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되었던 5.18 성폭력 수면위로, ‘미투 운동’은 계속된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진상규명 보고서

박주연 | 기사입력 2024/05/24 [08:23]

침묵되었던 5.18 성폭력 수면위로, ‘미투 운동’은 계속된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진상규명 보고서

박주연 | 입력 : 2024/05/24 [08:23]

5월이 되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의 기억이 떠올라 힘든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있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5.18민주화운동과 관련된 국가폭력 사건들의 진상을 규명하고자 하는 이들도 있다. 그 노력이 이어져왔지만, 아직까지도 침묵되어 온 사건들도 있다. 바로, 성폭력 피해자들 이야기다.

 

이 이야기가 마침내 드러나기 시작했다. 작년 12월,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진상규명 조사보고서의 일환으로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보고서를 의결, 올해 4월 보고서가 공개됐다.

 

▲ 지난 4월 28일, 전남대학교 인문대학 김남주홀에서 피해자들이 참석한 “5·18 성폭력 피해자 간담회”가 열렸다. (출처: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5·18 성폭력 피해자 간담회 개최 결과 보도자료’)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3조 1호에 근거해 조사된 이번 진상규명은 2020년 5월부터 진행됐다. 조사위원회는 피해조사 신청 접수, 공동조사단의 조사자료 검토, “5·18민주화운동관련자 보상심의위원회” 자료 전수조사(1~7차) 등을 통해, 총 52건의 피해 의혹 사건을 확보, 이 가운데 피해자가 조사에 동의한 19건에 대한 진술조사, 기록조사, 실지조사를 추진했다.

 

그 결과를 담은 보고서엔 조사의 과정과 결과, 피해자들의 증언과 사건 내용, 이후의 트라우마, 이번 조사의 한계와 다음 과제가 담겨있다. 40여년 침묵‘되었던’ 만큼 이 보고서가 담은 내용은 충분하지 않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우리가 함께 그 시간을 채워야 한다. 보고서 일독을 권하며(518commission.go.kr) 그 중 일부를 전한다.

 

(※ 기사에선 세세한 사건 내용 서술이 유사한 폭력 피해자의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트리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그 부분은 담지 않습니다.)

 

계엄군에 의한 성폭력 피해자들은 이미 말해왔다, 하지만…

 

사실 피해자들의 말하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보고서에서도 “과거부터 현재까지 국가 주도의 5·18 진상규명의 흐름 속에서 성폭력 피해자의 ‘공개 증언’은 세 차례 있었다.”고 짚는다.

 

“첫 번째는, 1988년 민주화합추진위원회와 1989년 국회 차원의 5·18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서 ‘성고문’ 피해를 증언한 전옥주에 의해서다.

두 번째는, 1996년 『신동아』에 수기 한 편이 발표되었는데, 수기내용은 1988년 성고문 피해 증언 이후 협박과 테러를 당한 사실에 대한 폭로를 포함하고 있다. 이 또한 전옥주에 의해서다.

세 번째는, 2018년 김선옥이 『한겨레』를 비롯한 각종 방송 인터뷰에 출연하여 ‘수사관에 의한 강간’ 피해를 증언한 것이다.”

 

이런 공개 증언에도 불구하고, 성폭력 피해는 그동안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축소‧부인‧은폐”되어 왔다. 이는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왜곡의 연장선”이기도 했지만, 성폭력을 둘러싼 편견과 낙인이 작동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공개증언을 한 이 외에도 자신이 겪은 일을 밝히고자 한 피해자도 있었지만, 만류 당했다.

 

“5·18부상자동지회 회장 이지현이 사건 피해자를 대신하여 ‘계엄군에 의한 성폭력 피해 사실’을 증언하고자 자료까지 만들었으나, 야당 국회의원들의 만류(쟁점 사안이 아니라거나 너무 끔찍해서 믿어줄 것 같지 않다)로 좌절된 바가 있다.”

 

▲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올 4월 공개한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보고서 23쪽 ‘그림2’


성폭력 사건이기 때문에, “피해자 스스로 ‘성폭력 피해자’라는 낙인과 사회적 비난이 두려워” 말할 수 없었던 경우, 실제로 비난을 받아 더 말하지 않기를 선택한 경우도 있었다. 보고서는 “피해 사실을 알게 된 약혼자로부터 파혼을 당하거나, 남편의 가정폭력에 시달려야 했고, 심지어 집안에서 버린 자식 취급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는 점에서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가부장적인 통념’이 피해 사실을 감추게 된 요인이었음을 확인했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엄청난 용기를 내어 증언했지만, 증언자는 테러를 당하는 등의 고초를 또다시 겪어야 했다. 이후 2018년 김선옥 씨의 증언이 있기까지 “14년 동안 그 어떤 여성도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공개하는 방식으로 증언하지 못했다”는 점은 뼈아픈 지점이다.

 

동시에 김선옥 씨의 증언이 ‘미투운동’(#Metoo, 나도 말한다)의 영향이었다는 점, “2018년부터 2021년 사이 5·18 성폭력 피해자들은 공동조사단과 위원회에 『피해조사 신청서』를 제출하였는데, 이때 피해자 12명이 자신의 피해 사실 발화의 계기로 ‘김선옥과 서지현 검사의 미투(MeToo)’를 나란히 언급했다”는 사실은 여성들의 말하기가 연결되고 서로에게 영향을 줬다는 점에서 중요하게 해석되어야 할 부분이다.

 

40여년 이후의 증언을 듣기 위해

 

김선옥 씨의 증언 이후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로 공동조사단이 출범”했고, “여성가족부 차관,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을 공동단장”으로 2018년 6월부터 10월 말까지 약 5개월 간 조사가 이뤄졌다. 이후 2019년 12월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출범했고, 2020년 5월부터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조사를 직권으로 개시, 피해조사 신청 접수도 받기 시작했다.

