는 것.
호림: 성소수자 노동권에 관해 쟁점이 되는 뚜렷한 의제가 두드러지지 않는 건, 어떤 면에선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일터 어디에서든 전반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소수자인 것이 드러났을 때 그게 차별이나 배제의 이유가 되지 않게 하는 환경 자체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보고. 특정 영역, 특정 제도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 차별받지 않는 일터 환경 전반을 만드는 일이 성소수자 노동권이 의제의 특성인 것 같아요.
일터 어디에나 있다는 것은, 일터 곳곳에서 물음표를 내밀 수 있다는 것일 테다.
모드: 뭔가, 재밌지만 작은 사례(성과)들이 더 발굴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소소하게 사업장 내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이 있을 거잖아요. 예를 들어, 가족수당의 개념이 바뀌었다든지, 이런 것들.
누군가의 가족이자(이거나), 이 세상 기준의 여자나 남자이자(이거나), 성소수자인(이거나 한) 노동자들이 혈연 중심의 가족만이 ‘돌봄의 단위’라고 이야기하는 제도에 문제 제기하고 있고, 그로부터 변화가 모색되고 있다.
모드가 있는 금속노조는 2021년에 ‘모범단협’을 만들기도 했다. 단체협약(단협)은 회사와 노동조합이 근로조건에 관해 맺는 법적인 약속인데, 이 단협 조항에 포괄적 차별금지 조항을 신설한 것이다. 성별과 소수자성 등을 이유로 차별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그런데 옆에서, 정작 금속노조에서 일하는 모드는 (법적 배우자로 등록되지 않은) ‘파트너 가족상’ 휴가를 받지 못했다고 귀띔해주었다.
모드: 단협에는 넣었는데, 노조 사무처 규정에 없었던 거예요. 이번에 저로 인해 바뀌었어요.
하나둘 바뀌고 있다. 변화하고 있다. 누군가들의 노력에 의해서.
‘동의’를 넘어서
호림: 우리를 구조적으로 미는 힘이 있다고 했을 때, 어디에나 있는 성소수자 노동자들을 드러내지 못하게 하는 힘이 있잖아요. 이건 일터에 국한된 문제도 아니고. (시민사회가 제정을 요구하는) 차별금지법이라는 것도 일터에만 적용되는 법이 아니잖아요. 가족과 관련한 기업 복지제도도, 이게 가족과 회사를 경유하긴 해도 일터만의 의지가 아닌 차원이 많아요.
그래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과 같은 사회 전반의 변화를 가져오기 위한 활동에 연대하는 일과, 일터에서 성소수자 친화적인 노동 환경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 동시에 필요하다.
호림: 그럼에도 일터라는 공간으로 한정할 때, 행성인 노동권팀에서 고민을 계속하는 것은, 우리가 우리 존재를 드러낼 수 있는 일터. 어떻게 자신을 드러내고 목소리를 더 많이 사회로 내보낼 수 있는지. 그 시작은 일터의 동료인 것 같아요.
모드: 물어봐야죠. 내 동료가 될래?
사루의 답은 조금 더 다정하다.
사루: 저를 거쳐서 성소수자의 존재를 알게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는 사람들이 나와 동료가 되는 것이 우선이겠구나 생각해서. 조금 더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삶으로 보여주려고 하고 있어요.
모드: 저는 여성 조합원들 상담을 많이 하니까. 그분들하고 좀 친해지면 저에게 묻더라고요. 이쪽 아니냐고. 내가 티가 나나 봐. 친밀해져서 제 정체성을 말하면, 다들 저를 막 동의한다고 해주시고.
성소수자 정체성에 ‘동의한다’?
모드: 노동조합엔 언어가 그것밖에 없어서 ‘동의한다’로 표현이 되는 거 같아요. 너를 동의한다.
당신을 당신의 존재 자체로 받아들이겠다. 그것을 동의한다. 왠지 그 말이 따스하게 느껴졌다. 존재의 동의를 넘어, 우리가 연결되어 있음이 ‘동의’되길 바란다.
여성‘만’의 문제라는 것은 없다. 여성의 정체성만으로 살아가는 이도, 노동자로만 살아가는 이도 없다. 젠더 차별을 큰 문제로 여기는 것은, 내가 여성으로 차별받아서만이 아니다. ‘성별’을 가로지르는 불평등이 이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들이 겪는 억압과 차별을 많은 부분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차별을 설명해주는 언어를 가짐으로써 위안을 얻고, 억압으로부터 벗어날 길을 발견할 수 있다.
사루: 내가 해방되기 위해 운동을 한다고 하면, 해방이라고 하는 것이 어떤 차별이나 억압이 없이 내가 나로서 자유로이 살아갈 수 있는 상태를 해방이라고 하면, 내가 성소수자로 차별받지 않는다고만 해서 내가 자유로워지냐. 그건 아니거든요. 저는 서울 중심 사회에서 지역민이기도 하고, 전 세계 측면에서는 미국이나 유럽에서 태어나지 않은 아시아인이기도 하고. 기후 위기 시대에 사는 사람이기도 하고…. 우리가 함께 공통된 요구를 찾아갈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고민하면서, 그러면서 저는 더 여러 곳을 다니는 거 같아요.
[필자 소개] 희정. 기록노동자.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 『일할 자격』, 『베테랑의 몸』 등을 썼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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