 

2021년 1월 5일 자로  「5·18진상규명법」의 제3조 1항에 “성폭력 및 정신적·신체적 후유증 발생 등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이 신설됨으로써, “과거사 위원회의 조사 범위에 ‘성폭력 사건’이 처음으로 포함”됐다.

 

조사위원회는 “유엔(UN)의 『피해자를 위한 정의의 기본원칙』과 2005년 『피해자 권리 기본원칙』 등의 국제법을 반영, 심각한 인권침해에 대응하는 정의실현 방식”을 핵심 원칙으로 두고 ‘진상조사 방법’을 설정했다고 밝혔다.

 

“첫째, 성폭력 피해자를 피해 증언자이자 진상규명의 권리 주체로 바라보고, 둘째, ‘조사과정이 말하기를 통한 치유의 일부’가 될 수 있도록 하며, 셋째, 피해자의 증언을 함부로 배척하지 않고, 피해자를 위한 치유와 명예회복 방안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는 것.”

 

▲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보고서 내 자료 중 “5·18 성폭력 조사 방법과 판단기준”


더불어 “성폭력 진상조사의 목적은 형사처벌을 전제로 한 범죄발견이 아닌, 진상을 규명하여 피해자의 치유 및 명예회복 방안을 권고하는 데 있다”는 점을 밝히며, 그렇기에 “조사관은 피해자가 ①피해 당시의 감각적인 기억(소리, 냄새, 촉감 등) ②시간이 지나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장면 ③듣거나 했던 말 ④온몸이 얼어붙은 것처럼 자포자기하게 만든 공포감 자체를 언어화할 수 있도록 ‘피해자의 상황과 처지를 고려한 질문’을 하고, 피해자의 서사적 진술에서 “핵심 진술(핵심 장면 + 감각기억)”을 분석”하고자 했음을 설명한다.

 

‘미규명 사건’에 대한 몫 남겨져

 

조사위원회에서 검토하고자 한 사건은 52건이었지만, 피해자 혹은 가족이 조사를 거부한 경우나 피해자가 이미 사망하거나 질환으로 진술을 할 수 없는 경우 등으로 인해 진상규명 여부를 판단하는 조사대상 사건은 결과적으로 총 19건이었다. 그리고 이 중 16건이 ‘진상규명’으로 의결됐다. 보고서엔 ‘진상규명 불능’으로 결정된 사건의 의결 과정 내용도 담고 있다.

 

또한 간과해선 안 되는 것이 “미규명 사건”에 관한 부분이다. 위원회는 “미규명 사건을 ①조사 거부로 인한 조사 중단 건 ②피해자의 사망, 자살, 정신병 발병 등으로 인하여 진술청취가 불가능한 사건 ③연행·구금·조사과정에서 ‘성적 모욕 및 학대’와 ‘성고문’을 당한 남성 피해자 사건 ④그 외 과거 민간자료나 보상신청 자료에서도 드러나지 않은 사건으로 분류”하고 각각 설명을 덧붙인다.

 

“‘질문하지 않아 듣지 못한 피해’가 더 있을 수 있다”는 것, “자신의 피해 사실에 대하여 그 누구에게도 말해본 적 없는” 피해자가 있을 것이라는 점을 짚음으로써 5.18 성폭력 사건과 관련된 조사가 끝이 아니며, 끝이어서도 안 된다는 걸 강조한다.

 

그리고 3년 6개월의 조사 기간에도 불구하고, “사망, 자살, 정신병 발병에 이른 피해자에 관하여 가족의 동의를 얻지 못하고, 성폭력 피해와의 개연성을 입증할 방법도 찾지 못한 채 ‘조사대상 사건’에서 제외한 점도 명백한 한계”라 밝히고 있다. “그로 인해 사건 후 사망하거나 스스로 생을 마감한 피해자, 현재까지 정신병원에 입원 중인 피해자와 그 가족의 고통스러운 삶을 위로할 방안을 찾지 못했다”는 것. 그 몫은 우리 사회가 앞으로 함께 짊어져야 할 것이다.

 

보고서는 “무엇보다 ‘폭력의 역사성’이 주목되어야 할 과거사로서,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군부독재와 결부된 국가폭력”이라는 점, “또한 5·18 성폭력 피해자들이 사건 후 겪은 신체적·정신적·사회 관계적 2차 피해는 가부장제의 통념과 ‘성차별주의’를 비롯한 ‘억압의 중첩성’이 작용하고 있는 폭력으로, 생애사 전반에 걸쳐 연쇄적으로 누적되는 ‘복합적인 피해 실상’이 있다”고 정리한다.

 

“국가는 43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피해자들의 치유와 명예회복을 위하여 책임 있는 조치를 강구해야 할 주체이며, 군과 경찰 등 국가권력이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성폭력과 같은 반인도적 범죄가 재발되지 않도록 대책을 수립할 책임이 있다”고.

 

이번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보고서는 ‘최초’이기 때문에 분명 큰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 보고서는 ‘최초’로만 끝나려 하지 않으며, 이후의 일들이 더 중요할 수 밖에 없는 이유 또한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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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ㅇㅇ 2024/05/30 [11:27] 수정 | 삭제
  • 5.18 당시 성폭력 범죄에 대해 얘기는 참 많았는데도.. 40년이나 지나서 공식으로 인정이 되다니 울고 싶기도 하고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미투는 진짜 많은 걸 바꾸었고 힘이 셌구나.. 서지현 검사님과 JTBC에도 고맙다는 생각이 드네.
  • 독자 2024/05/26 [14:29] 수정 | 삭제
  • 세세한 사건 진술이 아니라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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